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조문 인사말

윤여설 2011. 12. 27. 09:03

 

 

 

 

  인사말 중에 가장 쉬운 인사가 축하의 인사말일 것 이다. 생일이든 결혼이든 입학이든 그저 축하한다면 될 것이다. 또한 받는 사람도 별 다른 의미 없이 가볍고 의례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누가 찾아왔느냐와 누가 인사를 전했는가가 관심사 일 것이다.

 

  상례의 조문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영전 앞에 절이나 묵념을 하고 상주와 맞절 후 악수를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부모의 상이면 “얼마나 상심이 크신가요” 혹은 “부모님 연세가 얼마신가요” 등등 의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 상처(喪妻)를 하고 장례식을 치룰 때였다. 조문을 온 문상객들 대부분은 맞절을 하고 악수를 나누면서 “힘내세요” 가 대부분이였다. 그런데 몇몇 조문객은 나와 악수를 나누곤 곁에 앉더니 “이제는 새장가 들어야지요” 하며 사뭇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인사말을 하는 것이다. 다른 조문객들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뒤를 돌아보면서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다. 심지어 그중 어떤 분은 자기 고향에선 상처를 하면 문상객들이 안방에 들어가서 장롱을 엎어놓는다고 했다. 마치 중대한 비법이나 알려주는 듯이 말이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남자의 본능 세계에서 그것이 최상의 위로의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배우자를 잃은 슬픔에서 속히 잊게하기 위한 말이 될 것이다. 아니, 그런 위로의 인사말이 봉건 사회에서는 통했을지도 모른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가장의 권위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였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남녀 평등을 넘어서 여성 상위시대를 외친지도 이미 오래됬다. 최첨단 디지털 3G 시대이자, 한 자녀를 둔 시대이고 더욱이 어린 외동딸을 둔 나는 상주를 겸하며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전통 상례상 남편은 상주가 될 수 없다. 지금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지키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내의 영정사진 뻔히 보이는......! 아니 아내가 내려다보는 아래에서 거침없이 재혼을 논할 수 있는 시대는 더욱 아니다. 내가 아내의 영정 사진을 올려보며 눈짓을 했더니 그도 아내사진을 흘끗 바라보더니 다소 미안했던지 “이제 간 사람은 잊고” 라고 말하며 또다시 인사말인지 의견피력인지 일장 연설을 했다.

 

  물론 삼우제가 지나자 장모님도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재혼하라고 말했고 처가나 본가의 웃어른들은 이제 재혼을 준비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조문을 와줘서 매우 고맙기는 해도, 장례식장의 영정 앞에서 재혼을 권하는 것은 좀 어색하고 간 사람에 대한 모욕이요, 나에 대한 무시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그 인사말이 예전엔 최상의 예우라고 해도 말이다.

 

   더욱이 나의 경우는 아내와 별다른 의견충돌 없이 평탄하게 가정을 꾸렸다. 아내 또한 남에게 싫은 말을 못하고 평생 화를 내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매우 애석하기만 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유년의 동기동창이라서 아내의 친구가 나의 동창이고 또한 아내의 동창들 모두 나와 매우 잘 아는 사이였다. 아내의 친구들 보자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애를 삭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당시 그 순간은 그저 앞이 막막하고 슬플 뿐이며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내가 재혼을 할지 안 할지는 순전히 나의 자유의사겠지만 영전에서 재혼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 날이나 지금 생각해도 매우 어색하고 힘겨운 순간들이었다.

아내의 그 힘들고 괴로운 투병생활을 지켜보는 것은 나도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더욱이 의식은 멀쩡하고 육신은 한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더욱이 대소변도 타의에 의해서 해결하고 마약(몰핀)으로 고통을 잊는 것을 보며 이제는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가고 나니 그래도 살아있었을 때가 나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많이 들은 얘기지만 말이다. "있다"와 "없다"의 차이는 경험하기 전까지는 실감치 못했다. 아내가 떠난 지금,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남는다. 또한 아직은 외출을 나갔다가 집에 곧 돌아올 것만 같다.

 

  이번 조문을 받아본 계기로 나도 어디 애경사에 가서 좋은 말을 한다고 상대방에게 결례가 되는 말은 하지 않았는가 반성을 해본다. 또한 아무리 그 말이 진리이고 명언이 된다고 해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에 따라서는 평생을 함께 하고도 다시 태어나도 또 만나고 싶은 배우자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상처라든가 혹은 이혼 등을 생각해본 일이 없이 살아왔다.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에서 웃는다”는 속어가 있기는 하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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