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꿈의 바벨탑

윤여설 2007. 9. 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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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75매)                          
                                   꿈의 바벨탑
  

                                                              윤 여 설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입주자들이 담합이나 한 듯 모두 아래층의 주방용품업소에 모여 있었다. 그가 들어가자 차가운 눈초리들로 바라 봤다. 표정들이 성난 매지구름 같았다. 모두들, 월 이만 원밖에는 못올려 준다고 항변했다. 월 이만 원이면 전세금으로 계산해, 년 일백만 원밖에는 올려주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건물의 위치가 그렇게 썩 좋은 곳은 아니었으나 사 차선 도로를 낀 건물의 임대료 인상분치고는 매우 적다. 그것도 입주자들은 이 년 계약을 요구해 그는 매우 난처했었다. 
  그도 한때는 전세를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한창, 전세값이 폭등할 때였다. 전세값을 해결하지 못해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정부는 서둘러 신도시 주택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겨우겨우 안정되기는 했지만 전세값이 내려서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치솟던 상승지수만 멈췄을 뿐이다.
  그 때, 그는 엄청난 인상을 요구하는 전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합동민원실에 전화를 했었다. 민원실 직원은 친절히 구청의 민원실을 소개해 줬다. 구청의 민원봉사실을 찾았으나 별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구청직원의 위로 아닌 위로와 덧붙이는 말이 "현행법으로는 어떤 대책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갈 때 욕이나 한 번 해주세요. 잘먹고 잘살으라고요." 그는 주인의 터무니 없는 인상 요구에 이사를 나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세입자들은 매우 당당했으며 자기 주장이 뚜렸했다. 거기에는 누나의 우유부단한 성격도 한몫을 했다. 그동안 누나는 계약기간이 끝나기 몇 달 전에 인상분을 통보하고 싫으면 나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입자가 사정하면 인상분을 깎아 주었다. 결국 세입자들에게 끌려 다니는 꼴이 됐다. 누나는 그것이 두려워 그를 시켰다. 임대료가 비싸서 그 건물에서 이사간 사람은 없었다. 
  그가 한 마디를 하면 여서일곱 마디씩 되돌아 왔다. 그리고 세입자들은 불리하면 누나를 지칭하며, 여사장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데요. 라고 말하고는 얼버무렸다. 그를 아주 악덕 임대업자로 만들었다. 또한 옆 건물의 사람들도 몰려와 세입자와 한통속이 되었다. 세입자들이 말할 때마다 거들었다. 그가 "일 층은 월 십이만 원을 올려주세요." 라고 말하면 일 층 세입자가 말하기도 전에 옆 건물에서 온 사람이 먼저 "우리 가게는 이보다 훨씬 큰데도 지난 달에 월 팔만 원밖에 안 올렸어요." 라고 말했다. 그는 세입자들의 말을 다 들은 후, 우여곡절 끝에 원만한 합의점을 이끌어냈다. 
  도로변의 복합 사 층 건물을 고려해서 일 층은 월 십만 원, 이 층은 월 팔만 원, 삼 층은 월 육만 원, 그리고 주거전용인 사 층은 임대차 보호법을 적용해서 월 사만 원으로 입주자들과 합의를 봤다. 입주자들은 재계약서를 쓰고는 많은 요구를 했다. 물에서 녹이 많이 나오므로 배관교체를 요구했고 또한, 옥외 화장실의 시건장치를 요구했다. 그는 가능한 범위에서 모두 들어주었다. 입주자들은 기고만장해서 옥상의 물탱크 청소를 요구했다. 그는 단호히 말했다. "그것은 시설물 보수가 아닙니다. 세입자들이 본인들의 건강을 위해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그뒤에도 그는 몇 번을 더 가봐야 했다. 
세금 고지서를 가져오기 위해 갔었고, 앞 도로의 지하철 공사 때문에 건물이 심하게 흔들린다고 연락이 와서 갔었다. 건설현장사무소 소장을 만났고 부소장과 함께 누나의 건물에 와서 진동을 측정했다. 허용치 이내였다. 부소장은 관정봉을 밖는 항타기 작업만 끝나면 진동은 없을 것이라며 그때까지만 참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금은 불안했다. 허용치 이내라고는 하지만 진동은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고 건물이 또한 건강하지 못했다. 사실 그 일도 그렇다. 가장 큰 피해자인 세입자들이 현장사무소에 가서 해결하고 건물주에게는 통보만 하면 될 일이다.  


