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64

4월 예찬

4월은 조용히 다가온다.3월의 끝자락에서 겨우내 잠들었던 것들이 깨어나고, 그제야 사람들은 달력을 들여다보며 본격적인 봄을 실감한다. 화려하지 않아서 아름답고, 서두르지 않아서 깊은 달. 나는 그래서 4월을 좋아한다.누군가는 4월을 "잊혀진 봄"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벚꽃은 어느 해보다 빨리 피고, 졸업과 입학은 이미 지나갔으며, 연휴도 없이 무던한 일상만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무던함이야말로, 4월의 품격이다.4월의 풍경은 절정이 아니라 여정이다.매화가 진 자리에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진 자리에 연둣빛 이파리가 돋는다. 그 틈에 진달래와 목련이 차례를 다투고, 하늘은 날마다 다른 표정으로 바람을 품는다.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은 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수필 2025.04.06

고독과 바다, 그 너머의 사랑

고독과 바다, 그 너머의 사랑바닷가 카페에 앉아 있다. 창밖으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쉼 없이 다가왔다가 밀려간다. 쓸쓸한 겨울 바람이 유리창을 스치고, 나는 뜨거운 커피잔을 두 손에 감싸 쥔다. 파도 소리에 마음이 젖는다. 그 소리는 어쩐지 아내가 피아노로 치던 쇼팽의 녹턴 같기도 하다. 부드럽고, 아련하고, 슬픈.내 나이 이제 60후반을 훌쩍 넘었다. 언제부터인가 매년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몸이 추운 게 아니다. 마음이 시리다.나는 34개월, 겨우 돌을 막 지난 아이였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연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의 울음과 그 뒤로 찾아온 지독한 외로움만은 어린 마음에도 선명했다. 그러나 나는 살아야 했다. 고통은 때론 이정표가 되어주었고, 나는 고개를 들고 걸었다...

수필 2025.04.01

1만보 걷기 100일을 달성하고...!

- 윤여설 지난 6월 7일부터 1만 보 이상 걷기를 설정하고 9월 14일 날 100일을 달성했다. 그간 몇 번을 시도했었으나 이런저런 사유로 도중에 그만뒀다. 평생에 처음 달성해 본다. 어찌 생각하면 그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지난 여름은 유독 기상이변으로 폭염과 폭우가 반복돼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우선, 장마철에 비가 오지 않는 날! 개천을 걷다가 갑자기 물이 불어나서 애를 먹었다. 앞을 보며 걷는데 어디선가? 매우 괴괴하고 음산한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는 순간! 개천의 폭을 넘치는 물들이 백마떼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판단했다. '앞으로 달리면 저 물에 휩쓸릴 것이다. ' 즉시 옆을 바라봤다. 긴급대피용 시다리가 있었다. 재빨리 사다리를 잡고 올라갔다. 다행히 사다리 높..

수필 2023.09.17

조선3대 여류시인 -이매창의 묘에서

이매창의 묘에서! - 윤여설 413년 전에 가신 기생의 무덤 앞에 섰다. 38세의 짦은 삶을 뒤로하고 떠난 여인! 수 많은 선인들의 무덤 앞에 머리숙여 봤으나, 오늘처럼 애절하고 안타까운 건 처음인 것같다. 관기와 아전 사이에서 태어나, 관기의 삶을 걸어야 했던 매창(梅窓)! 스스로 자신의 호를 "계생"에서, 창에 어리는 매화 즉"매창"으로 바꾸어 지었다고 한다. 관기녀의 삶은 공물(公物)에 불과하다. 보통 12세에서 16세 사이에 살수청을 들기 시작한다. 즉, 수령의 성노리개부터 각종 연회에 끌려가서 춤과 노래를 선사하고, 시도 지어야 했다. 기록에 의하면 악한 수령에게 맞아 죽거나, 장애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도령이 구해준 성춘향이처럼 수청을 거부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

수필 2023.04.24

반란하는 봄 -윤여설

반란하는 봄 -윤여설 시인 올 봄엔 코로나인한 마스크착용 의무가 해제가 되고 4년만에 기대에 부푼 봄이었다. 또한 지방의 꽃축제가 다시 부활해서 진해 군왕제 등등이 반가웠다. 지난 겨울이 예년보다 유독 추워서 올 봄은 어쩐지 날씨가 포근한 것같아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어디 좋은 곳에 꼭 여행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날씨가 갑자가 초여름날씨를 보이기 시작했다. 4월 1일의 기온이 26도를 나타냈다. 초여름 6월의 기온이다. 또한, 스모그와 미세먼지가 극성을 피워 근 3주간 세상이 매캐하고 눈이 뻑뻑했다. 3월 초에 이미 겨울잠에서 깨어난 도마뱀 등이 움직임이 포착됐다. 빠르게 다가오는 계절의 모든 것들이 반갑지 않게 반가웠다.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앞산이 꽃으로 만발했다. 꽃들이 ..

