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최대의 묘지 분쟁
-윤관장군 묘
- 윤여설 시인
조선왕조는 풍수로 시작해서 풍수로 마감한 것 같다. 경북궁의 위치나 모든 왕릉은 풍수상 명당에 해당한다. 또한 조선시대는 집을 짓거나 묘를 쓸 때 꼭 풍수를 봐서 선택했다. 그로 인해서 묘지분쟁(산송)도 자주 일어났다.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묘지분쟁이 일어난 곳이 고려 윤관(尹瓘) 장군묘이다. 풍수상 이 지역도 매우 길지이다.
경기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930번지. 윤관 장군묘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성역화돼서 잘 조성돼 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도 자주 참배를 했다고 전해진다. 묘소에 서 보면 주위가 높고 낮지도 않은 산들이 둘러 있어서 누구라도 안온함을 느낀다. 그리고 앞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어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이다. 일부 풍수가들은 이 곳이 한국 최고의 명당으로 손꼽기도 한다.
이 묘역에서 400여년간 묘지 분쟁이 진행돼 왔었다. 파평윤씨와 청송심씨 두 문중의 묘지다툼은 16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은 그해 아버지의 묘를 윤관 장군의 묘역 근처에 조성했다. 1658년에는 조정에서 이 일대 땅을 하사받아 문중 묘역으로 삼았다. 심지원 자신도 1662년 이곳에 묻혔다. 심지원의 묘는 윤관 장군의 묘의 바로 위에 매우 가까이에 조성했다. 거의 붙어 있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의 묘 위에 묘를 조성(압장壓葬)하는 것이 금기였다. 이 지역이 연산군이 사냥터로 지정되면서 윤씨 문중은 윤관 장군묘를 실전했다. 후손들은 장군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원이 죽고 100년이 지났다. 1763년 윤씨 문중에서 윤관의 묘를 찾다가 심지원 묘 앞에서 윤관 장군의 시호 문숙공이 적힌 비석조각을 발굴했다. 윤씨 문중은 심씨 묘에 조성된 장대석을 허물었다. 심씨 문중은 격분해 고양군수에게 묘를 훼손한 윤씨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두 명문가의 분쟁을 감당하기 어려운 고양군수는 경기감사에게 보고했고, 경기감사도 해결이 어렵자 조정에 보고해서 영조가 직접 해결에 나섰다. 영조도 해결이 쉽지 않았다. 더욱이 선대에 파평윤씨는 왕비가 4명이 나왔고 청송심씨는 3명이 나왔다. 임금이 윤관과 심지원의 묘를 그대로 받들라 명했으나 윤씨 문중은 물러서지 않았다.
드디어 영조가 노구를 이끌고 친문에 나섰다. 증인으로 나온 윤희복과 심정최는 영조 앞에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영조는 과장됐다며 둘에게 곤장형을 명했다. 윤희중은 곤장을 맞고 귀향을 기다가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 이후로도 두 가문의 묘지분쟁은 계속되다가 2005년도에야 해결의 실마리를 찼았다. 이 해 8월4일 파평윤씨는 청송심씨에게 오른쪽으로 500미터 떨어진 곳에 2500여평을 제공하고 청송심씨는 그곳에 이장을 하기로 합의를 했다. 청송심씨가 윤관 장군의 묘에, 묘를 쓴지 392년만이다. 또한 영조가 친문한 뒤 241년 뒤였다.
지금 윤관 장군 묘역 앞에 서 있는 “파평윤씨 청송심씨 화해 기념비”를 살펴보면 전 치안본부장 강민창이 중재를 해서 이장합의를 했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허가를 해줘서 이장을 마쳤다.
새로 이장한 청송심씨의 묘역도 매우 위치가 좋다. 두 가문 모두, 명문가 다운 합의를 한 것같다. 당시에 외신들도 토픽으로 이 소식을 타전했고 “CNN”은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풍수를 떠나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지역을 안다. 아니, 모든 동물들은 안전한 곳에 둥지를 튼다. 그 곳이 길지이자, 명당이 아닐까? 꼭 좌청룡 우백호를 따져서 산세를 살피고 명당에 조상의 묘를 쓰면 후손이 발복(發福)한다는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만약, 동기감응설이 사실이라면 모두 명당에 왕릉을 조성한 조선왕조는 멸망하지 않았어야 맞지 않을까? 풍수는 조선왕조의 중요한 사상이었다. 또한 그로 인한 폐단도 컸다. 소송의 70%가 묘지분쟁였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화장(火葬)이 90%를 차지한다. 심지어 관리가 어렵다며, 매장된 봉분을 파묘해서 화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일부 상류층 인사들은 아직도 명당을 찾아 이장을 하는 것같다. 전통적으로 묘를 쓸 때 가장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장을 하지 않을 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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