핸드폰 핸드폰 사무실 전화가 울린다 받지 않자, 주머니에 진동으로 놓은 휴대폰이 요란히 춤춘다 지금 나를 부르는 자 누굴까 기발한 방법으로 옥죄는 디지털 사회의 고삐들 교묘한 감시망들이 두렵다 빛과 바람과 별들만 찾는 곳에 안온히 며칠 쉬고 싶다 얽어맨 유무형의 끈들이 피곤하다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황금관 황금관 어느 동물의 뿔이 저리 아름다운가 화창한 가을은 숨쉬기도 가뿐하다 구름을 이고 울긋불긋 타오르며 보기도 죄스럽게 이 도시의 우러름이 되어 내려본다 때로 소나무 장식을 흔들며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들었고 풍파에 사건처럼 무너질수록 바위는 절묘하게 장엄해지는 걸 봤다 걱정은 무엇..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봄 날 봄 날 투명한 구슬 속이다 숨었던 생명은 초록 깃발 하나씩을 들고 점령군같이 솟아오르며 아우성 친다 저 과수원 휘감고 도는 달빛같은 은은한 배꽃 굳은 마음도 아득함에 젖는다 볕을 이고 살랑거릴 때마다 다감한 여인들 음성처럼 베토벤 소나타 월광이 들려온다 잔물결 같은 건반 위 유쾌한 손놀..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갈대꽃 갈대꽃 타락했나! 초월했나! 기다림에 지치거든 일찍 단념할 일이지 젊은 시절 서슬 푸른 날렵한 몸매 먼산바래��� 갈기 세워 할퀴더니 흰머리 흩날리며 목 빼물고 아무에게나 손짓할게 뭐람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목격자 목격자 후미진 골목이나 대로변에서 매연과 소음에 숨막히는 밤 홀로 서럽지 않다 별들과 얘기하며 등불을 이고 어둠을 밝히는 사랑 만날 수 없는 동료끼리 이슬방울 같이 눈빛만 마주보다 지며 먼동을 맞는다 꼿꼿이 서서 이제야 잠든 가로등의 허리에 걸린 프랑카드 “목격자를 찾습니다” 분명 밤..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고독한 멋 고독한 멋 높고 험한 곳은 갈 수 없어 아름다운가 애정의 아픔이 있어야 가슴이 더워 삶은 성숙할 텐데 멋은 있어도 별이 함께 하는 고독만 클 뿐 아니 바람의 질투에 머리는 더욱 차가울지 모른다 외로운 기품을 보면 꽃과 꽃이 같이할 때 더욱 아름답듯 끼리끼리 어울려야 하는데 신은 그토록 겨운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석양 석양 네로의 잔인한 희열도 아마 이러했을 게다 차마 볼 수 없는 불바다가 일렁인다 작렬이 폭발하는 섬광처럼 불을 뿜는 유리창빛이 앙상블을 이룬다 간직하고 싶은 밤 오기 전 한 때, 붉은 융단을 펼친 모습이 황홀하다 숲 솟은 콘크리트 건물 군락도 자연과 어울려 거짓 같은 비경을 이룬다 아쉽게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하룻밤의 산뜻한 동거 하룻밤의 산뜻한 동거 숲을 없애버린 이 도시의 가을밤 누가 우리 집에서 밤새워 독창을 한다 차갑게 사위어가는 정서에 불을 지핀다 새벽 그 아름다운 절규에 눈을 떴다 누가 환상의 목소리를 낼까 아, 너였구나! 테이블 위에 귀뚜라미 한 마리 친숙히 뛰논다 콘크리트 숲을 이룬 고층 아파트의 절연..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그리운 봄 그리운 봄 스모그로 뒤덮인 하늘 한자락을 삘딩 앞 목련이 하얗게 덧칠한다 누굴 기다려 올해도 순백의 꽃짓인가 겨우내 언 마음도 풀어진다 도로변 개나리가 소음에 시달려도 어김없이 노랗게 피어 행진한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공해에 찌든 건 마음일뿐 계절은 아직 건강하구나 왜, 어쩌자고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대나무 대나무 옷은 가끔 바꿔 입어야 지루하지 않다 독불장군도 못되며 사계절 단벌로 버티는 걸 보면 실은 매우 빈곤한가 보다 아니, 변화를 싫어 해 정보사회를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지 그렇지 않고서 이 엄동에 남들은 알몸으로 체력단련하는데 해가 바뀌어도 그 옷 그냥 걸치고 자랑이지 하늘 한 조각..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