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여름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모두가 지치고 힘들다. 물이 그립고 바다가 생각난다.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 난다지만 우(雨)기와 겹쳐서 일찍 찾아온 무더위는 낮에는 폭염으로, 밤엔 열대야로 잠을 설치게 한다. 가까운 하천의 교량 밑에 자리를 편 시민들은 밤이 깊어도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이런 여름이면 나도 물가의 숲에 그물그네를 매고 부채질이나 하면서 보고 싶은 책이나 읽으면서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다소 느긋한 생각도 해본다.
여름 복장은 남녀 모두가 간편하다. 특별히 격식을 차려야 할 장소를 빼곤 남녀모두가 반팔 상의나 T셔츠를 입어도 무난하다. 또한 피서를 간다면 편리하게 반바지에 슬리퍼도 어색치 않은 요즘이다. 그런데 작년으로 기억된다. 시내의 대형 마트에 피서를 떠나는 처녀들이 수영복차림의 비키니와 원피스를 입고 매장을 돌아다녀서 빈축을 산 일이 있다. 사실 시장은 바닷가와 달리 예의가 필요한 곳이다. 몰론 여행을 가는 설레임에 들떠 다소 우를 범했다고 애교스럽게 봐주기는 지나친 감이 있다.
이렇게 밤낮없이 삶은 듯한 더위가 지속되면 더위를 이기려고 노출을 많이 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대중 앞에 노출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남녀 모두의 경우 반바지는 허용될 것 같고 남자의 경우 상의 윗단추를 풀어서 가슴털이 숭굴숭굴 보인다면 좀 어색할 것 같다. 또한 여자의 경우 가슴의 V라인이 선명히 드러날 정도의 상의 복장이면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올 여름은 고유가 덕분에 지하철 역사의 냉방도 에너지 절약으로 예전처럼 시원치가 않다. 얼마 전의 일이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오는 여성이 치렁치렁 늘어트린 치마의 길이가 너무 짧은 나머지 왼손으로 치마깃을 잡아당겨서 움켜쥐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올라오던 승객들은 좀 어색해 뵈는 그 여성의 왼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내려오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승객들에게 매우 불쾌한 시선을 주며 일일이 마주쳤다.
자신감을 가지고 내려오면 아무렇지 않았을 건데, 본인이 과잉반응을 해서 당사자는 물론이요,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불쾌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내려오는 계단이라서 그렇지, 그다지 과잉노출의 복장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름답게 뵈기 위해서 자신감 있는 복장을 했으면 그 정도의 시선은 감수해야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그 여성의 자신감 없는 시선이 주위를 불쾌하게 만들었지 결코 그녀의 복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때 바라본 승객들이 그녀에게 모욕감을 주려했다거나 성희롱적인 선정적 눈길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짧은 치마 길이에 비해 폭이 넓었을 뿐이었다. 그냥 내려오기가 거북해서 치마깃을 당겨서 웅켜쥐었으면 자신 있게 그냥 내려오면 될 것이다.
요즘 TV음악 프로를 보면 백댄서들의, 바지인지 속옷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의 짧은 바지에 등과 어깨가 훤하게 드러나는 셔츠룩 복장이 어딘지 안방에서 보기에는 다소 민망하다. 또한 거리에서도 그렇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가슴의 중앙V라인이 확연히 노출되고 소위 등의 견갑골이 드러나는 U형 타입의 상의에 매우 짧은 바지를 입고 활보하면서 어찌 남의 시선을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노출이 심한 복장을 했으면 남의 시선쯤은 감내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치 않을까?
적당히 알맞은 여름 복장의 젊은이들을 보면 싱싱한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생명감이 넘치고 힘이 있어 뵌다. 그러나 어쩐지 좀 야하고 선정적인 복장을 한 젊은이들을 보면 다시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조금은 천박한 느낌이 든다.
사람은 개개인의 소양이라든지, 취미와 개성이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동일한 복장을 찾기가 힘들다. 누가 어느 복장을 하고 어떤 옷을 입든지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탓할 일도 아니다. 다만, 예의에 지나친 노출은 피해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질서인 것 같다.(2008년 8월)
|
|
|
나의 홈페이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신의 시대 (0) | 2009.11.08 |
---|---|
백석에 와서12 (0) | 2009.09.15 |
서점이 사라져가는 거리 (0) | 2008.09.25 |
동대문운동장 터를 바라보며 (0) | 2008.08.07 |
혼례식장을 다녀와서 (0) | 2008.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