  누나는 본인의 재산이지만 그 건물에 가는 것만은 매우 두려워 했다. 그리고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이제 그 건물을 팔아야 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건물을 팔아서 투자신탁에 넣으면 현재의 건물 임대료보다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나 누나는 그 건물을 매각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일을 부탁하는 것이 미안해서 에멜무지로 하는 말이었다. 누나는 기분이 좋을 때면 그 땅을 평당 삼십만 원에 샀는데 지금은 천만 원이 넘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한 지하철이 계통되면 또 한번의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가 건물을 한 번 돌아 봤다. 준공된지 사 년밖에 안 된 건물치고는 너무나 낡아 있었다. 벽에 금이 가 있었다. 옥상의 플라스틱 물탱크는 주먹으로 쳐도 파손될 것같이 얇은 불량품이었다. 그리고 계단의 경사도 다른 건물에 비해 상당히 급했고 계단턱도 높았다. 옥상의 사모리도 거친 모래를 썼고 시멘트도 덜 넣은 것 같았다.
그가 누나에게 건물이 부실공사로 지어졌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말을 들을 때마다, 누나는 서운한 듯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공사할 때 자주 가보고 인부들 음식도 많이 사주고 했어야 되는데...... 살림하느라고 시간이 있었어야지. 그리고 내가 여자잖니." 라고 말했다. 일 층은 주방용품점이라서 문제가 없었고 이 층도 피아노학원이라서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각 층 공히 방을 들여 살림집을 겸하며 모두 부부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전부인 생업이었다. 그러나 삼 층이 문제였다. 사 층이 주거 전용으로 살림집을 세놓았다. 사 층은 겨울이면 온돌용 난방 보일러를 가동했다. 그가 계약서를 받고 얼마 후에 사 층의 난방 파이프가 터져 삼 층의 미술학원 천정에 물이 비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빗물처럼 떨어졌다. 그는 또 누나의 마지막이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제는 세입자들이 그가 건물의 관리인으로 알고 있었다. 또한 누나는 입주자들이 어떤 문제로 전화을 하면 그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세입자들은 어떤 문제가 있으면 당연하게 그에게 전화했다.


그는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서 사 층의 세입자에게 살림을 옮겨 줄 것을 요구했다. 살림은 옥상에 비닐로 잘 포장을 해 놓았다가 공사가 끝나면 다시 넣어 주겠다고 말했다. 사 층의 세입자는, 나는 친척집도 없고 갈 곳이 없으니 이사를 가겠다며 복덕방비와 이사비용을 요구했다. 아니면 공사가 끝날 때까지의 여관비용과 식대를 요구했다. 공사가 끝나고 방의 청소비용도 요구했다. 오십대 후반쯤 보이는 세입자는 다방을 경영하는 늙은 독신녀였다. 본인은 미혼이라고 하지만, 세입자들의 말에 따르면 결혼해서 살다가 애를 낳지 못해 이혼당했다는 것이다. 푸르스름한 눈가에 흘끔거리는 곁눈질이 차갑기만 하다. 그는 몇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누나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라고 했다. 아니면 한 번에 공사를 모두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방 한 칸만 우선 공사를 마치고 그방으로 살림을 옮기고 생활을 하며 다른 방의 공사를 한다는 안이었다. 그리고 이사를 가려면 계약기간 전이므로 중개료와 이사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러면 누수가 되는 쪽의 방을 한 번 뜯어보자고 말했다. 물이 새지 않는 방을 공사할 것이 뭐 있냐고, 생각해 주는 척하며 말했다. 공사업자가 누수가 되는 쪽 위의 방을 뜯었을 때 난방 동파이프가 파손된 것을 보여 주었다. 아마 신축 공사중에 망치로 한 번 맞은 것 같이 쭈그러든 부분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신축할 때 업자나 인부는 자재가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 부분이 쉽게 파손된다는 것도 그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찌르릉 찌르르릉......"
혼곤히 낮잠을 즐기고 있는 그를 전화기가 요란히 깨웠다. "이번 한 번이면 된다. 옥상에서 물이 샌다고 한다. 내가 다시는 부탁하지 않을게" 누나의 목소리는 애원하듯 수화기에서 흘러나와 가슴을 적셨다. 매번 전화할 때마다 누나는 마지막이라면서도 계속 부탁했다. 그는 누나의 지극히 상투적인 말에 매우 짜증스러웠다. 누나의 청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일찍 과부가 되어 재산이라고는 그 건물 하나뿐이다. 누나의 부탁은 매우 집요했다. 그는 투덜대며 옷을 갈아입고 에어콘을 껐다. 그리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책상 위에 책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다. 그는 점심식사 후에 석사학위 논문자료를 정리하다가 잠이 들었었다. 그는 대충 정리를 했다.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기가 그의 가슴을 파고 든다. 숨이 막혔다. 

