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대문운동장 터를 바라보며

윤여설 2008. 8. 7. 12:52

 

동대문운동장터를 바라보며

 

 

 

  철거가 완료된 동대문운동장(구,서울운동장)터를 바라보면 듬직한 이웃을 잃은 것처럼 늘 허전하다. 빌딩의 숲 한가운데 도심의 복판이 폭격을 맞은 듯이 훵하다. 알몸이 드러나듯이 황토빛 맨땅 위에 발굴을 진행하는 사람들만 분주할 뿐이다. 또한 노출된 유적이 장마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덥어놓은 파란 포장이 을씨년스럽다.

 

  내가 동대문 운동장에 깊은 관심이 가는 것은, 근무하는 회사가 동대문운동장 바로 곁의 빌딩 10층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창밖을 내려다보면 야구경기가 진행되곤 했다. 그러다가 올 정초부터 철거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처음 철거가 진행되는 날, 눈이 내려서 지켜보는 마음에 묘한 기분이었다.

 

  동대문운동장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고 1때였다. 그 당시 박정희대통령컵이 열리고 있었다. 그때 친구들과 오후에 열차편으로 상경해서 야간 경기를 보고 내려간 일이 있다. 이 건물이 철거되는 관경을 매일 지켜보면서 늘, 어딘지 측은하고 역사의 한부분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또한 이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키 위해 디카로 찍어 앨범에도 저장하고 블로그에도 올렸다.

 

  지금 발굴이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유적은 조선 중기의 건물터로 추정된다. 원래 이 자리는 조선왕조 때의 하도감(下都監)터였다. 하도감은 지금의 수방사의 하위급 부대에 해당된다.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때에 이곳에서 3일간 머물면서 국정을 구상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자리는 4대문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대문과 광희문을 잇는 성곽이 지나던 자리였다.

  1926년 일제는 이곳에 근대식 경기장을 건립했다. 그리고 순종황제의 노제가 이 운동장에서 치렀으며 김구 선생의 장려식도 이곳에서 치렀다. 또한 잠실 운동장이 건립되기 전까지 모든 국가적 행사나 경기는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그러므로 철거가 된 동대문운동장은 일제 강점기의 수난과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건물이었다.

  서울시에서는 이 건물이 철거된 자리에 테마파크를 조성할 예정이다. 테마 공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할지 모르나 철거의 결정이 좀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현,시장의 캐치프레이즈인 창의 시정을 앞세워 자신의 재임 기간에 성과를 올리기 위해 졸속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닐까!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건축물이었다. 일제의 청산은 아닌 것 같고 아마! 88올림픽을 치룬 잠실 메인스타디움에 그 기능을 넘겨주고 제 구실을 할 수가 없자, 철거를 결정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 계획 중인 공원보다는 기존 건축물을 유지하면서 리모델링 등을 통해서 더욱 가치 있게,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킨 공원으로 만들어 관광명소로 발전시킬 수는 없었을까? 또한 주변의 동대문상권과 연계시켜서 기존의 건축물에 스포츠전문매장의 기능을 확대시킨 공원을 조성해서 스탠드엔 나무나 꽃 등을 심고 그라운드는 배구장이나 배드민턴장 등으로 만들어서 주민들에게 개방시켰으면 더욱 가치와 효율이 컸을 것이다.

 

  이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많은 부작용도 있었다. 우선 철거를 반대하는 스포츠인들의 성명이 줄을 이었다. 역사적 보존 가치 외에 문화적으로 세계에서 유일무일한 스포츠전문용품점 타운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입주 상인들과의 마찰도 계속되었다. 상인들은 이곳이 생활터전이었으며, 동대문축구장에 입주했던 서울 풍물시장은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주변의 황학동 벼룩시장의 상인들이 입주해 왔다. 그들은 다시 신설동으로 옮겨가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우리 시민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것이다. 아니, 동대문운동장을 기억하는 전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저 자리의 공원이 이전의 근현대사를 한몸에 안고 서 있던 운동장의 의미보다 더욱 가치 있고, 문화 창달에 앞장 서는 공원이 되길 기대하면서…….

 

  또한 성급한 남대문의 개방이 화마를 불렀듯이 성급한 철거가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오점이 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크다.

  역사는 속일 수도 없고 속여선 안 된다. 운동장 건물이 그 곳에 있었다고 해서 역사가 잘 못될 일도 없고 서울시의 미관을 해칠 이유도 없다. 다음부터는 이런 역사적 건물들을 철거할 때는 충분한 공청회를 거쳐야 할 것이다. 또한 인터넷 등을 통해 찬반 여부를 주민투표에 붙일 수도 있어야 한다.

  이제 철거는 끝났다. 과연 이곳에 어떤 공원이 들어설지가 가장 궁금하다. 그 공원이 저 동대문운동장이 차지했던 시민들의 마음 한구석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출  (0) 2009.01.30
서점이 사라져가는 거리  (0) 2008.09.25
혼례식장을 다녀와서  (0) 2008.05.02
사형집행 부활 주장을 보며  (0) 2008.03.26
농촌에 늘어나는 숙박업소를 보며......!  (0) 2007.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