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메시지 없고 요금 절약…휴대전화 성격 급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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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가 뭔지도 모르고요.” 구식 모토롤라 삐삐를 아직 쓰는
김기홍(25·공무원)씨 말이다. 그는 인터넷 동호회 ‘삐사모(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 테크놀러지는 최첨단 기기를 금세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삐삐(무선호출기)가 아주 좋은 예다. 97년
1400만명에 달하던 삐삐 가입자는 현재 12만명. 백화제방(百花齊放)하던
서비스 업체도 거의 사라져 이제 수도권 외엔 서비스도 안되고 1년
전부터 지하철에서도 수신이 안된다. 그래도 ‘삐사모’에는 회원이
780명이나 모여있다. 99년 8월 ‘삐폰조(삐삐가 폰보다 좋아)’였던
모임은 2001년 1월 ‘삐사모’로 바뀌었다.
지난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 한 맥주집에서 열린 ‘삐사모’ 정기 모임이
있었다. 모임 대표 강동욱(27·경기 경화여고 영어교사)씨는 수시로
울리는 삐삐를 받고, 카운터에 달려가 “전화 한 통만…”하며 길눈
어두운 회원들에게 위치를 가르쳐줬다. 상대방 삐삐에 음성을 남기고,
받는 이는 또 공중전화에서 이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손영훈(22·공익근무요원)씨는 휴대전화를 3년쯤 쓰다가 없애고 삐삐를
장만했다. “술 마시고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버릇 때문에 한달 요금이
10만원쯤 나왔다”고 했다. “다들 바로바로 통하는데 나만 삐삐를
쓰니까, 마치 영어 쓰는 나라에서 나 혼자 한국어를 쓰는 것 같아요.
삐삐가 통역을 해주는 것 같고요.” 각종 서류 ‘필수입력사항’에
휴대전화번호 칸이 있을 때도 난감하다고 했다.
시인 윤여설은 이렇게 읊었다. “휴대폰이 요란히 춤춘다/ 지금 나를
부르는 자 누굴까/ 기발한 방법으로 옥죄는/ 디지털 사회의 고삐들/
교묘한 감시망들이 두렵다/ 빛과 바람과 별들만 찾는 곳에/ 안온히 며칠
쉬고 싶다”(시 ‘핸드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