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개량한복

윤여설 2007. 9. 8. 00:54

 

 
 
 
 

  개량한복을 입고 아파트 정원을 거닌다. 아이들이 다가와 놀려대듯 물어본다. 아저씨! 도인이세요? 초등학교 고학년정도의 아이들이다. 당찬 모습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이 옷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 옷이라고……. 그러나 그 여자 아이는 다른 사람들은 입지 않는데, 명절도 아닌데 아저씨만 그 옷을 입고 다니느냐고 반문을 한다. 함께 있던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말을 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조롱거리만 될 것 같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성인이 되어 최초로 한복을 입은 것은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8살 때의 여름이며 전통적인 한복을 입었다. 그 때만 해도 도심거리에 한복을 입은 대학생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요즘은 젊은 청년들은 거의가 한복을 입지 않는다. 당시 내가 한복을 입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입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유림이었던 조부께서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으셨고, 또한 대종가집의 종부로 시집을 오셨던 어머님께서 흰색 한복을 즐겨 입으셨다. 어머님은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낭자머리를 하셨다. 누이들이 얼마나 불편 하느냐며 커트나 파마를 권했지만 외려 핀잔만 들었다. 지금도 청상의 어머님이 대청마루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비녀를 입에 물고 낭자머리를 양손으로 곱게 뒤로 넘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양장이 일상복이 된 지도 오래된 세상이이다. 나도 회사에 출근할 때만 한복을 입지 않는다. 그저 지나친 남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그리고 너무 튄다는 인상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 외엔 늘 한복을 입고 산다. 겨울엔 두꺼운 개량한복을 입는다. 솜을 넣고 누벼서, 입으면 매우 따뜻하고 포근하다. 벨트를 매지 않으므로 몸이 아주 자유롭다. 또한 봄가을엔, 황토색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다. 우선 흙색이라서 입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 같고 안정감이 든다. 그리고 여름엔 반팔에 반바지 형을 실내에서만 입는다. 실내복 겸 잠옷이다.

 

  개량한복은 한복의 원래 모습이 많이 변질된 옷이지만 한복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진보된 한복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초등생 딸아이의 하교시간에 교문에 기다리면 내가 보기도 전에 아이는 용케도 찾아온다. 너 어떻게 찾았니? 물으면 아빠 같은 옷 입은 사람이 아빠 말고 어디에 있어? 하고 되물으며 웃는다.

 

  그렇다. 내가 즐겨 입는 옷은 한복이다. 면면히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옷인 한복!

  가끔 이 옷을 입고 공공기관에 가면 의외로 겸손한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정중하게 대해주는 편이다. 요즘 한복을 입는 경우는 회갑, 칠순 등의 가족행사라든지, 혹은 주로 전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한의사라든지, 국악인 역술인 등이다. 작가들도 가끔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매스컴에서 눈에 띈다. 또한 90년대 초에 어느 신문 기사에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개량한복을 입고 출근하는 교사가 있었다. 그 교사를 예의주시하던 학교는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을 통해서, 한복은 정서상 좋지 않으니 정장차림으로 출근하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당시, 운동권 인사들이 한복을 자주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까지도 권위주의가 팽배해 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옷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개량한복을 입고 생활하면 잠옷처럼 편하다. 상의도 남방이나 T셔츠 못지않게 편리하고 간편하다. 그런데 일상복에서 외면당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복을 입으면 어색하고 세련된 느낌이 들지 않아서 일 것이다. 전통적인 한복은 정말로 매우 불편했다. 소매깃이 넓고 옷고름을 매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개량한복마저 일상에서 거부당하는 것은 토종이 귀화종에게 완전히 밀려난 꼴이 된 것이다. 올 여름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기가 작년보다 더욱 어렵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사동거리에서나 가끔 만나볼 뿐이다.

 

  꼭 한복을 입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복을 입으면 우선 내 마음이 달라진다. 예전에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양복을 입었을 때처럼 진중한 느낌이 든다. 이제 서양인들보다도 한국인들이 더욱 서구식 옷에 세련된 의상들이다. 패션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보다도 서울사람들의 의복이 더 화려하고 세련됐다고 한다. 물론 양복이 국제 감각에 맞고 편리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최소한 명절만이라도 우리 모두 한복을 입어보면 어떨까? 언젠가, 우체국 직원들이 한복을 입고 근무한 적이 있다. 보기에 매우 안정적이었고 정서적으로 풍부했다. 옛 것을 알고 지금 것을 알자(溫故知新)란 말이 있다. 이제 실용위주로 사는 것도 좋지만 나를 자각해보자.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복을 입고 이번 한가위에도 고향에 갈 예정이다.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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