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논둑길에서 가을 논둑길에서 - 윤여설 시인 나락목 사이로 가을이 지나간다 살랑살랑 강아지풀은 여유를 갖고 갈콩도 배가 불렀다 물꼬는 말라붙은 젖가슴되어 주름진 얼굴로 미소짓고 맑은 웅덩이에는 개구리, 송사리 한마당 어울려 축제판이다 내 마음은 비루먹은 당나귀 터덜터덜 논둑길 걷는다..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봄 봄 - 윤여설 시인 고층건물 사이 아지랑이를 보면 머얼리 보리밭길 아른아른 책가방든 계집애가 다가온다 난 같은 갈래머리 날리며 단정한 스커트자락 길가 개나리의 미소에는 그 애의 웃음소리가 귀에 감미롭고 정신을 가다듬으면 매연 속에 물결치는 차만 번쩍이는데 살랑거리는 공기..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개나리꽃 개나리꽃 - 도로변 화창한 봄날 열지어 소풍가며 재잘거리는 아이들 기쁨에 들뜬 아이들의 합창소리다 새들도 즐거워 머리 위 요동친다 뒤쳐진 녀석들 노란 주둥이 뾰죽거리다 환하게 웃으며 따라오고 앞서간 개구장이 녀석 벌써 저만치 간다 창밖 보는 순간 슬픈이 미소 띄고 기쁜이 입막고 폭소다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무지개 무지개 비 그친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든 해질녘 동쪽 구름 사이를 요리조리 헤집고 꽃열차가 달려나온다 가득 탄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합창하는 옹달샘이 구름 사이를 빠져나온다 어린 아들놈은 꽃열차를 쫒아갔다 먼저 쫓아 예까지 온 나는 머리가 희어간다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와서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기다림 기다림 - 눈 오는 밤 혼자만 유쾌히 노는 시계와 살아있는 건 나뿐 깃든 어둠 가슴을 누르는데 누가 원없이 사랑하는지 한없이 저주하는지 머리에 얼음 매단 듯 잠마저 잃었다 등불 켜 어둠을 밀어내면 머얼리 개짖는 소리 미화원 빗자루 소리 저게 네 음성인가 가만가만 속삭이는 소리 내다보면 정원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독감 독감 - 눈 오는 밤 숨어든 바이러스가 불을 지펴 엄동에도 내의가 흥건하다 고열에 뒤척이는 신음 간간히 겨운 기침에 문갑 위 목각오리가 퍼덕이고 아내가 마음조인다 봄을 맞기 위한 시련일 게다 새움이 트는 걸 보면 혹한 속에 나무들도 분명 열을 품고 있을 게다 눈 사이로 살포시 신문 넣는 소리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봄날 봄날 누가 자꾸 불러 커튼 젖히면 머언 산 아지랑이만 아늘아늘 다가옵니다 자꾸 누가 손짓해 문을 열면 활짝 웃는 목련 속 달빛만 가득 고여 있어요 갑자기 누가 문 두드려 내다보면 나무 흔들고 가는 바람 우수수 지는 살구꽃잎 무엇이 불현듯 허전해 밖에 나갔더니 이삿짐차 금방 떠난자리 뛰노는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앙상블 스테레오 앙상블 스테레오 봄날 새벽 산에 오르면 분위기 좋은 음악회에 초대된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무대 밤새워 축원하는 산사의 풍경소리에 먼동이 트고 진달래 불길 속 온 골을 메아리 놓는 장끼의 목청 가다듬는 소리 돌 틈을 헤쳐나오는 계곡물의 화음에 해가 솟는다 잔가지 하나를 물고 비상하며 짝..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플륫 플륫 그곳에 가고싶다 누구의 음색이 물보라같이 고운가 거짓말처럼 눈부셔 숨이 막힌다 아! 플라타너스잎 지는 가을밤 칠팔 년쯤된 부부의 창에 어리는 몸에 띠 마음에 두른 것 깨끗이 푼 부드러운 안개꽃 같은 흐느낌 돌 사이 잔잔히 물 흐르는 쾌감 밤 깊을 수록 아리한 별빛이 정감어린 초연의 원..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개찰구 개찰구 그냥은 지나갈 수 없어요 팔을 수평으로 뻗고 가로막는 건 달아오른 육신 때문입니다 당신의 손이 내 몸에 다가올 때 갈증으로 충만한, 움직이지 않는 전율을 모르셨나요 합궁을 기다리는 성애의 침묵을...... 노란 티켓 한 장으로 스스로 몸을 푸는 지하철 게이트 푸른 엄지족 저자 윤여설 지음..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