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호명산을 오르며

윤여설 2010. 8. 16. 16:26

 

                                                        (홍복고개)

 

 

<원고지 14매>

 

 

 

 

                                                                                          *호명산을 오르며

 

                                                                                                                                          - 윤여설 시인

 

 

    호명산(423m)은 한북정맥에 속해 있으며 주봉인 북한산의 백운대 줄기가 힘찬 날개를 펴서 도봉산의 만장봉을 거쳐 사패산으로 내려와 호명산에 이른다. 산의 능선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어둔동과 서쪽으로 복지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예전엔 호랑이가 어흥거려 호명산(虎鳴山)이라는 속설이 전해 온다.

 

   등산로를 따라 복지리 송산약수터를 지나면서 하늘 향해 시원히 뻗은 메타세콰이어나무들이 볕을 가려 산을 포근히 품어 안는다.  숲에 들면 믿음직한 아버지의 가슴에 안기는 것 같다. 저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들과 갖가지 짐승들, 그리고 땅에 기는 거미와 나방 등 수많은 곤충들이 평화롭다. 하늘은 산을 키우고 산은 나무를 키우며 나무는 가지아래 온갖 생명을 키운다. 또한 산은 인내를 길러 주고 땀의 수고를 느끼게 한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언제 오르나 하다가도 땀을 한 번 흘리고 나면 능선의 고갯마루가 눈앞에 와 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어둔동이다. 어둔동은 한양에서 꼭 백 리가 떨어진 곳이다. 아침에 한양을 출발해서 이곳에 당도하면 날이 어두어 진다고 해서 어둔동이라는 설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전해 내려온다. 이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정상을 향하게 된다. 능선의 경사가 매우 완만해서 아이들도 많이 올라온다. 또한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등산객들과도 종종 마주친다. 그들은 북한산부터 시작해서 설악산을 향하거나, 설악산에서 시작해서 북한산 백운대에서 종주를 마친다고 한다.

 

   능선의 중간 부분의 송전탑 아래서 잠시 쉰다. 전망이 매우 좋다. 서쪽으로 넓은 백설벌이 펼쳐지고 그 끝 지점에 감악산(675m)이 굽어본다. 백석읍은 분지로 되어 있으며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넓은 곡창지대이다. 그러나 지금 발 아래 펼쳐진 들판엔 많은 아파트와 공장들이 들어서서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농촌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적절한 주거 정책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또한 이 지역도 곧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자칫 다른 신도시처럼 베드타운으로 전락치 않을까 염려스럽다.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른다. 복지리 쪽은 경사가 매우 급하고 숲이 울창하다. 숲에서 무엇이 설핏 스쳐서 정신을 가다듬었더니 고라니 한 쌍이 놀라서 황급히 뛰어 간다. 아직은 청정지역이라서 가끔 살무사가 태연히 등산로를 가로지르고 두꺼비나 산개구리가 자주 목격된다. 또한 이 호명산은 계절에 관계없이 안개에 자주 휩싸인다. 멀리서 보면 흰 가디건을 걸친 여인처럼 보이고 산에 들면 안개가 전방 십여 미터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치 점령군에 포위된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피정동(D등산로)과 정상(등산로CB)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서 조금만 오르면 거북이 비슷한 큰 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바위가 궁어(宮御)바위이다. 이 바위에서 동쪽의 한마음수련원이 있는 지역이 조선왕실의 사냥터였다고 한다. 이 궁어바위에 깃발을 꽂고 왕실에서 사냥을 즐겼다는 설이 전 한다. 또한 이 지역에서 멀지않은 곳엔 조선왕조의 대군들의 묘가 산재해 있다.

 

   이제 어느덧 정상이 눈 앞에 다가온다. 호명산 정상은  돌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곳이 옛 보루(堡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양주대모산성의 망루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의정부 시가지가 한눈에 조망되고 사방으로 모든 지역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면 홍복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가 1968년 1.21사태의 김신조 일당이 서울을 향해 넘어간 곳이다. 이곳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요충지이다. 그리고 홍복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이 백석을 가로지르는 신천을 거쳐서 임진강으로 흘러간다.

 

   이제 하산하기 직전 잠시 백석읍을 내려다본다. 도시화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은 짙푸른 들판이 물결친다. 그 복지리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느티나무(보호수:경기-양주-14번) 아래엔 고인돌이 있고 선사 유적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성혈(性穴)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이것으로 봐서 이 백석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맑은 물이 흐르는 신천을 중심으로 고대부터 촌락이 형성돼 있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양주작가회의는 지금 발아래 내려다뵈는 가야 5차아파트 상가 2층에 위치한 어부바글방에서 매달 정기 모임을 갖는다.

 

   양주향교를 비롯해서 양주별산대놀이 등 어느 지역보다도 유무형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잘 보존되길 다시 한 번 기원해보며 정상을 내려온다. 무덥고 축축한 여름 산행이지만 백석지역을 유심히 조망하고 내려오는 발길이 가뿐하다.

(한국고고학회원)

   

 

 

                                                   * 호명산: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숲이 울창함

 

 

 

 

 

 

                                                                                                                                       <양주 작가회의 창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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