 

 


그는 찌뿌둥한 표정으로 대문을 나섰다. 어제부터 미화원들의 파업으로 수거해 가지 못한 쓰레기의 악취가 골목 가득 흔들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쓰레기봉지를 뒤지며 닭뼈를 물고는 개걸스럽게 먹고 있다. 그 곁에는 고양이도 다른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다. 고양이는 밥에 석여있는 생선조각을 먹고 있다. 두 동물 모두가 무엇에 �기듯 바쁘기만 하다. 공중에 도로를 횡단한 플랭카드에는 "올 여름 피서는 xxx 해수욕장에서. 시장 yyy" 라고 적혀서 손짓한다. 모두들 피서를 떠난 거리는 모처럼 공허했다. 가로수들도 더위를 먹어 지쳐 있다. 갑자기, 남쪽 하늘로부터 먹구름떼가 점령하듯 몰려온다. 금방 비라도 퍼붓을 것 같다. 그는 지하철역을 향해 가고 있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한가한 낮이라서 빈자리가 있지만 객실은 손색없는 이동식 사우나다. 냉방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고 천정에는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둘둘거린다. 여성들의 화장품 냄새와 진한 향수냄새가 혼합되어 코를 자극한다. 가끔 "이 열차는 냉방가동 중이오니 창문을 열지마시고 열려진 창문이 있으면 닫아주십시오." 라는 승무원의 육성방송이 나오지만 누구 하나 문을 닫는 사람은 없다. 아니, 문을 닫았다가는 더위에 질식할 것 같다. 더워서 문을 열어 놓았지 열어 놓아서 더운 것은 아니다. 선반에는 승객들이 보다만 신문지 조각들이 앉아 있고 벽에 붙은 광고도 오늘은 짜증스럽다. 한켠에서 젊은 연인들이 더위도 잊은채 나란히 앉아 이마를 마주대고 즐겁기만 하다. 그들의 퀴즈게임 소리가 소음 속을 뚫고 나즉히 들려온다. 
그는, 옆에 앉은 중년남자가 펼친 신문을 넘겨다 보았다. 신문에는 준공검사를 앞둔 건물이 또 무너져 내렸다는 타이틀이 사회면을 부음처럼 장식하고 있다. 부실의 원조는 아마도 우리나라 같다는 소제목이 써 있다. 그는 마음이 무겁고 찹찹하다. 오늘은 입주자들이 또 무슨 요구를 할까? 왜 이 악역을 떠맡아야 할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의 다리에 그의 시선이 자주 간다. 여인은 초미니스커트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여유롭게 졸고 있다. "내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내.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복음성가가 객실을 처량하게 휘감는다. 죄라고는 저지를 수 없을 것 같은 맹인이 흰지팡이를 눈삼아 객실을 지나간다. 맑은 미소에 누추한 복장, 안경을 끼지 않은 눈언저리는 움푹 꺼져 있다.  가끔 동전을 넣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맹인은 허리를 굽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앞을 지날 때에 맹인의 오른손에 든 바구니 안을 살펴보았다. 파란 프라스틱 바구니에는 하얀 동전 몇 개와 지폐 몇장이 있다. 반대쪽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온다. 하모니카는 찬송가를 불고 있다. 맹인은 복음성가를 멈추고 잠시 서서 귀를 기울인다. 점점 다가오는 소리를 파악하고는 즉시 한쪽으로 비켜 선다. 그 표정이 매우 진지하다. 그리고 다음 역에 열차가 정차할 때, 맹인은 즉시 내렸다. 


