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개관한 천연기념물센터 전시관에는 다른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지질 분야 전시품 1점이 복제 전시되어 있다. 바로 남제주해안의 사람 발자국 화석이다. 나는 이 전시물을 보면서 당시 문화재 지정과 관련한 생성연대 논란과 현장을 쫓아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와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서 발견된 사람 발자국 및 각종 동물 발자국 화석은 2005년 9월 8일에 천연기념물 제464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사람 발자국을 비롯하여 사슴이나 노루와 같은 우제류의 발자국 화석, 다양한 새 발자국 화석과 같은 생흔 화석뿐만 아니라 게 화석, 식물 화석, 소라류의 연체 동물 화석 등과 같은 실체 화석도 다양하게 발견되었다.
이 화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까지는 순탄한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논란이 있었다. 국내에서 사람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전 국민의 주요 관심사였고, 세계적으로도 중 요한 학술적 의의를 갖는 것으로 외신에서도 관심을 보였었다. 따라서 사람 발자국 화석에 대한 논란 또한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는데, 첫 번째는 정말 사람 발자국 화석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으며, 두 번째는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연대가 5만년 전이냐 아니면 2-3천년 전이냐에 대한 것이었다.
이 지역의 화석은 2001년 8월에 한국교원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김정률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이 지역 일대를 조사하던 중 우제류와 새 발자국 화석을 최초로 발견하였다.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는 사람 발자국 화석은 최초 발견 이후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새 발자국 화석과 우제류 발자국 화석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던 중, 2003년 10월에 공식 발표되었다.
당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김경수 박사(충북과학고 교사)가 주로 사진을 촬영하면서 우제류 발자국 화석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나타내는 발자국 화석을 보고 다소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당시에는 ‘진흙과 같은 뻘층에서 우제류가 미끄러져 형성된 발자국일 것’이란 생각을 하고, 일단 촬영을 하였다고 한다. 촬영을 마친 후 연구실로 돌아와 사진을 분류하는 중에 아무리 보아도 우제류의 발자국과는 다른 발자국이 있어, 고민을 하다가 잠정적으로 분류를 보류하고 별도로 보관하였다. 새 발자국과 우제류 발자국 화석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진척된 후에 김경수 박사는 예전에 미처 분류하지 못하였던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보았고, ‘어떤 발자국일까?’하고 고민하던 중에 발자국의 패턴이 4족 보행을 하는 동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2족 보행을 하는 한 동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결국 2족 보행을 하는 동물 중에서 가능성을 찾다가 사람 발자국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생각을 김정률 교수에게 이야기하였다.
김정률 교수는 이것이 사람 발자국 화석이라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고, 곧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최종적으로 사람 발자국 화석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람 발자국이라고 하면, 뚜렷하고 잘 찍힌 발자국을 생각한다. 뚜렷하고 잘 찍힌 사람 발자국은 경계가 분명하고, 다섯 개의 발가락 자국이 잘 나타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사람 발자국은 뚜렷하고 잘 찍힌 발자국이 아니기 때문에 생흔 화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생소하게 보였다. 현지 조사과정에서 많은 관련 학자들은 사람 발자국 화석을 현장에서 관찰한 후, “(무게를 받는) 뒤꿈치가 파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라가 있다”며 “발뒤꿈치 부분이라고 주장되는 곳이 발에 눌린 자국이라면 지면보다 들어가야 하는 게 정상”이고, “사람 발자국인지 신중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러한 지적은 대체적으로 옳은 것이다. 하지만, 김정률 교수에 의하면, 자연 상태에서 보존되는 발자국들은 퇴적물의 조건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지표면에 드러났을 때, 풍화 침식의 조건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이러한 예로, 우리가 흔히 여름철에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걸었을 때, 모래 위에 찍히는 발자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발자국에는 발가락이 보존되기가 어렵다. 그리고 갯벌 체험을 해 본 많은 사람들도 발목까지 깊이 들어가는 갯벌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발자국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김정률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추가적인 발굴 조사와 외국의 학자들의 현장 검증을 통해서 옳은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주변의 사물을 관찰할 때, 흔히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그와 일치되지 않는 것들은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자연의 어느 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세밀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사람 발자국 화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두 번째 문제는 사람 발자국 화석의 정확한 생성 시기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 발자국 화석의 발견에 대한 우리청의 공식 발표가 있은 다음 날 경상대학교의 손영관 교수에 의해 연대 추정이 잘못되었다는 이견이 제시되었다. 손영관 교수는 사람 발자국 화석이 산출되는 지층이 하모리층이며, 송악산 서쪽에 분포하는 하모리층의 하부에서 산출된 연체 동물 화석의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가 약 4,000년 전이므로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연대가 그것보다는 더 오래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우리청에서는 이러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즉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연대 측정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OSL 측정법으로는 약 7,000년 전으로 측정되었고,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으로는 약 15,000년 전으로 측정되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OSL 측정값과 해수면 변동 등을 근거로 약 7,0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연구 결과 보고서를 검토한 김정률 교수는 오히려 탄소동위원소 측정값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시기를 약 15,000년 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청에서는 비록 동일한 연대 측정 자료를 놓고도 서로 엇갈린 주장이 있었으나, 각각의 주장은 추후 학문적 성과로 보완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연대 측정 결과에 의하면, 제주도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시기는 손영관 교수가 주장한 약 2,000년 전 내지 3,000년 전이 아니라, 적어도 약 7,000년 전보다 오래된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천연기념물로써의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 발자국 화석의 생성 시기에 대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확실한 측정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어 사람 발자국 화석의 학술적 가치가 보다 분명하게 밝혀지고 제주도 세계자연유산 지정과 연계하여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길 바란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지원과장 차도윤
(문화재청에서 옮겨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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