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및 유적답사

익산 왕궁탑(국보 제289호)

윤여설 2006. 9. 24. 15:11

 

 

 

 

        탑의 미적감각이 수려하며  매우 늡늡하다.

 

 

 

저 석탑은 궁궐터 안에 자리하고 있다.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모양이 유사한 전형적인 백제의 석탑이다 .1965년 해체 복원 때에 1층 옥개석과 기단부에서 사리장엄구 및 금강경판(국보 제123호)이 발견 되었다. 지금 전주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지금 계속해서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백제의 무왕(600~641)은 이 곳 익산에서 출생했다.  그는 몰락한 왕족이었다고 한다.  귀족들의 추대에 의하여 왕이 되었으며 그의 정치적인 입지는 취약했다. 그(서동)는 귀족들의 계략에 의해 신라의 선화공주와 정략적인 결혼을 했다. 그 유명한 서동요가 무왕(武王)이 왕이 되기 전의 서동을 뜻한다.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했던 무왕은 왕권강화를 위한 프로젝트로 신라 정벌을 택한다. 그 일환으로 신라와 가까운 이곳 익산에 왕궁을 짓고 천도를 했다고 한다. 또한 이 곳에서 서쪽으로 약 2키로미터 거리의 가까운 곳에 동양 최대규모의 미륵사를 창건하다. 미륵신앙 즉, 메시아의 힘을 빌어 백제부흥을 꾀하려 했다. 그러나 무리한 사찰건립으로 인한 국력소모로 백제는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는다.

 

   어떤 연유에선지 모르나 무왕은 이곳에서 죽었다. 효심이 강한 그의 아들 의자왕(義慈王)은 이 왕궁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익산 쌍능(무왕과  선화공주묘)에 부왕을 안장하고 다시 부여로 간다.

 

   이 왕궁탑은 왕궁안의 내불당에 서 있던 탑이라는 설과, 무왕이 사망 후에 의자왕이 부여로 돌아가면서 궁궐을 폐하고 부왕(武王)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자리에 절을 건립하며 탑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다만 일본서기에 잘 나와 있다. KBS발행의 역사스페셜1<효행출판사200년7월>104쪽에 의하면 후자쪽이 맞은 것 같다. (2006년 9월 23일 답사)

 

 

 

 

 

                 나의  홈페이지

    클릭☞  www.poet.or.kr/youn


 

'유물 및 유적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저울  (0) 2006.10.07
동복환해장성(제주)  (0) 2006.10.01
타자기  (0) 2006.09.18
파사성 답사  (0) 2006.09.15
남포등  (0) 2006.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