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및 유적답사

왕의 남자 연산군의 묘

윤여설 2006. 7. 6. 14:51

 

(영화 왕의 남자 포스터)

 

야사에 의하면 연산임금은 실제로 남색을 밝혔다고 한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하고 있다.

도로에서 100여미터 떨어져 있으며 아파트 단지 바로 뒤에 있다.

 

 

 

 

 

 

  좀 가까이서 봤다.

  저 두 분이 연산임금과  평산신씨이다

  묘는 매우 조촐하며 사대부가의 분묘정도의 규모이다. 뒤의 곡장(담장)정도가 일반 분묘와 다를 정도이다.

 

 

  묘소 전경이다.

  맨 위가 연산군과 평산신씨이고, 그 아래가 궁인조씨(강화도 귀양 때의 후궁)이고, 가장 아래가 연산임금의  딸과 사위의 묘이다.

 

 

 

 

연산군 묘 앞에 있는 은행나무. 보호수이다.

 

 

  

    연산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누워 있을까?

 

    조선왕조의 10대 임금으로 가장 폭군이었으며, 구테타로 실각해서 군(君)으로 강등된 연산 임금!

   어떤 정신과 의사의 분석에 따르면 그는 현대의학로 진단할 때 전형적인 중증의 우울증 환자였다고 한다. 불행한 어린시절의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라고 한다.  동정이 가는 면이 없지 않지만, 군주로써의  그의 행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도저히 용서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무덤 앞에서

   그 시절!

   지금처럼 우수한 우울증치료제만 있었으면 그렇게 폭군은 되지 않았을 텐데,하는 좀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 윤씨를 폐비시킨  할머니(인수대비)를 살해하고  계모격인 엄씨와 정씨를 그의 친아들(연산의 이복동생)을 시켜 죽이게 하는 폭정을 저지른다. 뿐만 아니라 그의 당숙(제안대군)의 첩을 데려와 자신의 후궁(장록수)으로 삼는다.

 

      연산의 묘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과연 사람은 선한가? 악한가?

 

   사람은 선과 악의 2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매우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인간은 본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연산은 폭군이자, 매우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시 시125편이 연산일기에 수룩되어 있다.

 

그 중 두편을 소개한다.

 

 

1496년 11월 23일 (21세)

 

 

많은 근심

 

기침은 심하고 근심은 많으니

지친 마음 그치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새 잠을 못 이루네

간관들은

종묘사직 중한 것은

생각지도 않고

소장이란 소장마다

경연에만 나오라네

 

 

1499년 3월 3일 (24세)

 

 

어찌 이 날

 

어찌 이 날

술 내리기를 사양하리

잔뜩 취해 오거든

나를 위로하여라

 

 

 

 

*연산군묘는 7월11일부터 시범 개방된다.

 7월 6일 탐방했을 때 개방준비가 한창이었다. 그 동안 개방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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