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마중

윤여설 2011. 2. 22. 22:07

 

 

 

 

 

                             봄마중

 

 

   입춘이 지났지만 아침의 외기 온도는 늘 영하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딘지 볕이 조금은 푸근하며, 차갑지만 매섭지 않다. 또한 한낮은 아침 기온을 잊을 정도로 따뜻하다.

들에 나가봤다. 아직은 겨울의 흔적들이 역력하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이 있고 논배미마다 얼음이 얼어 있다. 그러나 양지 바른쪽의 둠벙은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으며 맑은 물속엔 구름이 헤집고 놀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겨울을 난 돌미나리들이 푸르름을 덧칠하고 있고 송사리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2월 중순이지만 아직 개구리는 나오지 않았다. 예전엔 날씨가 포근할 때는 이 시기쯤이면 산개구리들이 산란을 시작하며, 울기 시작했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야 개구리를 볼 것 같다. 아니, 내가 봄의 흔적을 찾으려는 것이 좀 무리였나 보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기상 관측사상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했다. 1월 내내 영하의 날씨가 계속됐다. 마치 시베리아에 사는 것처럼 아침 기온은 영하 10도 이하를 밑돌았고, 눈(雪)도 예년에 비해 많이 내렸다. 아파트 베란다를 관통하는 빗물관이 얼어터지기도 했다. 남향인 이 아파트 베란다가 영하로 내려간 것이다. 또한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은 다반사요, 눈이 많이 내려서 전철역까지 15분이면 도착할 6km의 거리를 두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또한 보도에 의하면 동사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 난다지만 아침 일찍 지상의 전철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다보면 마스크가 어는 것은 보통이며 전동차를 타고 20여분 정도는 가야 몸이 풀리기도 했다. 정말 지난 겨울은 예전의 그 동장군이 아니다. 저 먼 나라 추운 곳에서 온 무서운 동장군임엔 틀림없다. 또한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이 구제역으로 살처분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계절은 순환한다. 이 진리는 만고에 불변이며 거스를 수가 없다. 벌써 남녘은 동백꽃이 활짤 피었다는 꽃소식이 전해온다. 아마도 혹독한 겨울을 치룬 올 봄은 예전에 비해 더욱 푸르르고 생동감 넘칠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폭풍 뒤에는 늘 잔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을 인내한 나무들이 어딘지 더욱 늡늡하고 씩씩해 뵌다. 또한 지금 다가왔다가 지저귀며 떠나는 박새 한 마리의 음성엔 희망이 가득 어려 있다. 내 몸이 어딘지 자꾸만 가려운 느낌이 드는 것은 봄기운이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봄이 이른, 우수가 지나지 않은 계절에......!

 

   봄이 우리 마을에 도착하면 분명히 물어볼 것이다. 네가 오기 전의 겨울이 왜 그렇게 혹독하고 고통스러웠느냐고. 너의 기다림이 그토록 힘겨워야 했느냐고.

   지난 겨울을 견디고 이 봄을 맞은 우리는 대단한 승리자들이다. 저 굳굳한 나무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 또한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모두가 위대한 승리자들이다. 올봄은 예년보다 더욱 뜻 깊고 알차게 보내야 할 것 같다. 저 푸르러 갈 앞산의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가 보고싶어 진다. 혹한의 고통을 인내한 아름다움이 기다려진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것인가! 또한 어떻게 이 봄을 감사하게 맞이할 것인가?

 

   이제 다가올 봄엔 가장 잊혀졌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초고속 정보사회에 좀 어색하고 어쩐지 현실의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도 나도 저 길고 혹독한 겨울을 인내했기에 더욱 갚진 사연이 될지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미워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다. 지난 겨울을 견디면서 자연 앞에 인간은 신의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을 더욱 깨달았다. 어찌하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가! 인간은 결코 영장이 아니고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들처럼 추위를 인내해야 하고 또한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할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다.

 

   이 봄날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더욱 더 사랑해야 할 일이다. 더욱 더 범사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지난 겨울을 인내한 모든 자연들아! 지금 봄을 기다리는 모든 승리자들아! 그대는 모두 용사들이다. 개선장군들이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보다 더욱 위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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