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산을 오르며

윤여설 2006. 2. 7. 00:28

 

  시간이 나는 대로 산에 오른다. 도심에 살면서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다. 그저 460미터 정도의 남한산성에 오르는 것이 내 건강관리의 전부이다. 또한 내가 서울에 살면 가장 많이 오른 산이기도 하다. 거의 평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를 오른다. 이 산 아래의 마을로 이사 온지가 십삼 년이 넘는다. 일주일에 한번만 올라갔어도 500번이 넘는 셈이다. 남한산 계곡이나 능선 중에서 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다면 억지일까.


  산에 오르면서 우선 한여름에 나무들이 볕을 가려 그늘을 만들고 대지를 포근히 품어 안는다.  숲에 들어서면 우선 믿음직한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 같다. 저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들과 갖가지 짐승들, 그리고 땅에 기는 거미 나방 등 수많은 곤충들이 조화롭다. 하늘은 아래에 산을 키우고 산은 품에 나무를 키우며 나무는 품에 온갖 생명을 키운다. 또한 산은 인내를 길러 준다. 땀을 흘리면 땀의 수고를 바로 느끼게 한다. 


  그다지 높지는 않은 산이지만, 언제 다 오르나 하다가도 땀을 한 번 쭉 흘리고 나면 정상이 눈앞에 와 있다. 또한 정상을 밟으면 수고의 보람을 느끼게 하고 곁에는 또 다른 더 높은 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서 출세를 했다고 해도 또 다른 분야가 있다는 것을 느끼듯이 말이다. 정상에 서서, 더 높은 다른 산을 보며 고마움을 느끼면서  자만에 앞서 겸손함을 느끼게 한다. 산을 오르는 일은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또한 정상은 아래를 내려다보게 한다. 아래에 바다처럼 펼쳐진 도시나 들판을 보면 그곳에서는 차마 보지 못했던 도시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기에 앞서 이 엄청난 자연 앞에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알게 한다. 그리고 저 도시가 살아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다는 알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도덕의 작은 것들이 이 사회를 이룬다는 것을 깨치게 한다.

  
  정상에서 땀이 마르면 바로 내려온다. 올라가는 것이 도전이라면 내려가는 것은 지혜인 것 같다.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마조마 하다. 내려오는 길마다 나도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가끔 나무를 잡는다. 사람들의 손길이 너무 많이 닿아 죽은 나무도 있다. 그들은 인간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자신이 막아 주고 대신 죽음을 택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나무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한 술 더 떠서 올라다니기에 편하도록 길가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잘라버렸다. 그러나 비나 눈이 와서 미끄러워지면 붙잡을 나무가 없어서, 앉아서 뻘뻘 기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인간의 이기성이 자연이 주는 혜택을 외면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산길가에 있는 덩치가 큰 나무들도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굵은 뿌리가 실개천처럼 드러나서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넘어질 것같이 아슬아슬하다. 또한 영양실조로 잎도 제대로 피지 못하고 안색이 누런 나무들도 있다. 내가 처음 이 산에 다닐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나고 주위에 아파트가 들어서고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특산품인 노란 붓꽃도 가끔 눈에 띄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난과 붓꽃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서로 이것이 난꽃인가요. 하고 물어보기도 했고 물어보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모두가 새롭기 신기하기만 했는지 서로들 의아해 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그러더니 그 다음 해의 봄이 되자 아예 보이는대로 붓꽃을 뽑아가버렸다. 


   더욱이 기가 막힐 일은 어떤 노인이 이 산에 움집 비슷한 토굴을 만들어서 기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이 노인의 토굴에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 노인이 어느 날부터 등산로에 시멘트 계단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물어 봤다. 누구의 지시로 만드냐고...... 노인은 자비를 투자해서 계단을 만든다는 것이다. 등산객들은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자재를 운반해 준다. 어느 누가 나서서 못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 나도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가 몇 번을 그냥 두는 것이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고 또한 등산객들도 흙을 밟고 산에 오르는 것이 더욱 값진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 노인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기 편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생태계의 파괴라든지 불법이라는 설명은 그 노인은 이해도 못할 뿐더러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노인은 죽기 전의 필생의 자선 사업으로 그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산에 철조망 하나만 쳐도 몇 년이 지나면 생태계에 변화가 엄청나다고 한다. 


   이렇듯이 우리의 자연은 알게 모르게 파괴되고 있다. 우리에게 해가 될 일은 전혀 하지 않은 산은 오늘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사람에 의해서 점점 죽어가고 있다. 장차 그들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을 매우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아니 우리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후손에게는 전혀 회복이 불가능한 재앙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자연의 파괴에 의해서 지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 여러 곳에서 그러한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우려할 만한 일이다.


                                       1999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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