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4월 예찬

윤여설 2025. 4. 6. 17:37




4월은 조용히 다가온다.
3월의 끝자락에서 겨우내 잠들었던 것들이 깨어나고, 그제야 사람들은 달력을 들여다보며 본격적인 봄을 실감한다. 화려하지 않아서 아름답고, 서두르지 않아서 깊은 달. 나는 그래서 4월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4월을 "잊혀진 봄"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벚꽃은 어느 해보다 빨리 피고, 졸업과 입학은 이미 지나갔으며, 연휴도 없이 무던한 일상만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무던함이야말로, 4월의 품격이다.

4월의 풍경은 절정이 아니라 여정이다.
매화가 진 자리에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진 자리에 연둣빛 이파리가 돋는다. 그 틈에 진달래와 목련이 차례를 다투고, 하늘은 날마다 다른 표정으로 바람을 품는다.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은 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내면이 바뀌는 계절, 그것이 4월이다.


어느 시인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지만, 나는 거기에 고개를 흔든다.
4월은 잔잔한 회복의 달이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이 천천히 풀리고, 미뤄두었던 약속과 다짐들을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시간이다. 거리에는 분주함이 있지만 조급함은 없고, 사람들 사이엔 생기가 있으나 떠들썩함은 없다. 그렇게 4월은 삶을 정리하고, 방향을 바로잡는 데 가장 알맞은 시기다.

또한 4월은 “현실”이 시작되는 달이다.
1월의 계획, 2월의 망설임, 3월의 시동을 지나, 4월이 되면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다. 해는 길어지고, 날씨는 분명해지며, 마음속 긴장도 서서히 자리를 잡는다.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이들에게도, 4월은 더 이상 시작이 아닌 ‘진행 중’인 시간이다.
그 사실이 사람을 한결 단단하게 만든다.

나에게도 4월은 언제나 “문턱의 달”로 기억된다.
봄이 완전히 성숙하기 전, 여름이 숨 고르기를 시작하기 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잠시 멈춰 서는 달.
그 멈춤 속에서 나는 새로운 글을 쓰고, 책장을 넘기며, 한 해의 무늬를 그려보게 된다. 땅이 스스로를 비옥하게 하듯, 4월은 나를 다시 침묵 속으로 끌고 들어가 묵상하게 한다.
이런 달이 일 년에 한 번 있다는 건, 삶의 복이 아닐까.


현관 앞 화분에 심은 튤립이 꽃대를 올리는 것도, 서가에서 오래 잊혔던 시집을 꺼내 드는 것도 모두 4월의 일이다.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쓸쓸하게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도, 봄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보며 잠시 눈을 감는 것도 4월이 있기에 가능한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4월을 예찬한다.
이 계절은 크지 않으나 깊고, 빠르지 않으나 정확하며, 조용하지만 결코 미미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관계, 사람과 감정이 가장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시간.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진짜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4월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과 바다, 그 너머의 사랑  (0) 2025.04.01
1만보 걷기 100일을 달성하고...!  (1) 2023.09.17
조선3대 여류시인 -이매창의 묘에서  (1) 2023.04.24
반란하는 봄 -윤여설  (0) 2023.04.09
국역<촌은집>을 읽고  (0) 202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