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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벽화 속에서 옛 고구려인을 만나다

윤여설 2007. 10. 24. 14:30


고분벽화 속에서 옛 고구려인을 만나다 
 

 

분단으로 인해 갈 수 없는 먼 땅, 그러나 최근에 부는 고구려의 바람은 그 기상만큼이나 거세고 또 거세다. 역사의 한 켠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고구려가 이렇게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쉽게도 동북공정과 드라마 덕분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광활한 땅을 지녔고 동북아시아의 중심축에 당당하게 섰던 고구려의 기개를 만날 수 있음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과연 고구려는 어떤 나라였을까? 고구려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그들 삶의 모습은 어떤 무늬였을까? 고분벽화를 통해 나타난 고구려인들의 모습을 만나본다.


고구려인의 혼이 담긴 고분벽화

 

 

안악 3호분 - 서측실 서벽의 묘주

 

안악 3호분 - 서측실 남멱의 묘주 부인

 

고분벽화는 무덤 안에 그려진 벽화를 말한다. 그 기원은 중국 한나라 시대에 산동 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석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돌에 그림을 새긴 화상석으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고분벽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고구려에서 최초로 고분벽화가 그려진 것은 3세기 초로 추정된다. 이후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크게 발달한 반면, 중국에서는 요동지방에 삼도호묘(三道壕墓)를 비롯한 10여 기의 무덤만 있었을 뿐, 고분벽화가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묘사력, 생동감, 색채의 화려함이나 다양성 등 중국의 고분벽화에 비해 월등한 짜임새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고구려 벽화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주로 초기에 그려진 춤무덤·씨름무덤·세칸무덤과 같이 벽에 회를 발라 그 위에 그림을 그린 경우와 다섯무덤·사신무덤과 같이 잘 다듬은 돌 표면에 직접 그리는 벽화가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후기 벽화에 속한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현재까지 대략 106기가 발견되었다.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집안 지역에는 23기가 있는데, 모두루총·환문총·각저총(씨름무덤)·무용총(춤무덤)·삼실총·통구사신총·오회분(다섯무덤)4호묘·오회분(다섯무덤)5호묘·만보정1368호분·장천1호분·산연화총 등이다. 또 최초의 수도였던 환인현 지역에는 미창구 장군묘 1기가 발견되었다. 북한에서는 평양 지역에 동명왕릉·진파리1호분·내리1호분을 비롯해 24기가 있고, 천왕지신총, 요동성총 등 4기가 순천 지역에, 쌍영총·강서중묘·강서대묘·덕흥리고분·약수리고분 등 21기가 남포 지역에 있다. 또 팔청리고분을 비롯해 평양과 평안남도 지역에만 59기가 분포하고 있다. 또 황해도에는 안악 지역을 중심으로 안악3호분·평정리1호분을 비롯한 12기가 있다. 이렇듯 고분벽화는 집안 지역과 평양·안악·남포·순천·대동 지역 등 고구려의 중심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및 고려에도 고분벽화가 있기는 하지만 양과 질에서 고구려와 비할 바가 못 된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의 혼이 담긴 위대한 예술작품이며, 그들의 사상과 생활이 담긴 고구려사의 귀중한 연구 자료이다.

 

우 : 강서중묘 - 현실 남벽 서쪽의 주작

좌 : 강서대묘 - 현실 북벽의 현무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구려 사람들의 삶

 

고대의 사회에는 순장 제도가 있었다. 신분이 높은 귀족이나 왕족이 죽으면 시중을 들던 사람들을 함께 생매장하는 장례 방식을 뜻한다. 살아서 누렸던 부귀와 영화를 무덤까지 가져가 현세와 똑같이 편안한 삶을 누리기를 바랐던 탓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장 제도는 점차 변모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넣는 대신 모형을 넣기 시작했고, 망자의 생전 삶의 모습이나 꿈꾸었던 이상 세계를 무덤 벽에 그림으로 그려 넣게 된 것이다. 고분벽화는 주제에 따라 크게 인물 풍속, 장식 무늬, 사신도 고분벽화로 구분된다. 초기의 고분벽화는 주로 주인공의 생전에 즐거웠던 일들과 업적을 나타내는 인물 풍속도가 주로 그려졌으며, 중기의 고분벽화에서는 각종 장식 무늬가 그려졌다. 장식 무늬만이 전부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인물 풍속 혹은 사신도가 함께 그려져 있다. 후기의 고분벽화는 사신도가 널방의 4벽을 가득 채우고, 천장에는 신선의 그림들이 그려지는 특징을 갖는다.

