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생물/한국의 뱀

구렁이 -- 가장 큰 뱀

윤여설 2021. 8. 2. 23:06

<한국의 뱀>

에어컨 실외기 아래 따뜻한 곳을 찾아 왔다. 2.5m정도

 

 

 

                                                    구렁이

                                                            - 가장 큰 뱀

 

 

 

 

 

                                                                                             - 윤여설 시인

 

 

몹시 자식을 바라던 할머니가 마침내 아기를 낳고 보니 구렁이였다. 구렁이는 착한 이웃집 셋째 딸과 혼인하는 날 허물을 벗고 잘생긴 신랑이 되었다. 신랑은 과거를 보러 가면서 아내에게 뱀허물을 잘 간수하라고 주고 떠났다. 하지만 잘 간수하라던 허물을 색시의 언니들이 태워버리고... 구렁이 신랑은 색시가 자신과의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신랑을 찾고자 모진 시련을 견뎌 내며 색시는 신랑을 찾았고 마침내는 다시 신랑과 결합해서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

 

- 전래동화<구렁덩덩신선비> 중에서

 

공원의 나무 화분 아래 구렁이

 

동화에 등장할 만큼 예전엔 흔하고 친숙한 뱀이 구렁이였다. 농경사회에서는 창고에 해당하는 헛간에 거의 구렁이 한 마리 씩은 살았다. 대들보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담장을 타고 오르기도 했다. 또한 헛간에 알을 낳기도 했다. 그러던 구렁이는 이제 멸종위기 1급으로 지정돼 있다. 그동안 잘못된 보신문화 탓이다.

 

구렁이는 국내 뱀 중에서 가장 크다. 성체 중에는 2m가 넘는 놈도 있다. 뱀은 자신에 몸통의 지름 4배 두께를 포식할 수 있다. 구렁이는 토끼 등은 물론이요, 고라니 새끼 등도 포식한다. 국내 구렁이는 비교적 순해서 사람은 거의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성격이 거친 녀석은 마구 달려들기도 한다. 자칫! 아이들은 감기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뱀들은 사람을 판별할 때, 자신이 공격해도 먹을 수 없는 덩치가 큰 단백질덩이 정도로 인식할 뿐이다.

 

어느 여름날! 정자나무에 까치무리들이 요란히 울어대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봤더니, 까치둥지를 향해서 구렁이가 오르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서 그만 뒀다. 마을 주민들은 구렁이가 나무에서 서식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 구렁이가 마을을 지켜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종에 에니미즘적 믿음이었다. 예전에 마을에서 수호신으로 모시던 습속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은 그처럼 자연과도 조화를 이루며 지내는 참으로 아름다운 민족였다.

도로에 나온 흑구렁이 2m정도

또한, 구렁이를 본 날, 복권을 샀더니 당첨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뱀이 덩치가 크고 친근하다 보니 신성시해서 나온 말일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 뿐이지, 복권은 구렁이와는 무관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나무에 오르는 뱀은 무독사 중에는 구렁이와 누룩뱀이다. 두 녀석은 사촌지간으로 보면 된다.

 

또한, 모든 뱀은 2005년 야생동식물보전법이 시행돼서 잡거나 먹는 것이 금지됐다. 2008년 7월 강원대학교생물학과에서 정부지원으로 월악산 구렁이의 행동반경을 연구하려고 허가를 받아 구렁이의 몸에 칩을 부착했다. 전파수신기로 계속 추적하던 중에 어느 민가에 이 녀석이 들어가 있었다. 연구원들이 이 집에 들어가서 확인했더니, 이 집 주인이 땅꾼이었다. 구렁이를 내 놓으라고 했으나 계속 부인해서 결국은 고발이 되고 벌금을 물었다. 그리고 구렁이를 구출했다. 이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개천에서 발견된 구렁이. 몸에 그물이 감겨 있다

 

구렁이는 몸색 변화가 매우 심하다. 노란색은 황구렁이, 검은색은 흑(먹)구렁이다. 그러나 두 종류가 염색체는 모두 같다. 또한 흑질황장, 흑질백장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행동이 느린 사람을 보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구렁이는 매우 느리고 행동반경이 1년에 0.8킬로 정도이다. 즉 울 안의 헛간에 서식하면 거의 헛간에서 평생 산다고 보면 된다. 예전 시골집에는 쥐나 새 등이 많아서 이들이 사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또한 헛간은 번식과 포식을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였을 것이다. 주인은 일종에 업보(業報)로 알고 보호해 주었을 것이다. 비교적 순한 편이라서 사람도 부담없이 생활했을 것이다.

 

 

창고의 종이박스에서 발견된 구렁이

 

그러나 요즘 시골집에 구렁이가 울 안에 서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서식할 만한 초가지붕도 없고 헛간도 사라졌다. 다만, 민가 근처의 시멘트 바닥에서 자주 발견되곤 한다. 쥐를 추적해서 내려왔을 것이다. 또한, 에어컨 실외기 아래에서 발견된다. 따뜻한 바람을 찾아 왔을 것이다. 이제 구렁이가 살 만한 곳은 거의 없다. 이 녀석이 법적 보호를 받지만, 많이 줄어들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