그는 지하철을 승차할 때마다 조우하는 맹인들이 안쓰러워 처음에는 바구니에 동전을 넣었다.그러나 너무 자주 대하면서는 지치고 시들해 졌다. 다가온 걸인은 맹인이 아니었다. 지체장애자였다. 양쪽 다리가 잘린 장애자는 기어가면서 사람들에게 바구니를 내밀었다. 젊은 장애자는 상당히 험상궂은 표정이다. 눈은 총기가 있고 어딘지 분노가 가득 넘치는 눈빛이다. 돈을 넣지 않는다고 협박은 하지 않았으나 표정이 매우 불쾌했다. 그는 장애자가 다가오자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바구니에 넣었다. 장애자는 표정을 바꾸어 고맙다는 뜻으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 잠시후 저쪽 칸에서부터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불경을 외며 요령을 흔드는 맹인이 다가오고 있다. 훈짐에 지친 승객 모두가 짜증스러운 표정이다. 요령을 든 맹인이 도착하기전에 열차가 플랫폼에 정차했다.


승객들이 우루루 열차에서 내렸다. 그도 따라서 내렸다. 플랫폼이 객실보다 시원하다. 폼에는 그와 같이 내려 옷깃을 손으로 들썩이며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많았다. 그중에 한 승객이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에잇, 씹팔. 나는 세금도 꼬박꼬박 내는데 차는 덥고, 저 불쌍한 애들은 거리로 안나오게 어디 좋은 곳에 취직시킬 데가 그렇게 없나." 그는 잠시후에 도착하는 열차에 승차했다. 앞차와의 시각이 짧아 객실은 공터같이 한산하다. 냉방도 성능이 좋아 아주 시원하다. 그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무겁던 머리도 가라앉는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앉은 승객이 한숨소리에 놀라 그를 바라봤다.
열차가 지하구간을 빠져나와 교량을 건너고 있다. 하늘은 무엇이 불편한 듯,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주위가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동쪽 산너머에서 번개불이 하늘을 가르며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는 사라졌다. 열차가 평소보다 속도가 매우 늦다. 그는 의아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에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열차는 선로 공사관계로 잠시 서행하고 있으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언젠가, 신문에 이 다리도 건설한지가 십이 년이 채 안되는 데도 부실 시공으로 도저히 정상운행이 불가능해 해체하고 다시 시공해야 한다는 기사가 났다.

                                         *

그도 군에서 재대하고 복학을 할 때까지의 기간에 건설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교량을 건설하는 공사장이었다. 낮에는 눈이 많아서 그래도 낳았다. 공기를 단축하려고 밤에도 공사를 강행했다. 밤에는 능률이 오르지 않고 또 그많큼 성의도 없다. 밤만 되면 공사장이 부실장으로 변했다. 
뿌연 전등불 아래서 교각을 만들기 위한 거푸집에 넣을 콘크리이트를 배합하는데 자재를 아끼기 위해 적당히 배합했다. 굵은 철근 몇 가닥이 마지못해 있었고 모래와 자갈이 전부였다. 굳을 정도의 응축력만 확보할 최소량의 시멘트를 넣었다. 강도 같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때가 시멘트가 풍귀현상을 보일 때였다. 보다 못한 그가 시멘트를 더 넣으려고 하자 십장은 화를 벌컥내며 소리쳤다. "이봐, 당신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봐! 당신은 돈 적게 버는 장사하려고 하겠어. 좀 아껴요, 아꼇." 그리고는 "요즘 젊은 것들은 융통성이 없어서 어디 원....." 이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곁에 같이 일하던 나이 지긋한 인부가 또 거들었다. "나는 젊은 애덜 허구는 일 못허것어, 어떻게 답답한지 죽것당게." 라고 말했다.


