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살을 바라보며

윤여설 2007. 9. 13. 14:14

 

 

 

 

 

 

 

 

 

 

 

 

 

  요즘들어서 자살이 늘어난다. 이 작은 나라에서 하루에 30여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OECD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며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사실상 자살이 세계 1위인 셈이다. 자살이 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대 후반의 IMF시대 때부터이다. 그 시절엔, 경제사정 탓에 중소기업의 젊은 사장들과 실직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가족을 동반한 주부의 자살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노인들의 자살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소외와 외로움을 참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엔 수사기관에 조사만 받고 오면 한강에 투신하는 지도급 인사들이 있었다. 처음 당해보는 수모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택한 행위와 사회 시스템의 결함이 이루어낸 합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 원로인 유명인사가 노인성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한강에 투신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인터넷자살 사이트에서 만나 동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런 일들은  삶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급증하는 청소년 자살은 또 어찌된 일인가?

   스스로 인터넷에만 몰두하는 폐쇄성과 e-스포츠란 미명아래 컴퓨터의 잔혹한 오락게임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 정보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부족이 가장 큰 문제이다. 내 가족이 나를 무엇보다 소중히 사랑하는 줄을 알면 그렇게 즉흥적으로 죽음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자식과의 끝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인생은 예행연습이 없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다시 올 수 없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동안 그렇게 편안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분명!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땐 지금처럼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았을 뿐이다. 인생은 공평하고 시간도 평등하다. 고통스러우면 나만 고통스런 것이 아니며 남도 고통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또한 남들은 지금의 나보다 더 고통스러우나 참고 견디어낼 뿐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야 고통을 당하고 있는 본인만 이해할 수 있고 오죽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는가라고 반문하겠지만, 의외로 남들이 보기에는 단순하고 평범한 일들을 스스로 심각하게 생각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자살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고 한다. 어쩌면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을 가장 악용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적으로는 자살이 좋아서 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책을 찾다가 어려워지자 최후로 택한 마지막의 선택의 길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살을 이미 결심한 그 상태가 정신병리학적으로는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적이라는 것이다. 한번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친 사람들은 또 다시 자살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잠시 정신의학적으로 살펴보면 순간적인 자살 충동은 누구나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런 충동을 느끼다가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 가족관계와 도덕적인 문제 등을 결부시켜 곧 잊고 만다. 그러나 자살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우울증 환자라고 한다. 본인이 환자임을 자각하는 경우도 있고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 뇌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이 스트레스나 열등의식과 그로인한 좌절, 불안 등으로 매우 피로해 있어서 제 역할을 못할 때, 억제할 수 없는 자살충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미 어떤 상담이나 충고로는 해결할 수가 없고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어 치료가 비교적 매우 쉽다고 한다.

 

   자살은 완전한 착각이요, 책임 방기이고 이기적인 행위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걸어볼 만한 일은 있어도 생명을 던질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또한 한 번 죽고 나면, 죽음은 당사자와는 관계가 없다. 산 사람의 몫이다. 그 점을 알고 젊은 주부들이 어린 자녀들을 동반하고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큰 범죄이다. 사람은 모태에 착상하는 순간부터 모든 생사의 권리는 신의 뜻에 달려 있다. 자녀들은 내 살의 일부분이 아니다. 비록 나의 태반에서 나의 보호를 받으며 열 달 동안 자랐지만 그 아이는 내가 아니다. 하나의 고유한 인격체인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여!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죽음보다는 낫고 위대하다.

   삶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아름다운 권리이다. 어떤 조건이라도 살아 있는 것보다 더한 축복은 없다. 물론 당신이 어떻게 나를 이해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당신보다도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 다만, 그들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견디고 인내할 뿐이다.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고 사회도 있다. 그리고 사람은 어떠한 경우라도 희망이 있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도 맑은 샘은 솟아나고 폭풍이 지난 뒤에도 날씨는 맑아진다. 그냥 참아보자! 기다려보자! 분명히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본인은 물론이요, 주변의 가족에까지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안겨줄 뿐이다. (2007.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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