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 서원 9곳을 모두 답사하고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윤여설 시인
옥산서원 앞에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청아하다. 마치 마음을 씻어주는 것같다. 이 개울이 세심천(洗心川)이다. 그렇다. 오늘은 내 마음을 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낸다. 좀 조급했고 답답했던 마음을 말끔히 씻었다. 마음만 씻었는데 몸을 감은 것처럼 상쾌하다. 계곡 자체가 바라만 봐도 무엇인가를 해결할 것 같은 맑은 물이, 독특한 형태의 바위와 어울려 조화롭다.
오늘로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마친 것처럼 개운하다.
2019년 7월에 국내 서원이 9곳(옥산, 소수, 필암, 남계, 돈암, 무성, 도산, 병산, 도동)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꼭 국내 서원을 순례하고 싶어서 답사를 계획했다.
2020년 1월달, 원래 계획은 집에서 가장 먼 거리의 이 옥산서원을 필두로 답사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코로나19를 만나서 가장 먼저 답사 예정지가 가장 늦여지게 됐다. 사람일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답사를 마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사전에 입장금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답사한 어느 서원엔 “코로나로 입장을 금지합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이 옥산서원은 동방4현인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서원이다. 서원은 안에서 밖을 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옥산서원은 건물이 500년이 되고 많이 낡아서 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다고 관리인이 말했다. 이언적의 제자가 퇴계 이황(옥산서원)이며, 이황의 제자가 서애 유성룡(병산서원)이다. 이언적은 영남학파의 창시자이다.
이 옥산서원에 구인당(求仁堂)에 서서 잠시 인仁을 생각해 본다. 참으로 어렵고 소중한 공간이다. 어짐은 사랑이 아닐까? 구체적으로 사랑(愛)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인으로 나타나는 것이 더욱 은은하고 품위가 있는 것같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1,000여개의 서원이 있었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 47개만 남기고 모두 훼철됐다. 이 옥산서원도 살아남은 47개 중에 한 곳이다. 그 후로 고종에 의해서 서원복원이 시작되어 지금은 전국에 500여 곳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서원 9곳은 모두가 풍수와 연관해서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더욱이 병산서원 만대루는 한국의 건축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 한국의 전통을 잘 간직한 서원문화가 한국의 현대사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민중들에게 왜! 잊혀졌을까?
다른 종교처럼 내세사상, 즉 사후세계를 구하지 않았기에 때문이다. 즉, 기도나 복을 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일종의 생활윤리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유학사상의 경전인 사서오경 속의 “인의예지 삼강오륜”이 너무 이상에 치우쳤다. 집성촌이나 문중위주의 농경사회에서는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디지털 정보사회에서는 가문위주의 교류보다는 기능위주의 사회로 변하다 보니, 그저 학교교육의 윤리교과에서나 혹은 국어시간 배운 것이 전부였다. 시험보기 위해서 암기한 몇구절로 그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 정서와 문화엔 유교의 사상이 깊숙이 스며 있다. 아직은 어른에게 존대어를 쓴다. 그러나 젊은 층에서는 “왜? 우리가 나하고 관계가 없는 어른에게 존댓말을 써야 됩니까?”라고 따지는 젊은이들도 생겨 났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변해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변하고 있다. IMF이후에 대가족이 사라졌고 요양원이 생기고 부모봉양이 사라졌다. 5060세대가 마지막으로 부모를 모셨고 자식에게 버림받는 세대가 됐다. 90년대 이후에 거리의 장의사가 사라졌고 이제 임종을 집에서 맞는 경우도 거의 없다.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물론 출상도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내 삶이 묻어 있는 집을 죽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서 미리 떠나야 하는 세태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불효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노인은 자식이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어른들을 꼰대라고 빗꼬기도 한다. 노인자살율이 세계 1위이다. 어쩌면 생활의 편리함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까지도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민족이 2,000여년을 떠돌았어도 나라를 건설한 것은 그들의 풍습(문화)과 언어를 보존했기 때문이다. 즉, 동질감이 국가를 다시 세웠다. 사람은 친교관계에서 동질감은 매우 중요하다. 취미가 같거나 고향이 같은 사람이 친해질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한계레(韓民族)에게 전통이나 문화가 무었일까? 90년대까지도 거리에 한복을 입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었다. 당시에 운동권은 개량한복을 무슨 표상처럼 입고 다녔다. 지금 거리에서 개량한복이라도 입은 사람을 하루에 한명도 보기 힘든 시대가 됐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언어는 어떠한가? 어느 거리의 간판은 이곳이 외국인지? 국내인지? 헷갈리는 곳이 많다. 한국어는 단 한 곳도 적혀있지 않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외국인을 상대하는 거리도 아니다.
무엇보다 걱정스런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의 최저 출산국이다. 지금 추세로 가면 수학적으로 300년 후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은 사라진다. 그러나 이런 말에 누구하나 심각한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건 우리 죽고 나서 일이 아닐까?”로 가볍게 치부해 버린다. 물론, 현실이 고단하고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 후손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 후손이 없으면 역사도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건설한 여진족은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여진족은 청나라를 건설한 후에 중화사상에 함몰되어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버리고 한자문화에 흡수돼 버렸다. 30여년 전에도 중국에서 여진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내가 여진족이요! 하고 나오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극동지역은 종족멸망이 매우 심한 곳이다. 만주족이 사라졌고 일본의 아이누족이 거의 멸망 직전이며 오끼나와족도 사라졌다. 5,0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한계레의 미래가 밝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 좁은 소견일까? 지금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리 이민을 받아드리고 정년을 늘리고 해도 인구 증산정책을 쓰는 것보다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 국가의 모든 정책의 1순위를 아이낳는 정책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사람이 없는 민족은 없다.
국내 서원 순례를 마지막으로 마치며 옥산서원의 구인당에 앉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아직도 종택인 독락당이 있고 후손이 관리하고 있는 이 옥산서원! 이름처럼 구슬(玉)이 뫼(山)를 이루어 찬란한 한국문화가 무궁하게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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