낮에는 감독 나온 공무원이 순시라도 하면 십장은 무슨 절대자라도 되듯이 굽실거렸고 부소장이 수행비서처럼 따라다니며 뒷시중을 들었다. 감독관이 거들먹거리며 다니는 것을 보고 못마땅했던지, 한 젊은 인부가 질통을 내려 놓고 그와 잠시 앉아 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십장이 있는 쪽을 흘끔흘끔 보며 그에게 말했다. "내가 어서 들었는데, 관급공사를 따낸 건설업체에서는 현장 감독관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승용차와 기사를 대여해 주고, 매일밤 고급요정에서 주색에 물리도록 대접을 받는다고 합디다. 그리고 관에서 수의계약하는 공사는 공사비의 사 할은 관에서 되받아서 나눠 먹는답디다." 그 때 저쪽에서 나타난 십장이 소리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야, 너희들 놀면 논만큼 일당에서 깔꺼야. 일하기 싫으면 꺼져. 너희들 아니라도 줄서서 대기하고 있어. 일할 사람은 많아." 코를 벌름거리며 다니며 십장은 잠시 쉬는 꼴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자재를 많이 쓰는 것과 쉬는 것은 독수리 먹이 낚듯 잘 봤다.  
그가 일어나서 막 한 삽을 뜰 때였다. "으악! 윽." 하는 단발마의 비명이 매아리 쳤다. 비명이 난 곳은 교각 중간쯤의 가설통로였다. 그는 머리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 봤다. 가설통로의 발판이 부러지고 있었다. 리어커에 자갈을 싣고 올라던 인부가 리어커와 함께 허공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자갈들이 낙하하는 꽃잎처럼 흩어져 내렸다. 인부는 허공에서 무엇이라도 잡아보려고 발버둥이쳤다. 이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말로 "살려줘어, 어,  어,   어...... 어머니!" 라고 외쳤다. 허공에 물구나무 서서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위를 향한 두발의 흰운동화가 멀리 보이는 갈대처럼 흐느적였다. 일하던 인부들이 "어~어, 어~어," 소리를 내며 휘둥굴해 내려다보았다. 본인들에게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몇 초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윽" 하는 짧은 외마다의 음성이 들려왔다. 십장은 재빨리, 그러나 아주 태연하게 내려갔다. 
하루에도 몇 건씩의 재해자가 발생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 봤다. 가설통로는 경사가 급했고 통나무 비계도 가늘기만 했다. 어느 것 하나도 안전 기준에 적합한 것은 없었다. 산재는 들어 있지만 산재처리도 하지 못하게 했다. 며칠은 회사에서 치료를 해주지만 어느 정도 낫으면 나몰라로 일관했다. 산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인부들은 본인의 실수로 알고, 혹은 팔자로 알고, 치료다운 치료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허리라도 다치면 돈 한 푼 못받고 인생 끝장이었다.

                                      *    

열차가 다시 지하구간에 진입했다. 갑자기 객실의 천정등이 소등되었다. 승객들이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그도 매우 당황했다. 형광등 네 개가 겨우 객실을 비추고 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열차는 지금 전차선 단전으로 객실등이 소등되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단히 죄송합니다." 금방 객실 천정등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잠시 뒤, 또다시 소등되었다. 열차가 역에 정차했을 때 공구를 든 직원이 와서 객실의 분전함을 열고 무엇인가를 만지더니 객실의 천정등이 절반만 켜졌다. 
열차는 상당히 속도가 낮아졌고 객실은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했다. 천장의 에어콘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는 것 같다. 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열차는 차량고장으로, 승객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다음역까지만 운행되고 차량기지로 입고할 예정이오니 다음역에서 모두 하차해주십시오. 대단히 죄송합니다." 승무원은 거듭거듭 안내방송을 했다. 다음역에서 모두 내려야 한다고 마취시키는 것 같다.
그는 다음역에 열차가 도착했을 때에 내렸다. 승객들이 별 불만없이 모두 내리고 있다. 승강장이 시장속처럼 붐볐다. 그는 플랫폼 기둥에 있는 공중전화로 갔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전화를 하고 있다. 그는 여자 뒤에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여자의 통화음성이 들렸다. "엄마, 나 스위스에 여행 안보내주면 아주 집에 안들어 갈꺼야. 아빠한테도 그렇게 말해 알았지." 여자는 통화가 상당히 길었다. 여자는 수화기를 거칠게 걸어놓고 되나오는 전화카드를 낚아채듯 받아서 바쁘게 갔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카드를 넣었다. 신호음이 떨어졌다. 그는 천천히 번호를 눌렀다. 누나의 건물 일 층의 주방용품점이다. 먼 파도소리처럼 신호가 몇 번가더니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물이 어디가 새느냐고 물었다. 주방용품점 주인 남자는 "지금 건물벽이 벌어져 하늘이 보이고 벽 속의 수도파이프 연결부분에서 물이 새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앞의 보도블록이 지하철공사장쪽으로 침하되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도 현장 사무소에서 위험하다고 대피하라는 연락이 와서 모두가 밖에서 자고 왔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매우 지쳐 있다. 
 바로 도착되는 열차에 승차했다. 열차는 다시 지상구간으로 나왔다. 굵은 빗방울이 한둘 씩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가로수들이 허리가 휘어져 아우성친다. 전기줄도 좌우로 흔들리며 그네를 뛴다. 객실의 승객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그림자가 어렸다. 엄마품에 안긴 아이는 천둥소리가 울릴 때마다 품을 파고들며 칭얼거린다. 


