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독과 바다, 그 너머의 사랑
바닷가 카페에 앉아 있다. 창밖으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쉼 없이 다가왔다가 밀려간다. 쓸쓸한 겨울 바람이 유리창을 스치고, 나는 뜨거운 커피잔을 두 손에 감싸 쥔다. 파도 소리에 마음이 젖는다. 그 소리는 어쩐지 아내가 피아노로 치던 쇼팽의 녹턴 같기도 하다. 부드럽고, 아련하고, 슬픈.
내 나이 이제 60후반을 훌쩍 넘었다. 언제부터인가 매년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몸이 추운 게 아니다. 마음이 시리다.
나는 34개월, 겨우 돌을 막 지난 아이였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연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의 울음과 그 뒤로 찾아온 지독한 외로움만은 어린 마음에도 선명했다.

그러나 나는 살아야 했다. 고통은 때론 이정표가 되어주었고, 나는 고개를 들고 걸었다. 운이 좋았는지, 성실함이 길을 만들었는지, 내 삶은 조금씩 나아졌다. 결혼도 했다. 소외된 내게 처음으로 웃음을 선물해준 여인이었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던 사람이었고, 바다를 무척 사랑했다. 바닷가에 서면 영혼이 정화된다고 말하던 그녀의 눈빛이 참 맑고 고왔었다.
또한 늦게 딸도 낳았다.그 아이가 열한 살까지는 행복했다. 아이는 밝고 따뜻했고, 엄마를 많이 닮았다. 그런데 그 아이 열한 살 되던 해,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손을 놓는 순간, 나는 심장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를 잃고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14년을 홀로 살았다. 아이는 자랐고,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섰다. 나는 뒷모습만 바라보며 응원했다. 그리고 다시 고독이 나를 감쌌다.
바닷가에 오면, 나는 그녀를 만난다. 여전히 긴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파도 앞에 조용히 서 있는 그녀를. 피아노 대신 바다와 대화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살아야 할까? 삶은 상실의 연속인데, 살아가는 의미가 뭘까? 대답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 바닷가에서 아내를 떠올리는 이 아릿한 감정이, 어쩌면 그 자체로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통이 있었고, 나는 그 고통을 견뎌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 아주 조용히, 아주 천천히, 파도처럼.
아내여, 당신이 그리운 날이다. 당신의 손을 잡고, 파도 앞에 함께 서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지금도 살아갑니다."
바다는 여전히 넘실거린다. 그리고 나도, 그 바다에 마음을 실어 본다.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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