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결혼반지

윤여설 2005. 12. 25. 15:41

 

 

 

                            결혼 반지

 

 

 

사후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죽음은 산자와 확실하게 이별하는 것일까? 아니면 죽어서도 원하면 아내와 다시 만날 수가 있는 것일까? 교통사고를 경험한 나는 가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대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

 

수술을 받을 때마다 왼손 약지에 낀 결혼반지를 뺐다. 삶에 있어서 이 보다 더 쓸쓸하고 허전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결혼생활 15년동안 반지를 뺀 것은 이번까지 세 번째다. 공교롭게도 수술을 할 때만 반지를 뺐다. 신혼 때에는 반지가 손가락에서 좌우로 돌고 조금은 어색해 빼어놓고 다녔으나 아내는 출근할 때에 늘 끼워주었다. 나도 또한 남자의 밋밋한 손보다는 반지 하나 정도는 끼어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오늘에 이르렀다. 평상시에는 반지가 끼어 있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부부의 존재가 서로가 서로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가 되어 생활하듯, 이제 반지는 나의 장신구가 아닌 신체의 일부가 됐다. 일상생활에서는 반지를 빼야 할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목욕할 때에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을 할 때는 간호사나 인턴이 와서는 미리 육체에 지닌 장신구는 모두 빼라고 요구했다. 수술에 지장이 있고 전신마취 때에 분실의 염려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첫 번째 반지를 뺀 것은 서른세살 때였다. 정계정맥류라는 병으로 혈관이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술이었다. 두 번째는 마흔살에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수술할 때였다. 그리고 이번은 세 번째로, 두 번째 수술 때에 팔에 삽입했던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수술 때는, 반지를 빼어 곁에 있는 아내의 손가락에 끼워주었으나 이번에는 미리 집에서 빼어 내 서랍에 놓고 왔다.

 

수술은 수술 후보다도 수술전이 매우 고통스럽다. 아무리 많이 해도 숙달될 수도 숙달되지 않고 공포와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 일은, 수술보다 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수술하기 전날 밤부터 금식을 하고 관장을 시킨다. 물 한모금도 허용되지 않는다. 침대 머리의 명패에는 수술준비중으로 금식이라는 문구가 걸린다. 그 때부터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첫 수술 때에는 두려움에 떨며 밤을 꼬박 세우고 수술실로 갔다. 수술전에는 링게르를 꽂고 알몸에 수술복만 걸치고 병실에서 대기를 한다. 정말이지 이 순간에 어떤 고통스러움도 이에 비길 것은 못되는 것 같다. 수술실로 가려고 핸드카를 타고 반듯이 누워, 따라오는 가족을 뒤로하고 복도를 지나 엘레베이터를 타고 수술방에 도착했을 때의 심정은 다시는 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것만 같았다. 낯설기만한 수술대와 천정의 조명등 그리고 산소통과 모니터가 즐비해서 지옥에 온 것만 같았다. 잠시 대기하는 동안 나는 매번 수술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사도신경을 외웠다. 이 때만큼 신을 의지한 적도 없다. 의사가 다가와 나를 보더니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위로하며 차트를 보고 본인임을 확인하곤, 내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수술대 위로 옮겨 뉜후에 다시 가슴에 심장박동기와 팔에 혈압계를 달고 양팔을 수술대에 묶었다. 둘러보면 머리에 녹색두건을 쓰고 녹색의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이 공포스럽게 내려다본다.

 

이렇게 수술준비가 끝나면 마취를 한다. 사실, 전신마취는 죽음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숨을 거두었을 때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반지는 빼놓을 것이다. 나는 마취의 순간을 매번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했다. 첫 번째 마취 때는 의사들은 척추마취로 하반신만 마취하려고 했다. 의사는 나를 모로 뉘고 척추에 주사를 놓았으나 마취가 되지 않았다. 의사들은 매우 당황하며 나에게, 숨을 크게 들어마시세요하고는 얼굴에 마취제가 묻은 수건을 덮었다. 나는 수건이 얼굴을 향해서 오는 순간! 전신마취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 하는 의사의 대답을 들으며 의식을 잃었다. 깨어보니 회복실이었다. 다리를 만져봤다. 감각이 없었다. 뒤늦게 척취마취가 된 것이다. 그 때는 하반신과 전신에 마취를 두 번한 셈이다. 두 번째 수술 때는 얼굴에 플라스틱 마스크를 씌우고 “숨을 크게 쉬세요.” 라는 말에 크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의식을 잃었다. 이번 세 번째 마취는 좌측팔에 주사를 놓으며 마취의는 나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봤다. 그리고 깬 것이 회복실이었다.

 

첫 번째 마취와 세 번째 마취는 십년의 시간차이가 난다. 그 동안 의술은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취후의 후유증은 여전하다. 우선 몸이 차가워졌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낀다. 처음 수술 때는 초겨울이라서 계속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몸은 당연히 얼기 시작했다. 마디마디가 쑤시고 무릎이 시리기 시작했다. 몸이 정상으로 회복하는 데에 3년이 걸렸다. 두 번째 수술은 여덟시간의 긴 수술이었으며 골절부위에 부목처럼 긴 핀을 대고 못을 열한 개나 박아 고정시켰다. 다행히 초여름이어서 기온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또 중상이라서 입원기간이 매우 길어 회복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의 세 번째 수술은 마취시간은 세시간 정도로 비교적 짧았으나 수술한 팔의 일부분에 감각의 마비현상이 심하다. 집도중에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잘렸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회복기간이 삼 개월은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수술의 경험으로 봐서는 최소한 일년은 걸릴 것 같다. 그리고 의사는 퇴원시 간곡히 당부를 했다. 한 두서너 달은 수술한 팔로 무거운 것을 들거나 당기지 말고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도 수술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세 번을 수술했고 네 번을 마취했다. 나의 부주의한 면도 없지 않지만 선택보다는 우연의 경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누군들 몸에 칼을 대고 싶겠는가? 그러나 어쩐지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든다. 앞으로는 다시는 마취를 하지 않아야 겠다.

집에 돌아와 다시 왼손의 약지에 결혼반지를 꼈다. 이제 건강하게 살아야 겠다. 다시는 죽는 날까지 이 반지를 빼는 일이 없어야 겠다. 아내와 마주보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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