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화랑대역(폐역)

윤여설 2021. 6. 12. 12:55

화랑대역(폐역)

 

 

 

 

- 윤여설 시인

 

 

 

한때는 서울과 춘천을 연결하며 열차가 달리던 철길은, 이제 새로운 복선 전철에 임무를 넘겨주고 조용히 쉬고 있다. 아파트가 둘러싸였고 웅장한 한옥 건축물인 육사 정문 옆에 조용히, 그러나 나지막이 화랑대역사가 서 있다. 우리의 전통 건축물은 아니다. 좌우 지붕이 차이가 나는 비대칭 삼각형이다. 당시엔 모던한 건축물였을 것이다. 일본식 건축물로 봐야 할 것 같다. 등록문화제 300호로 지정됐다. 대합실이던 곳은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이 화랑대역을 중심으로, 좌우로 폐철로를 경춘선숲길로 조성해 놓았다. 서쪽으로는 중랑천 옆 녹천중학교까지 3.5킬로와 동쪽으로 경기도 경계가 있는 담터까지 2.5킬로가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다. 또한 서쪽의 공릉동 도깨비시장은 많은 먹거리가 있다. 동쪽으로는 소나무가 우거진 태릉과 철길 끝에 삼육대의 인공호수인 제명호가 있다.

 

경춘선 개통 일화가 좀 독특하다. 일제가 춘천에 있는 강원도청을 경원선철도가 있는 철원으로 옮기려하자, 춘천의 유지들이 자본을 모아 건설한 순수 민족자본으로 신설된 철도이다. 근대 개화기의 모든 철도는 일제가 부설했으나 경춘선만은 국가 군형발전을 위해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건설됐다는 데어 높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일제가 철도건설을 허가해 준 건 또 다른 수탈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1939년 개통당시의 역명은 태릉역였다. 가까운 곳에 태강릉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옆에 육사가 있어서 1958년에 화랑대역으로 개칭됐다. 한때는 대학생들이 대성리나 강촌에 MT를 갈 때 이용하던 곳이다. 이제 기적소리가 멈춘 역구내에는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고 일본이나 체코에서 기증받은 전기동차가 서 있다. 어느 작은 열차 전시관에 온 듯하다. 정거장 안은 공원으로 조성돼서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고 있다.

이 폐철길에 경춘선숲길은 사계절을 시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사진을 담기에 좋은 곳으로 변해 있다. 지난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일까? 휴일의 경우 관람객들이 몰려와 붐빌 정도이다. 주로 아이의 손을 잡은 가족단위의 나들이객이 많다. 두 줄기 끝 없이 펼쳐진 레일 위를 양쪽에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사진작가들과 모델들이 작품을 연출하기에 바쁘다.

 

레일 위를 조용히 걸어본다. 이 철로 위로 수많은 열차들이 지나 갔을 것이다. 사람도 싣고 시간도 실어서 열차는 달렸을 것이다. 모든 삶은 뒤돌릴 수가 없다. 누구에게 평등하게 똑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레일은 일정한 거리를 이루고 있다. 너무 가까워도 멀어도 안 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지나침도 넘침도 없이 저 레일의 간격처럼 살아 갈 수가 있다면 세상은 아름다워 질 것같다.

이 곳은 과거와 현대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곳이다. 어떤 작가들은 국내 여행 100선에 이 화랑대역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국내 여행 50선에 넣고 싶다. 지금 도심 안에 모든 역사는 전차선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 화랑대역 구내에는 공중에 전차선이 보이지 않고 파란 하늘이 보인다. 서울에서 1940년대의 철도정거장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역은 이 곳이 유일하다. 근대식 역사를 만나고 철길을 걸어볼 수 있는 곳인 만큼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까? 그러나 최근에 정거장 안에 노원불빛정원을 조성하며 많은 조형물들을 세워서 원형이 훼손된 느낌이 든다.

 

옆에 주차장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휴일날 가족들과의 나들이하기에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