그는 지하철에서 내려 누나의 건물에 도착했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건물 앞에 보도블록이 상당한 각도로 지하철 공사를 하는 도로쪽으로 기울어 있다. 포탄도 뚫지 못하게 저 두껍게만 도로를 덥고 있는 철판. 
비는 무섭게 오고 있다. 건너편 건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주위에는 우의를 입고 안전모를 쓴 건설현장 사무소장이 나와 있다. 사무소장은 그를 보고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사무소장 얼굴은 검은 그림자가 어렸고 초조한 모습이 뚜렸했다. 그는 "어젯밤에도 대피했었다는데, 괜찮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현장소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어눌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어젯밤은 만약을 위해서 대피시켰고, 밤세워 지지대를 보강해서 문제 없습니다. 지금 침하된 곳은 여기 한 곳뿐입니다. 비만 그치면 괜찮습니다." 
그는 누나의 건물 일 층으로 들어갔다.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파란 번갯불이 순간적으로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는 사라진다. 일 층 세입자가 반갑게 맞았다. 그가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입을 열었다. "어제 저녁 열한 시에, 막 문을 닫으려는데 현장사무소 직원들이 와서 대피하라고해, 주민들 모두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잤습니다. 옆 건물 사람들도 모두 나와서 초등학교로 갔어요. 현장소장이 대피한 사람들에게 아침식사를 푸짐히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열 시쯤에 초등학교 강당에서 대피한 주민들과 현장소장, 동장, 파출소장이 참석해서 회의를 했어요. 현장소장은 절대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받침목 몇 개가 불어져 만약을 위해 대피를 시켰대나요. 곁에 있던 동장도 염려 말라고 했습니다. 파출소장도 아무 이상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피한 주민들과 함께 현장에 내려가봤지요. 생각보다 안전하게 잘 해놓았대요. 그리고 대접도 잘해주었습니다. 지금 동장하고 파출소장은 옆건물의 다방에 있어요." 
그는 건물 이 층으로 올라가다가 벽의 갈라진 틈에서 물이 누수되는 것을 봤다. 바닦이 흥건하게 젖어 있다. 틈이 많이 벌어진 곳은 정말로 하늘이 보였다. 그는 옥상에 올라갔다. 우산을 폈다. 비를 많이 맞아 한기가 느껴졌다. 비는 여전히 퍼부었다. 모처럼 옥상의 물탱크가 빗물에 씻겨 깨끗하다. 그는 하늘을 바라봤다. 먹구름이 남쪽으로부터 서서히 걷힐 기미가 보인다. 그 때, 요란히 천둥이 친다. 그는 순간 몸을 움추렸다가 일어섰다. 그런데 한쪽 다리가 약간 짧은 것처럼 반듯이 서지질 않았다. 몸이 자꾸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 그는 다시 한번 살펴봤다. 빗줄기가 얼굴을 때리고 있다. "우르릉 쾅" 또한번 천둥이 모든 것을 삼킬 듯 쳤다. 몸이 도로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자세히 살펴봤다. 분명히 건물이 지하철 공사장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그는 재빨리 내려가, 사 층으로가서 여러번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다. 출근한 것이 틀림없다. 그는 헐떡이며 삼 층으로 갔다. 원장은 아이들의 그림을 지도하고 있다. 다행히 원생들은 적었다. 그는 원장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말했다. "건물이 기울고 있어요. 아이들을 대피시키세요. 아이들이 놀라면 질서가 없으므로 그냥 내려가라고 하세요." 원장은 매우 놀랐다. 그러나 침착하게 아이들을 내려보냈다. 일찍 집에가는 아이들은 좋아라고 소리쳤다. 우르릉거리며 천지를 진동하는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어디에서 폭격을 하는 것 같다. 그는 아이들이 완전히 내려간 것을 보고 이 층으로 갔다. 