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가 있다. 저 안내판 아래의 작은 화살표 "백지사터 성지"란 신자들을 처형할 때 백지에 물을 적셔서 코를 덮어 질식사 시킨 장소를 말한다. 여산 동헌 앞뜰에 있다.
순교성지 진입로
이 곳에서의 처형은 어느 곳보다 잔혹했다고 한다. 여산은 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이 지금 남아 있다. 그 앞 뜰에는 부사들의 공덕비와 척화비가 있다. 여산면 전체가 순교성지라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기도와 순교성지의 내력이 적혀 있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위치. 비가 내려 사진이 선명 못하다. (2006년 7월 20일 순례)
그 당시의 천주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철저한 계급(양반 상민)이 존재했던 봉건사회.
아마,
"主를 믿기만 하면 평등해 진다"는 사상은 그 시대의 구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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