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이 K에게

윤여설 2006. 3. 3. 06:15
 

                                                                                                 (이만익의 신단일출도)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이 K에게


 

 


책상 위의 유리를 닦아본다. 유리는 분명히 광을 내며 번들거린다. 책갈피의 종이도 사람의 손때가 묻으면 색이 누렇게 변한다. 저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이거나, 심연의 암초이거나, 귀한 집의 자제이거나, 자본가 금고의 보석이거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히 숨을 쉬고 살아 있다.

무생물이라는 말은 시인에게서는 사라져야 한다.

무엇이던지 존재하는 것은 사랑을 받으면 반응을 한다. 그들은 말을 하고 숨을 쉬며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자며 피로를 느낀다. 작가는 그들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들의 사상을 터득한 자만이 시인이고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지금 생성 소멸되는 별들과도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다. 지금 태어나지 않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할 후손들과도 말을 하고 그들에게서도 본받아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과도 교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무수히 떠도는 전파를 보아야 하며 앞으로 전개될 사회를 예측해야 한다.

무릇,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이 우주의 오묘한 진리와 삼라만상과 음양오행의 모든 이치를 고뇌한 후에야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리로 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자는 시인이라고 할 수 없다. 왜 사는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이 자연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자는 진정한 글을 쓸 수 없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정비례한다. 아는 것이 적으면 그만큼 모르는 것이 적고, 아는 것이 많으면 그 만큼 모르는 것이 많다. 시대를 아파보지 않고, 고뇌하지 않은 작가의 생명은 오래 갈 수 없다. 잠시 빛을 발할 지는 몰라도, 그것은 잠시 광택을 내다 사라지는 무쇠에 불과할 뿐이다. 참된 작가의 길은 세상에서 제일 험한 인생길이다. 노력하지 않아서 자신의 지적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작가는 마치 고행의 길에서 향락을 취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일찍 그 길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남들에게 사상을 주입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적 성찰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지적능력의 축적만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일찍 작가의 길을 포기해야 할 사람들이 무슨 시인이나 소설가를, 간판이나 되는 것처럼 달고 다니는 사회의 문제점을 무엇으로 다스려야 할 것인가?

가야 할 길을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오늘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여!

작가는 창조자다! 많은 인물을 만들고 소멸시킨다.

먼저 자신의 삶을 관조하라. 그리고 정령 나는 글쟁이로서의 자질이 있는가를 자문하라. 그리고 이 길이 최선의 길인가를 반추하라. 그리고 자신이 없으면 다른 길을 택하라.

그리고 고독하거든 책을 읽으라,

그래도 허무하거든 많이 생각해 보라.

그래도 삶에 만족이 없으면 써봐라.

그리고 내가 쓰는 길이 최선의 길인가를 늘 자문하고 반성하라.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여 머리가 깨지는 두통 때문에 다른 일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력하라. 그리고 가능성이 없으면 포기하라.


이 길만이 본인이 후회 없이 사는 길이요, 인생을 성공하는 길일 것이다.


지금 시인들이 수(?)만 명에 도달했다. 수백 종의 문예지와 엄청난 시집들이 판을 친다.

그 속에 한번 끼어봐야 너와 나도 달라지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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