이 층의 피아노 학원에도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언젠가, 불경기라서 아이들이 줄어 월세가 늦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는 여자원장에게 대피하라고 말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번갯불이 아이들 얼굴에 꽃잎처럼 비춰졌다가 사라졌다. 하늘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원장은 아이들을 내려보내고 올라와서 피아노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다. 아직 할부금도 다 못줬다고 말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내려갔던 아이 하나가 우산을 놓고 갔다고 다시 올라왔다. 원장은 아이의 우산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원장에게, 지금 그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니 빨리 내려가자고 말했다. 그는 피아노 원장과 함께 일 층으로 갔다. 
일 층의 주방용품점에 이 건물의 세입자가 모였다. 밖에 비는 여전히 무엇이라도 무너트릴 듯내렸다. 번갯불은 더욱 요란하다. 하늘에서 파란 칼로 지상의 어느 곳을 자르는 듯하다. 그는 밖을 내다봤다. 지하철 공사를 하며 도로 위에 덥은 철판 아래로, 누나의 건물앞 보도블이 무너져 내려 작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구덩이는 무엇이라도 삼킬 듯 점점 더 입을 크게 벌리고 노려본다. 그리고 그 구덩이로 물밑이 잡혔다. 누런 흙탕물들이 모두 모여 든다. 큰 도랑을 이루어 흘러들어 간다. 곁에는 현장소장이 나와 있다. 소장은 주방용품점을 향해,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다. 세입자들은 모두 울상이다. 그는 세입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서 침하된 곳을 바라봤다. 비는 여전하다. 현장소장은 직원들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다급히 소리쳤다. " 휀스! 휀스! 가져왓!" 그리고 누나의 건물을 가리키며 "빨리, 이 건물 양쪽 보도를 차단햇! 아무도 못다니게 해! 알았지!" 현장소장은 그가 있는 쪽을 향해서 소리쳤다. "접근마세요. 위험합니다!" 소장 얼굴은 사색돼 있다. 현장 부소장과 직원들이 휀스를 쳤다. 
일 층 세입자가 얼굴의 빗물을 손으로 훔치며 말했다. "아침까지 절대 안전하다고 장담한 놈이, 저 현장 소장놈인대요." 일층 세입자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먹이를 노리는 표범같다. 현장소장은 무전기로 어딘가로 계속 통화했다. 동장과 사무장이 우산을 받고 도착했다. 파출소장도 우의를 입고 현장에 왔다. 동장은 손에 든 노트에 무엇인가를 계속 적는다. 파출소장도 무전기로 어디와 통화를 계속했다. 천둥소리와 번갯불과 내리는 비가 조화를 이뤄서 어디 격전장에 선 것 같다. 
순간적으로 누나의 건물 앞 보도가 완전히 꺼졌다. 방죽같이 커다란 입을 벌린 구덩이가 생겨났다. 포효하듯 무엇이라도 삼킬 것 같다. 누나의 건물 기초부분이 드러난다. 분노한 흑탕물들이 구덩이로 몰려든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통행이 막히자 자연스럽게 구경한다. 현장소장이 "어어, 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는 구덩이를 바라봤다. 무엇이라도 끌어들일 듯 흙탕물들이 소용돌이 치며 혀를 날름거린다. 누나의 건물기초부분을 지지하던 흙들이 계속 씻겨내렸다. 치아처럼 드러난 기둥들이 건물의 무개를 이기지 못해 엿가락처럼 휘어진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천둥이 요란하다. 
누나의 건물이 가볍게 도로쪽으로 기울고 있다. 빗속을 헤치고 서서히 넘어지고 있다. 건물이 삼십도 정도 기울자, 옥상의 물탱크가 먼저 공사장의 철판 위에 떨어져 박살난다. 담겼던 물들이 광섬유빛같이 흩어졌다. 다음에 건물전체가 도로를 덥은 철판 위에 넘어진다. 순간, 굉음을 내며 산산조각 났다. 그는 무슨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다. 하늘이 조금 보인다. 누나의 건물이 무너지자, 좌우 양 옆에 건물도 누나의 건물이 있던 쪽으로 약간 기울었다. 