 

생활 풍속이 그려진 고분벽화


현재 남아있는 고분벽화 중 45기의 무덤은 4~7세기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고분벽화는 특히 무덤 주인의 생전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벽화의 주된 내용은 고구려 귀족들이 죽기 전에 생활하던 모습들로, 무덤 주인 부부 그림·야외 행렬 그림·사냥 그림·노래하고 춤추는 그림·생활 주변 모습을 그린 그림·각종 오락을 즐기는 그림·해와 달, 별의 그림 등이다. 특히 요즘과 다름없는 여가 생활이나 놀이 문화·복식·복장 등이 나타나 있어 시공을 뛰어넘는 사람살이의 동질감을 엿볼 수 있다. 수산리고분벽화는 기예를 하는 장면이 나타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장대를 타거나 공을 던지면서 묘기를 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평양의 기예단 공연을 보는 것 같다. 생활 풍속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안악3호분과 무용총(춤무덤)·수렵총·각저총(씨름무덤)·덕흥리벽화고분·수산리벽화고분·장천1호분 등이다.

 

장식 무늬 고분벽화

 

5세기에 들어 고분벽화의 구성과 주제 설정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특징은 연꽃과 같은 장식 무늬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장식 무늬만이 그려진 벽화고분이 9기나 되며, 장식 무늬의 비중이 큰 벽화는 대략 16기나 된다. 이들 중 13기가 집안 지역에 밀집해 있다는 것이 실로 놀랍다. 주로 동심원 무늬·왕(王)자 무늬·연꽃 무늬·불꽃 무늬·화초 무늬·구름 무늬 등이 그려져 있는데, 각 무늬별로 상징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무늬 중 가장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이 연꽃 무늬이다. 연꽃은 세계 각국에서 사용된 무늬로 이집트에서는 태양과 재생을 상징하기도 했으며, 중국에서는 천제를 상징하거나 태양을 나타내는 존재였다. 또한, 연꽃은 불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연꽃은 부처를 상징하거나 정토 세계의 여러 존재를 탄생시키는 존재로 이해된다. 연꽃 무늬만이 그려진 산연화총·연화총 그리고 장천1호분 널방의 연꽃 그림은 모두 연화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산연화총·연화총·환문총·동명왕릉 등이 있다.

사신도 고분벽화

 

사신은 동서남북 4방위의 수호신으로 각각 청룡, 주작, 백호, 현무를 뜻한다. 이들은 모두 상상의 동물이다. 청룡과 백호는 서로 그 모습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며, 주작은 때때로 수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현무는 거북과 뱀의 조화로운 형상을 띄고 있다. 사신도는 초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천장 부분에 작은 형태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후기의 고분벽화에서는 사신도가 고분 전체의 주제가 되면서, 고분의 4방위마다 각기 한 면을 차지하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들의 사신도는 뛰어난 생동감과 화려한 색채로 예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구려 사람들에게 사신은 저승세계로 가는 길을 호위해 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저승으로 가는 길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사신도를 벽화 전면에 그린 것이다. 사신도가 그려진 벽화고분은 현재 34기로 알려져 있다. 사신도는 무용총·장천1호분 등에도 그려져 있으나 사신도가 벽화고분의 대주제로 나타난 것은 6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사신도가 그려진 무덤으로는 강서대묘·강서중묘·오회분(다섯무덤)4호묘·오회분(다섯무덤)5호묘·통구사신총 등이 있다.

 

 

13군태수도

 

 

                                                                                                                               (문화재청에서 가져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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