수필 2023.04.09

국역<촌은집>을 읽고

국역을 읽고 - 조선시대 가장 낭만파 시인 유희경 ​ - 윤여설 ​ 유희경이 지은 이 한글로 번역돼서 출간됐다. 조선중기 한시대를 풍미한 시인의 작품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출간된 일종에 전집형식이다. 문학사적 의의가 매우 큰 작품집이다. 책의 앞부분에 연보가 추가됐고, 현대적 해석과 번역자의 해제와 뒤에 원문(영인본)까지 수록돼 있다. 사후 387년만이다. ​ 촌은 유희경(1545~1636년)은 서울에서 태어나 92세까지 장수한 당시엔 매우 보기 드문 시인이다. 또한 ​ 평민에서 가선대부까지 오른 대단히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인 부안의 매창과 연정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매우 파격적인 로맨스를 뿌렸다. 유희경은 부안의 매창이 시..

수필 2023.03.18

인구감소를 실감하며

인구 감소를 실감하며 - 윤여설 시인 내 고향 논산 연무에 황화초등학교가 오늘3월 7일 날짜로 폐교가 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참으로 부모님이 떠나가시던 슬픔을 다시 겪는 듯이 허전하다. 우리 마을에서 내가 늘 뛰 놀던 운동장과 느티나무가 선하게 눈에 들어온다. 나의 뿌리이자! 20%이상을 성장시켜준 고향에 가면 꼭 들러서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곤 했다. 1930년도에 개교해서 92년의 역사와 60만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한때는 26학급 전교생이 2,000명에 가까웠다. 이제 시골은 외국인들이 내국인 수를 추월하는 마을도 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10여명 뛰어노는데 곱상한 한 아이가 소외되고 있었다. 확인해 봤더니, 모두가 혼혈이고 그 소외되는 아이만 우리 순혈통이었다. 시골이 소외되고 인..

수필 2022.03.07

정읍의 무성서원 - 가장 작고 의미 있는 서원

정읍의 무성서원 가장 작고 의미 있는 서원 - 윤여설 시인 정읍시 칠보는 노령산맥이 끝나는 마지막 줄기이다. 둘러보면 칠보 발전소가 보이고 산으로 둘러싸여 매우 아름답다. 또한 풍수적으로도 매우 길지이다. 이곳 원촌마을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당을 제향공간으로 모시는 무성서원이 있다. 다른 서원보다 독특한 면이 많다. 보통 서원은 조선시대 인물을 배향하고 있으나, 무성서원은 신라 최치원을 배향하고 있다. 최치원이 이 지역에서 태수를 지냈다고 한다. 이 곳이 한때는 신라지역였다고 전해진다. 최치원의 생사당(生祠堂)으로 생존시에 사당이 건립됐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유일하다. 자칫 우상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원은 이곳에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가 떠난 뒤에 고을 주민들은 그를 잊지..

수필 2021.09.15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며 - 윤여설 시인 8월에 마지막 날이다. 물론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시월에 마지막 날보다는 감흥이 적지만, 무덥던 불볕더위와 열대야의 밤! 여름을 보낸다는 의미에서 시원섭섭하다. 올해 여름은 유독 무더웠다. 작년 여름은 매우 선선해서 새해 바다에서 사진을 많이 담았다. 올여름은 매일 코로나 확진자가 네 자리 숫자가 넘어 나들이하기는 좀 부담스러웠다. 또한, 방역 4단계라서 18시 이후엔 식당에도 2명 외엔 출입할 수도 없었다. 이 여름에 무엇을 할까? 어떻게 보낼까? 망설이다가 그동안 쓰고 싶었으나 사정상 밀려두었던 글을 썼다. 뱀에 대한 엣세이 형식의 글을 쓰기로 했다. 10여 년 전 가정 사정으로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에서 잠시, 2년 정도 생활했다. 청정지역이라서 낮에도 고라니가 들판..

수필 2021.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