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문명의 고통

윤여설 2006. 2. 9. 11:39
 

 


<수필 : 15매>

                                       문명의 고통



                                                                               



버티컬을 내리고 커튼을 쳐도 가구의 윤곽이 뚜렷하다. 불면에 시달릴 때마다 곤욕스럽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화려한 도시의 밤풍경은 가끔 어지럽다는 느낌이 든다. 저 요란하게 손짓하는 불빛들. 밤을 장식하는 네온사인이 현란하다 못해 충격적으로 선정적이다. 다시 불을 켜고 앉아 책을 펼쳐든다. 졸음이 오기는커녕 거울을 바라봤더니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어 눈이 초랑초랑해 졌다. 사십 대 초반에 접어들어서인지 조금만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따끈한 우유를 한 잔을 가져왔다. 속이 따뜻해지자 몸이 조금 나른하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내가 민감한 탓인지 희미한 불빛들이, 마치 결제가 보류된 서류의 밑줄처럼 신경이 쓰인다.

분명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는 인간의 삶에 혁명적인 획을 그었다. 그러나 그로인한 역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올해(1998년)로 전력사업이 꼭 일 백년을 맞았다. 1898년 1월 26일 고종이 지금의 서울 종로 2가에 국내 최초의 전력회사이자 한국전력의 전신인 한성전기회사를 세웠다. 내가 전기의 혜택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일 학년 때였다. 상당히 늦게 본 셈이다. 처음 전기를 개통한 마을의 사람들은 전기회사 직원이 켜 주고 간 전등을 소등할 줄 몰라서 입으로 호호 분 노인도 있었다. 그때의 신비함은, 밤이면 암흑이었던 마을이 새롭게 보였다. 밤늦은 하교길에 마을에 이르면 나를 반기기 위해 밝힌 마루의 전등이 어둠 속에서 조화롭게 반짝였다. 나는 그 전기를 연구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전기를 더욱 합리적으로 이용해서 인간들의 삶에 양과 질의 향상에 더욱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 전기를 공부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분야에 근무하고 있다. 그 많은 혜택을 본 내가 그 피해를 다시 보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차라리 전기가 없었던 시절의 풍성함을 회상하기도 한다.

상념에 또 머리가 어지럽다. 언젠가 산사에 갔을 때였다.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너무나 안락하고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일단 잠에 들려고 눈을 감았을 때 눈가에 어리는 빛이 없어서 편안했다. 휘황찬란한 불빛들만 대하다가 요사체 마루에 앉았을 때는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어린 시절을 회상케 했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고향에 온 것만 같았다.

별은 밤하늘을 수놓았다면 전등불은 밤하늘을 모자이크했다는 느낌이다. 별자리는 자식을 품에 안은 어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놓은 자수라면 네온사인은 아직 습작기에 있는 화가의 거친 작품만 같다. 그러나 요즘은 고향에 가도 별들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늘어서 있는 가로등 때문에 전처럼 온유함도 없고 도시 같은 차가움이 앞설 때가 있다.

낮 뒤에 밤이 필요하듯 어설프지 않은 확실한 어둠도 분명 필요하다. 도시에서도 별을 관찰할 수 있으며 유성을 바라볼 수 있고, 밤하늘의 주인처럼 떠 있는 복스러운 보름달의 얼굴을 보며 가족들과 다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어둠이 필요하다.

다시 밖을 봤다. 붉고 푸른 불빛들만 밤의 주인이 되어 유혹한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듬성듬성 희미하게 몇 개의 별들이 떠 있을 뿐이다. 북극성을 찾아봤다. 위치만 짐작이 되고 확인할 수가 없었다. 오로라처럼 지표를 뒤덮은 공격적인 불빛들에 치어 숨어버렸다. 북두칠성을 찾아봤다.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저 북두칠성에는 어린 시절 동무와 우정을 약속하며 정한 별이 있다. 그와 별빛에 표백되어 뛰놀던 고향의 밤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 바라다 뵈는 밤은 그때의 하늘은 아니다. 왠지 화려한 것같지만 허전하고 풍성한 것처럼 보여도 향락적이며 퇴폐적이다. 분명 저 하늘에 별들은 변함없이 떠 있다. 다만 빛의 침략에 힘을 잃고 있다.

지금 하늘을 보는 사람이 이 도시에서 몇 명이나 될까. 세기말적 후기 정보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나만 필요 없는 회상에 젖은 것은 아닐까.

참된 어둠을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도시의 어느 일정 구역을 정해서 도심 속의 고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낮에는 정상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다가 밤이 되면 그곳은 자동차들도 일정 구역 밖에 주차를 시키고 걸어 들어가는 곳. 가로등은 있지만 위급한 상황 외에는 켜지 않으며 상점도 주택도 거리도 강렬한 빛을 발하는 전등이 아닌, 모두가 촛불이나 남포불을 켜 놓고 생활하는 자연의 밤을 즐길 수 있는 동네. 그곳은, 골목만은 포장을 하지 않아 흙을 직접 밟을 수 있으며, 시골처럼 울이나 담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마을. 최소한 칠십 년대 초반의 시골 같은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동네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밤이면 골목에 뛰어 놀며 달을 볼 수 있고 강아지를 데리고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곳. 어둠이 점령하지 안은 곳에서 참된 자연을 맛보려는 사람들과 편안히 쉬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으면 좋겠다. 밤에는 거리로 나와 카페처럼 끼리끼리 모여 대화도 나누고 토론도 하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빛의 침투와 공격으로부터 격리된 밤을 보낼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이 엄연한 현실을......

찬란히 손짓하는 불빛들. 이제 저 도발적인 빛의 손길에서부터 벗어나고 싶다. 모든 전등의 조도를 조금씩 낮췄으면 좋겠다. 그것이  IMF시대를 사는 지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강렬한 빛을 발하는 조명시설은 주택가를 피해서 설치했으면 좋겠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귀가하는 가장을 기다리는 여인이 아이와 함께 문밖에 켠 은은한 마음이 깃든 외등처럼 잔잔한 조명이 그립다. 이제는 문명이 주는 혜택의 고통보다는 자연의 고마운 수혜를 되찾고 싶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전원에서 살고싶다. 내일은 숙면을 위해 창문에 극장처럼 검은 커튼을 달아야 겠다. 오늘밤이 속히 가기를 바랄 뿐이다.

뒤척이는 겨울밤은 짧기도 하다.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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