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을의 문턱에서 -윤여설

윤여설 2006. 2. 13. 06:20
  




가을의 문턱에서 




                                                                                 - 윤여설 시인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분다. 문을 열면 멀리 시퍼렇게 공간을 차지하던 미류나무도 기가 꺾여, 엷은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가로수의 은행들도 노랗게 익어 보도에 떨어진다. 행인들의 옷소매도 길어졌다. 가을은...... 오지 않을 것같더니, 맹위를 떨치던 늦더위를 살짝 밀치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소리 없이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 왔다.

  올해(1998년)의 여름은 유난히도 고통스러웠다. 정초부터 IMF의 한파로 사회 전체를 칼날처럼 얼어붙게 하며 치명적으로 살벌했다. 무더위가 주춤거리는가 싶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폭우가 지리산을 강타하고 경기도 북부지방을 융단 폭격하듯 휩쓸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경북지역 낙동강 변을 할퀴고 갔다. 어느 지역을 강타할지 전혀 예측 불허의 게릴라성 폭우라는 말이 정말로 실감났다. 기상대가 생기고 가장 많은 비라고 한다. 이백여 명이 넘는 인명과 일조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났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의 양쯔강도 범람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상 이변은 엘니뇨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오래 전부터 기상과학자들은 지구의 재앙을 예고했다. 자연의 파괴로 오존경보가 난무하며 마음대로 숨도 쉴 수 없이 오염된 대기. 산허리를 구렁이가 휘감듯한 산업도로와 골프장건설을 예사로 했다. 강이나 하천은 물론이고 어느 곳을 파도 마시기 힘든 수질오염 등등....... 인간이 자연에게 가하는 폭력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던 자연이 반격을 시작했나보다. 기상이변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도 있고 지구의 멸망을 환경오염으로부터 온다고 예언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내가 환경파괴의 주범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또한 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윤리가 파괴된 계절이었다. 주로 피로 맺혀진 부자지간의 인륜 파괴가 많았다. 보상금을 노리고 독극물을 주입한 음료수를 자식에게 먹이는가하면, 보험금을 노리고 자식의 손가락을 절단한 비정의 아버지가 있었다. 언제, 어느 시기도 마찬가지였지만 정말로 말세를 실감했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새삼 자문해 본다. IMF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정말로 매스컴에 눈 돌리기가 겁이 난다. 이제는 어떤 종교의 경구나 경전으로도 치유하기 힘든 도덕의 불감증시대가 됐다. 모두가 자각하는 길밖에는.......

  이미 들녘은 황금 물결치기 시작했다. 허수아비도 한가하게 몸을 흔들며 결실을 만끽한다. 그 바늘갑옷으로 당당히 경계하던 밤송이도 알밤을 토해내고 흰 가슴을 드러내며 웃고 있다. 벌써 벼의 추수가 끝난 농가도 있다. 또한 며칠 후면 산야는 붉게 타오르듯 물들어 갈 것이다. 자연은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만추를 우리에게 어김없이 선사할 것이다. 

 우리도 이 가을에, 저 자연처럼 결실 맺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벼들도 상수리도 모두 가을이면 제 나름대로 능력껏 결실을 맺는다. 알곡은 알곡대로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굵은 밤은 굵은 대로 부실한 것은 부실한대로 익어간다. 고개 숙인 벼가 바람에 여유 있게 설레듯이 내 마음도 가득 차도록 결실을 맺고 싶다.

  가난한 사람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해보자. 
  나만 가난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복지시설에는 지체 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다. 그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자. 또한 내가 나태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과욕으로 만족을 못하는 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부자들도 내가 하늘을 우러러 떳떳하게 모은 돈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모았는지, 시세차를 노리고 아파트를 분양받지는 않았는지, 나 때문에 진짜 집이 필요한 입주자를 젖히고 운좋게 당첨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적절한 재산권을 행사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과 내 주위에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야 된다. 내가 번 내 돈은 내 자유인데 누가 말하냐, 라는 식은 버려야 한다. 자신의 풍요 속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빈부의 격차가 심한 나라는 더욱 그렇다. 

  내가 피땀으로 번 돈을 남에게 도와주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에게 기부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나와 남은 둘이 아니다. 남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남도 없다. 남은 내일의 내가 될 수가 있고, 나는 내일의 남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은 언제 어느 때에 어떤 방식으로 환경이나 처지가 뒤바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또한 그들도 나처럼  세상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동시대를 사는 것은 천명이요, 역사가 부여한 것이다. 또한 나는 성실히 세금을 냈으므로, 그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국가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국가가 해결할 일이 있고 국민들이 하기가 쉬운 일들이 있다. 자원봉사의 비율이 선진국의 척도라는 말도 있다. 또한 진부한 말이지만, 빈 몸으로 왔다가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세상에서 영원한 내 것이란 없다. 육신마저도 내 것은 아니다. 

  또한 소위 이 땅에 지도층 인사들에게 묻고싶다. 자신의 행동이 정말 모범이 되고 솔선수범을 했는지, 내가 학자적인 양심에 비춰 진실로 지성이었는지? 이중의 잣대로 살며 권력의 눈치나 보는 해바라기성 정치인은 아니었는지? 양심에 자신을 비춰봤을 때 부끄러움이 없고, 내가 지식의 무덤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종교인은 진정으로 교화에 소임을 다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늘어나는 종교시설에 비례해서 범죄 수도 늘어가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강대상이나 법당에서 입으로만 선을 외친 것은 아닌지 뼈아픈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지도층에게 주어진 권한만큼의 도덕성을 다했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또한 내가 부정축재의 주범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 국민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즉, 지도층은 부패층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처럼 총알만 날지 않았지 6.25전쟁보다 어려운 시절에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사람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인간은 성인이 아닌 이상은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고 이기심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가적으로 어려울 때는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 이 풍요한 가을에 열매 맺는 과실들처럼 그렇게 성숙해가야 한다. 흔드는 바람에 굵은 대추는 무거워서, 부실한 대추는 가벼워서 모두 땅에 내려오듯이 그렇게 여유를 가져 볼 일이다.


 (1998. 10.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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