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또 다른 가족과의 결별

윤여설 2006. 3. 5. 19:40

 


                           또 다른 가족과의 결별


                                                           

                                                                                                            윤 여 설

 


    정들었던 다람쥐 한 쌍을 오금공원에 방사했다. 다람쥐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듯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우리 집에 온지 45일만이다.

 

    베란다에서 쳇바퀴를 돌리며 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에어컨만 가동시키면 베란다에 있는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열기에 다람쥐가 거의 탈진상태가 되었다. 그렇다고 실내에서 키우기에는 좀 냄새가 심한 것 같고, 몇 번을 고심한 끝에 아파트 정원에서 키우려고 했다. 다람쥐장에 00동 000호 달순이 달식이라고 이름표를 달아서 정원수에 매달아 놨다. 그러나 아이들의 등살에 또 못견뎠다. 처음에는 즐겁게 보던 아이들이 나뭇가지 등으로 다람쥐를 건드리거나 찌르는 것이다. 나는 아내와 합의를 했다. 자연으로 돌려보내자고......

 

    처음에 입양을 와서는 낯을 가리고 쳇바퀴를 돌리며 놀다가 인기척만 나면 재빠르게 부화통으로 들어갔다. 보름정도가 지나더니 주인을 알아보고 사람을 보면 주둥이를 내밀고 먹이를 달라고 애원했다. 손가락을 드밀면 먹인 줄 알고 물으려고 했다. 턱이 불록해지도록 먹이를 입에 물고 하나씩 다시 깨물어 먹는 겁 많은 표정이나, 식사가 끝나면 발에 침을 발라 깨끗이 주둥이를 닦는 모습이 앙증스럽고 동화적이었다. 또한 앞발과 주둥이로 몸단장을 하는 것을 보면 점잖은 신사이자 한량처럼 보였다. 취침 시간과 기상시간이 자명종처럼 일정했다. 그 녀석들은 매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후 여섯시쯤이면 자고 아침 다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쳇바퀴를 돌렸다. 일정 양껏 먹고는 다람쥐장 안을 몇 번 팔딱팔딱 즐겁게 뛰더니 포만감에 취해서 한쌍이 교대로 쳇바퀴를 신나게 돌렸다. 아내와 둘이만 사는 집에서 다람쥐가 즐겁게 노는 모습이 생동감을 주었다. 그들은 조건 없이 주인을 따랐고 반겼다. 귀한 먹이를 보면 일단 부화통으로 가져가 며칠쯤 보관하다가 또 꺼내서 먹는 습관이 있었다. 밤이나 상수리 같이 그들이 여름에 맛볼 수 없는 먹이는 거의가 부화통으로 가져다가 저장했다.

 

    오늘 아침은 일찍 일어나서 다른 날보다 맛있는 먹이를 주었다. 그들이 아주 좋아하는 고구마를 주었고 또한 레몬도 잘라서 주었다. 그들은 내 손에 든 먹이를 보자 반가워서 장을 몇 바퀴 돌더니 앞으로 다가와서 주둥이를 내밀었다. 나는 그들이 배불리 먹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쳇바퀴를 돌리는 틈을 타서 장 속에 손을 넣었다. 다람쥐들은 장갑을 낀 커다란 손이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쳤다. 수컷은 머리를 창살에 부딪쳐서 콧등에서 피가 흘렀다. 나는 도저히 그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들을 포획하면 안전하고 살기가 좋은 남한산성으로 데려가서 방사할 생각이었다.

 

    할 수 없이 다람쥐 장을 들고 가까운 오금공원으로 갔다. 딸을 출가시키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기분일까? 오금공원에는 관리사무소에서 방사한 다람쥐 몇 쌍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효는 갈수록 점점 줄고 있는 것 같았다. 허전한 발걸음이 허청거리기만 했다. 공원에 도착해서 다람쥐가 가장 많이 노는 곳에서 장을 분해했다. 다람쥐는 장을 기울이자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를 한 번 돌아다보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달아난 쪽에 가져간 먹이를 놓아주었다. 며칠은 먹을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어떠할까. 이유 없이 감옥에 갇혔던 수인의 석방처럼 해방감을 맛보았을까. 그들은 맨 처음에 자연에서 포획되엇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을 맛보지 못하고 장속에서만 생활을 했을까. 가을이 아니라서 먹이도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선천적으로 장에서만 생활했다면 그들은 이미 야성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적응해서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나을 뻔했나보다.
 
    찹찹한 심정으로 장을 조립해서 돌아왔다. 허전하고 쓸쓸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천진하고 착하기만한 달식이 달순이 부부들ᅳ 내가 가끔 와서 볼게. 그 때 나를 만나면 아는 척이라도  해다오.

 

    다람쥐가 놀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다람쥐는 지금쯤 무엇을 할까? 이 깊은 밤에 잠자리는 마련했을까. 아니면 다른 친구라도 사귀었을까. 부디 오래오래 아들딸 많이 낳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허전하고 서운하기만 하다.
    도심 속의 자연인 오금공원이 다람쥐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면, 이 밤 가슴이 터지는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다람쥐야! 부디 행복하거라.

 

                                         (1999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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