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백석에 와서.13

윤여설 2009. 12. 21. 19:28

         

                                     (하천의 준설이 아니라 하천에 콘크리트 갑옷을 입힌 것 같다)   

             

 

 

 

 

 

                                     백석에 와서13

 

 

 

    거리에 낙엽이 뒹군다.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다. 조금은 매서운 바람이 빈 들판을 흔들며 지나간다. 11월 중순의 이 지역도 어느 농촌처럼 조금은 고즈넉하다. 다만, 뒤돌아보면 들판에 우뚝 선 아파트를 보며 이 곳이 시골인가를 의심케 한다.

 

   이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은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공기가 맑은 곳을 택해서 이 지역에 정착했다. 덕분에 아내의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생활의 편리함만 추구하는 혼탁한 도시의 환경과 공해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은 것이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가장 의아했던 것은 아파트 단지 양 옆으로 흐르는 개천이었다. 홍복고개의 약수터에서 발원하는 신천이다. 이 개천이 흘러서 임진강을 이루고 임진강은 다시 강화도에서 한강과 만나서 황해로 흘러간다. 아직은 개천의 최 상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물의 오염은 심각치는 않다.

 

   문제는 개천의 준설인지, 하천의 개발인지? 혹은 복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시골의 개천처럼 제방에 미루나무나 버드나무가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둑의 맨 위에서부터 물이 흐르는 바닥이 닿는 부분까지를 콘크리트 블록으로 견고한 성벽처럼 쌓아 올렸다. 어떤 날은 개천에 내려온 뱀이 열을 받아 달아오른 콘크리트 제방을 오르지 못해 그냥 둥둥 떠내려가는 것이 목격되곤 한다. 전혀 생태계를 고려치 않고 둑을 준설한 것이다. 더욱이 아파트 왼쪽의 개천은 둑을 수직으로 4미터정로를 쌓았다. 제방이 아니라 한번 빠지면 사람도 그냥은 절대로 올라올 수 없는 인공 절벽 아래 물이 흐르는 것이다. 제방에 어른거리며 노는, 고라니가 빠지면 도저히 살아나올 수가 없는 인공 함정이 되어버렸다.

 

   이 땅은 우리 인간들끼리만 살아갈 수가 없다. 사람은 동물이다. 동물은 다른 동식물들과 상호 생태계 사슬 이루며 살아간다. 비록 도시가 인간들의 삶을 위해 만들어졌다지만. 도심에서 자족할 수 없는 식량 등을 시골에서 보충해주기 때문에 유지가 된다. 그런데 시골마저도 생태계를 전혀 고려치 않은 하천을 준설한다면 사람 아닌 다른 생명체들은 어디에서 살아 갈 것인가? 결국은 그 곳에서 살아야 할 생명체들이 사라지면 마지막으로 인간이 사라진다. 아니, 수해를 예방하겠다며 준설한 하천이 도리어 인간을 공격하는 꼴이 된다.

 

   이 지역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농촌이지만 농업이 주업인 가구는 많지 않다. 거의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농촌이지만 아파트 거주하는 주민들이 80%를 넘는다. 또한 주위엔 공장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단독주택이라도 한옥은 거의 드물다. 이미 초가는 사라진지 오래고 기와집도 보기 어렵다. 다만, 초가를 개량해 슬레이트를 올린 가옥들이 주를 이룬다. 단독주택의 신축가옥은 전부가 양옥이다. 초가는 매우 불편하지만 시골의 신축하는 모든 집들이 아파트이거나 양옥이어야 할까?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다. 개인의 재산상의 피해를 감수하는 보존이나 전통은 있을 수 없다. 새로 집을 지을 때 전통한옥을 지을 경우는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그래서 최소한 양옥주택보다 한옥을 짓는 것이 이익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의 전통가옥을 지킬 수가 있다. 또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더라도 관리사무소나 노인정 등은 꼭 한옥으로 지어서 우리의 혼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지금처럼 도시나 농촌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한옥은 이제 극소수로 보존되는 한옥마을이나 절간에서만 명맥이 유지될 것이다.

 

   이제 시골도 옛 시골이 아니다. 올 봄엔 제비 한 마리보지 못했다. 추녀가 없으니 둥지를 틀 수 없는 제비들이 농촌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예전의 주거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그렇다고 지금도 이 마을의 신천을 복원하듯이,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처럼 도로를 내는데 장애가 되는 나무는 아름드리가 됐건, 당산나무가 됐건 모두 제거하는 방식은 안 된다. 또한 초가는 무조건 슬레이트로 올리는 개량방식도 잘 못 되었다. 최소한 그 마을에 독특한 구조의 초가 한 두집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서 보존해야 했다.

 

   스위스는 100여 년 전의 거리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마을의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서 주민투표를 하면 모두가 반대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도시나 농촌 구분 없이 10년 후에 가보면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한 곳이 많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고 또한 도시나 마을이 발전해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존할 가치가 있는 전통의 추억이 살아 숨쉬는 거리와 골목까지 변화시키는 난발전엔 분명 문제가 있다. 즉, 오늘의 우리와 나가 있게 한 전통이나 풍습을 이룬 환경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 마을도 멀지 않아 아파트군락이 들어선다고 한다. 실로 가슴아픈 일이다. 시골을 찾아 이 곳에 온 우리 가족은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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