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논산의 은진미륵과 개태솥, 미내다리

윤여설 2021. 6. 3. 15:40

논산의 은진미륵과 개태솥, 미내다리

 

 

- 윤여설 시인

 

 

 

죽음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세 가지 의문이 있다. 언제 가는지를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며, 갔다가 온 사람이 없다. 그러나 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되돌아 간다는 뜻에서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논산지역에 전해오는 구전이 있다.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묻는다고 한다. “은진미륵을 봤냐? 개태솥을 봤냐, 미내다리를 봤냐? 모두다 봤다고 답하면 극락으로 간다고 전해진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일종에 설화이다.

관촉사 미륵불(논산시청홈피)

은진미륵불은 은진면 관촉사에 있는 미륵불이다. 이 곳에서는 관촉사 미륵불보다는 은진미륵으로 통한다. 또한 자녀가 없는 부부들이 이 미륵불 앞에서 기도를 하고 애를 낳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 석불로 높이가 17.8미터이다. 동양최대를 자랑한다. 그러나 미적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저 평가를 받았다가 2018년 국보323호로 지정됐다.

개태사 무쇠솥(논산시청홈피)

개태솥은 연산면 개태사에 있는 무쇠솥이다. 그 둘레가 무려 9미터10센티이다. 고려시대 이 사찰에서 사용되던 솥인데 절이 폐허가 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일제가 고철로 쓰려고 부수려하자, 천둥과 번개가 쳐서 파괴를 면했다고 한다. 솥의 크기로 봐서 이 절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한다.

강경미내다리

미내다리는 강경읍에 있는 돌다리이다. 영조7(1731)에 만들어 졌다. 예전엔 이 다리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산은 옮겨지지 않아도 물길은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는 듯하다. 하천을 넓히는 공사가 진행된 후에 이 다리 아래는 물이 흐르지 않고 하천뚝 아래 가장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퇴역해 있다. 당시엔 큰 토목공사였을 것이다. 아름답고 역학적이다.

 

은진미륵, 개태솥, 미내다리는 서로 20~30키로정도 떨어져 있다. 어쩌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독특한 볼거리였을 것이다. 또한 그 당시에도 나들이를 권하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선시대에 걸어서는 하루에 모두 보기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자동차로는 두 시간 정도면 모두 관람할 수가 있다.

 

논산은 원래 이름은 놀뫼이다. 노을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에 지명조사를 하면서 한자식으로 노을은 논()으로, 뫼는 산()으로 바뀌서 논산이 됐다. 이 지역의 노을은 매우 곱다. 천지를 온통 붉은 보자기로 덮어놓은 듯한 황홀감에 빠져 들어간다.

 

차령산맥이 북쪽을 막아주고 노령산맥이 동쪽을 지켜준다. 남서쪽으로는 평야가 펼쳐져 호남평야와 연결된다. 곡창지대의 시작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금강이 흘러간다. 또한 조선시대까지도 강경포구는 바다와 연결되는 국내 3대 시장이었다. 또한 선사시대의 마전리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곳은 백제의 계백장군이 신라군을 맞아서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황산벌(연산)이다. 계태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계백장군묘가 있다.

 

거대한 은진미륵불을 조성하고 매우 큰 개태솥을 사용했고 대단히 아름답고 견고한 돌다리를 놓은 것으로 봐서 당시에 이 지역의 삶이 비교적 풍요로웠을 것이다.

 

이 곳을 여행한다면 3곳 모두를 둘러보면 좋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