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읍의 무성서원 - 가장 작고 의미 있는 서원

윤여설 2021. 9. 15. 19:04

무성서원 현가루

 

정읍의 무성서원

가장 작고 의미 있는 서원

 

 

 

 

 

- 윤여설 시인

 

 

 

 

정읍시 칠보는 노령산맥이 끝나는 마지막 줄기이다. 둘러보면 칠보 발전소가 보이고 산으로 둘러싸여 매우 아름답다. 또한 풍수적으로도 매우 길지이다. 이곳 원촌마을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당을 제향공간으로 모시는 무성서원이 있다. 다른 서원보다 독특한 면이 많다. 보통 서원은 조선시대 인물을 배향하고 있으나, 무성서원은 신라 최치원을 배향하고 있다. 최치원이 이 지역에서 태수를 지냈다고 한다. 이 곳이 한때는 신라지역였다고 전해진다. 최치원의 생사당(生祠堂)으로 생존시에 사당이 건립됐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유일하다. 자칫 우상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치원은 이곳에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가 떠난 뒤에 고을 주민들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뒤에서 바라본 풍경(태산사, 명륜당, 현가루)

 

 

모든 서원의 건물구조는 외삼문으로 들어가서 강학 공간을 거쳐 내삼문을 지나면 재향 공간이다.

 

무성서원은 뒤에서 바라보면 태산사(사당)와 명륜당(강학공간)을 거쳐 현가루(외삼문)를 일직선으로 모두 조망할 수 있다. 공간배치가 잔잔하고 달빛처럼 은은하다. 앞엔 뜰이 펼쳐져 있어서 도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도 어딘지 친근감이 있고 고향에 안긴 느낌이 든다. 또한, 다른 서원과는 달리 마을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처럼 주민들과 함께 했을 것이다. 이 서원은 유생들의 기숙사 격인 동재와 서재가 없다. 마을에 위치해서 민가에서 기숙할 수가 있어서였다고 한다. 유네스코 등록된 9개 서원 중에서 유일하게 뒤에서 앞을 조망할 수 있는 서원이기도 하며, 가장 규모가 작고 아담하다.

무성서원 명륜당. 앞 뒤가 벽이 없음

.어느 서원이나 강학 공간의 앞은 막힘 없이 트였으나 뒤로는 주로 창()이나 문()이 나 있다. 그러나 무성서원의 명륜당은 앞뒤가 막힘이 전혀 없어서 이곳에 앉으면 넉넉하다. 뒤로는 태사당이 보이고 앞으로는 외삼문인 현가루가 잡힐 듯이 서 있다. 누구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정겹다. 비움과 담백함의 여유로움이라 할까? 뒤돌아 보면 최치원의 정신을 접할 수가 있고 앞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흥이 절로 난다.

 

원래는 태산서원이었으나 무성서원이 된 것은 숙종 221696년 무성이라는 사액을 받는다. 사액이란, 임금이 현판을 내리는 것이다. 이때 노비와 토지를 하사받게 된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을 피한 47곳 중의 한 곳이다. 태산(太山)은 이 곳의 옛이름이다.

또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의 최익현을 중심으로 한 병오창의(丙午倡義)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호남 의병의 발상지이다. 지역주민과 함께하고 정신의 지주가 된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무성서원은 전인교육의 장이었다. 과거를 준비하는 책은 이곳에 반입할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역사책은 반입이 가능했다. 진정한 학문과 수양의 공간이었다.

명륜당에 앉아서, 앞에 현가루가 보인다.

 

무성서원이란 이름은 공자의 제자 중에 한 분인 자유가 다스린 노나라의 무성이란 지역에서 유래가 됐다. 자유가 선정을 베풀어 무성은 평화로웠고 거문고 소리와 노래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지역의 이름을 차용해서 무성서원(武城書院)이고, 거문고 타는 소리와 노래가 그치지 않았다고 해서 외삼문이 현가루(絃歌樓)이다.

 

다른 서원과는 다르게 웅장한 건축물도 없고 또한 터가 넓지도 않다. 그러나 가장 속 깊은 공간이다. 절대로 권위적이지 않았을 것이며 마을 주민과의 유대가 매우 깊었을 것이다. 이 지역은 곡창지대와 인접해서 비교적 풍요로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저리 서민적인 건축물을 지어 학문에 전당으로 자리했다. 그것은 은혜를 잊지 않고 생사당을 건립할 정도로의 의리와 유대가 강한 지역민들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등록사유인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이 무성서원인 것 같다.

 

앞으로도 모든 서원이 한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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