누군가가 저쪽에서 소리쳤다. "현장소장을 잡아라! 현장소장을 잡앗." 누나의 건물 일 층에 세들어살던 주방용품점 남자가 그의 앞에 있던 현장 부소장을 발로 차며 붙들었다.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현장소장은 이미 달아났다. 옆 건물에서 몰려온 사람들 부소장의 두팔을 뒤로 묶었다. 그리고 도로 가운데로 끌고가서 꿇어 앉혔다. 부소장의 눈두덩은 계란을 하나 붙여놓은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 요란했던 비는 완전히 그쳤다.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청명하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오늘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놈들은 모두 잡아라! 모두 잡아!" 어젯밤에 대피하느라 밤을 세운 사람들이다. 모두들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누나의 옆에 건물 오 층은 악세사리 수공업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종업원들의 기숙사를 겸하고 있었다. 종업원들도 밤을 꼬박 세웠을 것이다. 젊은 남자 둘이서 동장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부소장 옆으로 끌고와서는 또 줄로 묶었다. 오십 대로 보이는 동장은 놀라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세입자들은 우황든 황소처럼 설치고 다녔다. 모두들 불먹은 사람들 같다. 
그때였다. "탕" "탕"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얀 연기가 화약냄새와 함께 허공에 흩어졌다.파출소장이 권총을 오른손 높이 들고 결박된 동장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순간, 모였던 사람들이 놀라 조용해졌다. 모두들 주춤거렸다. 그때, 악세사리공장 작업복을 입은 청년 하나가 소리쳤다. "저 파출소장 새끼를 잡아라! 저 새끼도 아침에 그 자리에 있었다! 저씹새끼도 잡아라! 저새끼도 아까 피싯거리며 괜찮을 것이라고 한 놈이다." 잠을 못잔 탓인지 젊은이들의 눈은 살기가 어렸다. 누구라도 대들기만 하면 죽일 것 같다. 작업복차림의 젊은이들 몇이 파출소장을 둘러쌓다. 소장은 권총을 힘없이 빼앗겼다. 젊은이 하나가  빼앗은 권총을 침하되어 생긴 구덩이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소장도 끌고와 동장옆에 앉히고는 줄로 묶었다. 청년들 몇이 결박된 이들에게 다가와 "야! 이씨발놈덜아, 이게 네덜 말데로 별일없는 거냐."라고 말하며 파출소장, 동장, 현장부소장들의 빰을 한 대씩 갈기며 무너진 건물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뺨을 맞은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결박된 사람들은 옷이 거의 �겨졌다. 
언제 왔는지 누나 건물 사 층에 세들어 살던 여자가 와서 그의 곁에 서 있다. 그녀도 잠을 못잤는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으며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누나 건물의 다른 세입자들도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그도 순간적으로 위기의식을 느꼈다. 보도의 동쪽에서, 발을 구르며 방패를 앞세운 전경들이 밀물처럼 현장으로 다가오고 있다. 발을 구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다.
그는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와 지하철역으로 뛰어갔다. 누군가가 뒤에서 잡으러 오는 것 같다. 오늘 따라 가까운 거리도 멀리만 느껴진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긴계단을 올라갔다. 그 때 지하철로 이송된 진압복차림의 전경들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끈이라도 잡은 듯이 위안이 되었다. 그들을 보는 순가 너무도 편안했다. 
집에 돌아왔다. 그는 어디라도 멀리 여행을 한 것 같다. 몇 십년이 흐른 것 같다. 다소 마음이 놓인다 그는 욕실에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시원한 물살이 퍼진다. 모처럼 몸과 마음이 시원했다. 그때였다. 
찌르릉. 찌르르릉. .......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젖은 몸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누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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