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및 유적답사

방이동고분군

윤여설 2006. 8. 21. 23:08

 

 

 

 

이 고분에서 인골과 도자기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방이동고분군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은 아래의 참고 사이트에 잘 소개되어 있다.

 

   이 고분이 위치한 지대가 주위보다 높은 것으로 보아 이 곳은 나즈막한 언덕이었거나 구릉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위에 주택가가 들어서서 이 곳만 빼곤 완전한 평지가 되었다. 다른 고분도 거의 구릉이나 산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석촌동의 적석총은 매우 예외적이다.  그러나 통치자급이 아닌 지방 호족의 무덤은 평지에 위치한 곳도 많다. 평야지대는 더욱 그렇다.

 

  시골에서 한창 경지 정리를 하던 70년대 초에, 들판 가운데에 위치한 말무덤 혹은 개무덤이라 부르던 고분이 거의가 호족들의 무덤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그  유적이 문화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저 불도저 밀어버리는 것이 가장  잘한 일었다.  요즘 발굴되는 지방의 고분들을 보면 거의 환두대도가 출토되고 있다. 환두대도는 고대국가의 왕이, 호족에게 지방의 권력을 위임며 하사하는 상징적인 징표이다. 

 

  고분은 타임캡술이다. 부장품 등으로 그 시대의 문화를 알 수가 있다. 미라가 발굴되면 그 시대의 영양상태와 음식물과 질병, 기생충 등등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사망원인도 밝혀낼 수가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유전공학의 발달로 DNA를 분석하면 매장자가 현재 누구의 조상이라는 것도 판별이 가능하다.

 

  여러가지 기록에 의하면 "뚝섬고분군"이 존재한 것으로 나와 있다. 고 김원룡 교수가 집필한 "한국의 고분" <교양국사총서 1974> 101페이지에도 뚝섬에 고분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답사를 하고 살펴봐도 이제는 주택가와 공원만 있을 뿐 어디에도 고분군은 없다.  모두 파괴되었을 것이다. 또한 서울의 고분군 중엔 도굴을 우려해 차마, 이 곳에서 밝힐 수 없는 곳도 있다.

 

  저 방이동고분이 지금까지 보존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저 고분군 동쪽의 금암산 중턱의 백제고분군은 일제에 의해 모두 도굴되었다. 봉분의 형태는 거의 파괴되었으며 천축분만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금도 그 곳엔 도굴이 행하여진 흔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도굴 천국이다. 도굴범들이 잡히면 공통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도굴할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문화재의 지킴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고고학회원 : 윤여설

 

 

 

 

 

 

 

 

                홈페이지

    클릭☞  www.poet.or.kr/youn

 

 

 

             참고사이트(서울문화재)

   클릭☞   http://sca.visitseoul.net/korean/relics/i_prehistory_site090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