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00행복주택 건설현장을 바라보며

윤여설 2016. 3. 5. 12:43

                          




                               

00행복주택 건설현장을 바라보며

   

 

                                                                                                                                                    - 윤여설 시인

 

 

 

   서울 근교의 00행복주택 건설현장을 지나가다 보면, 저 곳은 분명 아름답고 부드러운 동산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벌건 맨살을 드러내며 파헤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한창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지금 그곳에서 쫓겨난 생명체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런 개발들이 지금처럼 에코 디지털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아직도 개발독재식의 광폭한 건설현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간이 본인도 동물이면서 지능이 높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생명체도 살아야 할 지구 표면의 50%를 파괴했다. 우리나라도 70년대초만 해도 산의 점유율이 85%가 넘었으나,  지금은 65%이하로 낮아졌다. 유럽국가에선 마을의 골목길을 넓히는데도 마을주민들이 총회를 열어 동의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몇 백 년 간의 지형변경 없이도 환경이 잘 유지 발전되고 있다. 프랑스의 몽마르트언덕이 대표적인 예이다.

   황석영의 소설 <삼포가는 길>엔 귀향하는 노동자가 고향에 가까이 갈 무렵, 무모한 개발로 마을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안다. 그 노동자는 갈 길을 잃고 만다.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70년대가 배경으로 추정되는 그 당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쓸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어느 시기부터 저렇게 산을 짓뭉개버리는 환경파괴형 건설을 시작됐을까?


   아마도 70년대 일기 시작한 새마을운동이 그 시발점인 것 같다. 그당시에 마을 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앤다는 명분 아래, 도로를 내거나 확장하기 위해 걸림거리가 되면 마을 앞이나 도로변에 있는 천연기념물급의 당산나무도 자르거나 불도저로 밀어 버렸다. 물론 마을을 변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마을 진입로가 절실했던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꼭 그 방법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또한 그 정감이 넘치고 한폭의 동양화같던 초가집은 이제 민속촌에나 가야만날 수가 있다. 분명히 우리의 전통가옥이며 지붕엔 둥근박이 오르고 보름달이 뜨고 지던 초가였는데도 말이다.

   이 때부터 분명 공장이 생기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우리의 소득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 잘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부터 우리는 배는 불러졌고 등은 따뜻해졌는지는 모르나 마음은 더욱 가난해졌고 사회는 병들기 시작했다. 모든 가치는 돈이 최고가 됐고 오로지 일등만이 최고가 됐다. 전통이건 환경이건 모든 것이 후순위로 밀렸다. 거리의 간판이 국적불명의 외래어로 변한지도 이미 오래됐고, 주거형태는 아파트로 변했고 대형 단지일수록 인기가 좋다. 모든 건물은 커야하고 더욱 높아야 최고가 된다. 경제적 가치가 있다면, 심지어 전투비행장 근처에도 555m 초대형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나라가 됐다. 비행장근처의 고층 건물로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무일하다고 한다.

   지금 어느 정도 잘 살지는 모르나,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최저출산 그리고 거의 세계 최고의 이혼율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빨리빨리하면 된다는 말에서 벗어나 천천히 내일을 바라보며 건설을 했으면 한다.

     요즘 어느 시골에나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가 과연 농촌에 필요할까?  아니, 지금 바라보는 건설현장처럼 산을 파뭉개가며 꼭 공동주택건설이 필요한가?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저 서울 근교에 괴물처럼 올라가는 아파트는 도시콤플렉스의 현상으로 설명하고 싶다. 물론 아파트의 편리성을 모르는 것 아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단독주택으로도 얼마든지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지역이다. 저 아파트의 건설이 도시의 주거타운이고 선거공약일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론 녹색환경을 보존해서 얻는 가치보다 못할 것이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때가 됐다. 그동안 그린벨트를 선정해서 보존하는 듯하더니, 다시 이상해져만 가는 것 같다. 더 많은 녹지를 선정해서 국가에서 모두 매입하는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진국이다.

   이 지구의 표면 즉, 이 땅은 우리 사람만 살아야 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은 생태계에게서 의식주와 산소, 그리고 토양의 비옥함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 이제 도시에서는 동식물들이 살아진지 오래다. 지금처럼 생물종이 사라지고 서식환경이 파괴되면 결국 모든 동물들이 사라지고, 마지막엔 사람도 적응치 못할 것이다.

다른 생명체들이나 사람이나 살아야 할 가치는 같다. 그들도 오직 한번 뿐인 생명일 뿐이다. 내 목숨이 소중하면 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그들이 살 수가 없으면 사람도 살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도로에 고라니가 나타났으면 고라니가 살아야 할 곳을 인간이 침입했을 뿐이다. 신은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복지사회로 볼 것이다. 마구 파헤쳐서 건설하는 건, 발전이 아니라 퇴보하는 것이다.

   생태계의 다양성이 인간들의 복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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