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대역에서

기차는 멈췄고
시간은 그 자리에 앉았다.
창문 너머로
수많은 이별과 만남이
기적소리에 실려 흘러갔던
그 날들의 정거장
발자국조차 낡은 플랫폼 위로
바람만이 종종걸음친다.
낡은 시계는 멈췄지만
기억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입영하던 날,
누군가는 마지막 편지를 들고
여기,
이 하얀 역 앞에 서 있었다.
철길 위로 쓸쓸히 내려앉은 햇살,
그 틈새로 나는 묻는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기차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오늘도 이곳에서 다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