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아름다움 부패한 아름다움 밭이 아니야 환경에 적응할 줄 알아야지 소금물에 몇 시간 수양하더니 의기양양한 녀석들 몸부림도 멎고 기가 꺾였다 고춧가루 전신에 화장하고 죄없이 끌려간 독 절대공간에 절정의 고독을 견디다 못해 해탈했나 보다 풋풋한 모습은 흔적 없고 발효된 누릿한 얼굴로 식탁에 오른 원..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밤파도 밤파도 안온한 어둠을 헤치고 병사들이 인해전술로 몰려와 상륙하려다 맥없이 흩어진다 밤새워 격렬히 들끓는 해조음 아무렇지 않은 잔잔한 아침 굳건히 방어한 절벽의 허리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자국들 하얗게 질려 밤을 지켜본 벼랑에 해당화 한 송이 두려움에 지쳐 붉은 눈물이 맺혀 있다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술의 노래 술의 노래 사랑해다오 한 맺힌 넋을 구천을 맴도는 가련함 초록 한 번 틔우지 못하고 누룩으로 썩고 주정으로 건져진 영혼 어서 사랑해다오 사랑한 양만큼 그대 투명한 이성에 상처 내고 한을 풀어야 흙으로 돌아간다 그대 몽롱해 어질어질 핏발선 눈빛은 내 영혼 이제 안식 찾아 잠들고 싶다 푸른 엄..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사라지는 저녁 연기 사라지는 저녁 연기 아직은 정말 멀쩡한데 고요가 짓누르는 마당에 널브러진 가재도구들 갯벌에 누운 폐선마냥 쓸만한 집이 사위어 간다 강이 그림같이 흐르는 어귀에 장승 내외가 먼 바래기한다 붙드는 당산나무를 뒤로하고 스모그가 위협하는 낯선 곳으로 갔다 안개처럼 휘감고 도는 저녁연기 아..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부평초 부평초 이곳 저곳 기쁘잖은 없는 사람 이사다니는 고통보다 큰 아픔도 드물게다 통근거리나 정서로는 옮기는 것이 개운하지만 포장하면 어디 숨었었는지 없는 듯 자잘한 것이 손길 잦은 이삿짐이다 내놨더니 속모르고 유쾌히 볕하고 재잘거리는 가재도구들 보증금과 노비문서 같은 계약서를 맞바꿔 ..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여름 여름 출근길 보도블럭 틈새 간밤 비에 퍽 자랐구나 애틋한 이슬방울을 달고 겨누는 창끝이 귀엽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비밀을 숨기듯 발을 깊숙이 감춘 잡초들 사운대는 바람에 머리를 좌우로 갸웃거리며 즐거운 듯 부끄러운 듯 마주하고 옹알거린다 기하학적으로 삭막한 시멘트 공간에 연한 동작 하..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산뜻한 손님 산뜻한 손님 아파트 한 집 한 집은 절해 유배지다 이웃을 모르는 건 당연하고 경비원 덕에 찾는 이도 없다 스스로 잘 절연된 옥에 갇힌 삭막한 주거 고독을 풀어주는 안정제 같은 재잘거림에 내다봤다 창 밖 새시를 붙들고 곡예하는 화분받침대에 참새 몇 마리가 실망해 그냥 간다 허전함에 쌀 몇 톨을..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편리한 봉짓 편리한 봉짓 보관료 한 번 톡톡히 문다 내 돈 찾는데도 수수료 내네 하루만 빌려도 에누리 없는 고리대금업자 벌건 대낮 눈뜬 사람 등치는 고단수다 사람 모인 곳 어디나 음흉이 구원처럼 손짓하는 현금자동인출기 창녀같이 아무 금융카드나 받아들인다 저 사기꾼 신용을 보증한다는 카드 한 장이 손..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고려장 고려장 흔적이 없구나 앞니 빠진 아이들이 뛰어 놀았고 아직은 등 굽은 붕어가 원망도 없이 지렁이를 쫒았고 그 위로 허기진 물총새가 나르는 사이 저쪽과 이쪽 마을의 외롭지 않으려는 인심이 징검다리를 훈훈히 오갔다 목이 하얀 은사시나무가 서 있었고 구린내가 코끝을 스쳤지만 치료가 가..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
볼 수 없는 아픔 볼 수 없는 아픔 적당히 가릴 곳은 가려야 더욱 아름답다 버드나무가 알맞게 우거진 그늘 아래 물고기가 놀고 갈숲에 새가 우는 강변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멘트 포장된 알몸으로 누워 하늘 안고 뒤척이는 한강 건널 때마다 고문당하는 걸 어쩌지 못하는 기분이다 몸을 숨기려고 꿈틀거리는 잔물결.. 시집:아름다운 어둠(전편수록) 200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