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생물/한국의 뱀

무자치(물뱀)- 논(畓)에서 생태계의 우두머리

윤여설 2021. 8. 11. 18:27

<한국의 뱀>

독사흉내를 내며 머리를 삼각으로 한 무자치

 

 

무자치(물뱀)

-논(畓)에서 생태계의 우두머리

 

 

 

 

 

- 윤여설 시인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개구리가 울고 뜸부기도 날아오며 매우 풍부한 생태계가 조성된다. 거머리가 미꾸라지 목을 흡입하기도 한다. 수중 생태계가 거의 완벽했다.

이 시기이면 벼포기 사이로 휘저으며 이제 갓 부화한 뜸부기새끼를 교묘하게 낚아채는 녀석이 있다. 무자치(물뱀)이다.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서 한번 먹이를 낚으면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다만, 이 녀석은 배가 고프면 사냥을 하지만 한 끼 잘 먹으면 1주일 정도는 쉰다. 배부르면 곁에 지나가는 개구리도 내버려 둔다. 주로 개구리, 물고기를 포식하기 때문에 논에 생태계의 객체수 조절을 했으며 쥐나 새들로부터 벼를 지켜주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논에서는 이 무자치가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지금 시골에 논둑을 걸으면 둑에 풀들이 누렇게 말라 죽어 있다. 제초제를 살포했기 때문이다. 또한, 논도 예전처럼 다랑이식으로 층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경지정리를 마친 논이라서 모두 바둑판 같다. 그리고 논둑의 두께가 매우 얇다. 무자치는 봄에서 가을까지 논에서 생활을 하다가 논둑에 들어가서 동면을 했다. 그리고 봄에 다시 눈뜨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경지작업을 하면서 윗논과 아랫논의 높이 차이가 없어졌고 수해를 대비해 두텁고 높았던 논둑은 얇아져서 뱀이 동면할 곳이 없고 새끼가 자랄 곳이 못 된다. 또한 무분별한 농약의 살포로 많은 생명체들이 사라졌다. 무지치도 따라서 논을 떠났다.

 

예전엔 시골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던 뱀이었다. 이제는 누룩뱀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렇다고 완전하게 멸종되지는 않았다. 주로 저지대의 습지와 호수 하천처럼 물이 인접한 곳에서 가끔은 발견된다. 이 무자치의 가장 큰 특징은 난태생이다. 국내 독사 3종(살모사, 쇠살무사, 까치살무사) 외에 난태생은 이 녀석이 유일하다. 살모사처럼 어미몸에서 알이 부화돼서 새끼로 나온다.

전체 길이가 50~70cm 정도의 보통크기이며 독은 없다. 무자수, 수사, 떼뱀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수리와 머리 측면의 줄무늬는 목덜미부터 몸통 끝까지 흑갈색 반점으로 이어져 있다. 몸색변화가 비교적 덜 심한 편이지만 누룩뱀과 혼돈할 수가 있다.

서식환경이 나빠져서 주로 도로에 많이 올라온다.

경지정리 작업을 하면서 생태는 전혀 고려치 않은 것 같다. 논에 인공 수로가 어떤 경우는 거의 운하급이다. 생명체가 빠지면 나올 수가 없는 깊이다. 살펴봤더니, 수로에서 나오지 못한 고리니와 다수 생명체의 뼈가 수북하게 발견된 예도 있다. 밤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수로를 건너려다 추락했을 것이다. 생명체의 이동은 본능이다. 또한, 야행성 동물이 많다. 낮에 자고 밤에 주로 활동한다. 고라니, 멧돼지 등이 그렇다. 뱀도 살모사는 야행성이다. 이 동물들에게 수로는 건너지 못할 함정이다. 농사를 짓기 위한 인간의 편리가 다른 생명체의 무덤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느 작은 폭포 아래 물고기가 풍성히 서식하고 있었다. 다음 해에 갔더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잘 살펴봤더니, 폭포 아래에 수백 미터 지점에 사방댐이 건설돼 있었다. 댐의 높이가 커서 작은 물고기들은 도저히 오를 수가 없다. 이렇게 물고기의 생태는 단절됐다.

일부 생태학자들은 파괴속도가 현재와 같다면 21세기 말까지 현존하는 동식물의 50% 이상이 멸종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전에 어느 책에는 뱀은 백해무익한 생명체이므로 만나면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나도 또한 뱀을 보면 보는 족족 죽였다.

비닐에 머리를 넣은 무자치. 주로 서식지가 경작지이다.

 

요즘 다행인 것은 서울의 한강과 청계천에서도 뱀이 발견된다. 생태계가 조금씩은 호전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생태계의 다양한 구성요소 중에서 파충류는 먹이사슬의 중간 위치를 점하고 있다. 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도시가 유지되는 것도 시골의 생태가 뒷받침을 해 주기 때문이다.

 

하루속히 무자치가 논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