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위 박용진
방공관제사령부 31전대
군복무 30년을 맞이하여
지나간 나날들이 눈에 아른거리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한다는 마음에 두려움도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대전블루스를 제법 애절하게 부르며 눈물로 동기들과 작별을 고하고 서대전발 서정리행 열차에 오르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때가 1983년 2월 1일이니 시간이 제법 흘러 30년이나 되었고,
그 중 23년은 여기 31전대(MCRC)에서 근무하였다.
이제는 새치 수준을 넘어버린 머리카락이 지나간 세월을 말하고, 자식들 또래의 동료와 호흡하며 그들에게 조금 더 열심히 잘 하자고 독려하는 내 모습을 보니 내가 제법 군 생활을 하기는 한 모양이다.
31중앙방공통제전대 창설 30주년을 맞이하여
31전대가 창설된 1983년 그해 2월에 하사로 임관하여 같이 군생활 30주년을 맞고 있다.
돌이켜보면 기나긴 시간인 것이 분명한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작전실에 들어오면 항상 “분”, “초”를 다투는 긴박감 넘치는 근무를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러서 벌써 30년이 되었다. 세월 무상이다.
인간사 나이로는 30년은 청년이라 하지만,
24시간 전력 질주한 31전대에서는 아마도 서너 배는 더한 장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리라 생각한다.
항공통제사란?
우리부대는 공군 최일선, 아니 전군 최일선의 창끝 감시부대이다.
우리는 상황실이 아닌 작전실에서 근무하는 전투작전요원들이다.
임무 특성상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총보다 더한 무기를 운용하며 현장에서 전투작전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다.
그것도 24시간 그리고 1분 1초도 쉬지 않고 잠들지 않는.
항공통제사는 공중감시, 항적식별, 요격통제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을 총칭한다.
공중감시수는 레이더로 탐지된 자료를 감시 분석하여 비행 물체를 선별하고 항적 유무를 판단하며
항적을 설정 추적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공중감시수가 자료를 감시 분석하여 항적 여부를 판단하는 시간은 1분 이내이다.
그러므로 공중감시수는 고도의 집중력과 신속 정확한 판단력을 요구한다.
방공작전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식별수는 공중감시수가 포착한 항적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것인지 식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식별결과 우군기가 아닌 경우에는 미식별기로 규정하고 신속한 식별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식별을 위해서 혹은 영공침범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전투기의 출격이 필요하다.
이때 우군전투기를 신속하게 유도, 통제하는 사람이 항공통제사이다.
우리 부대는 중국, 북한 귀순기 작전과 피랍항공기 대응 작전 등 수많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대한민국 영공을 안전하고 완벽하게 지킨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24시간 잠들지 않는 눈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밤 열두시, 혼자 있는 두려움에 눈물짓던 아내를 다독이며 출근하던 일이, 새벽 한시에
퇴근하며 동료들과 어울려 마시던 스윙(Swing)주 한잔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24시간 교대근무지만 그래도 우리는 수많은 동료와 함께 눈물과 환희, 고뇌, 그리고 탄성이 교차했던 30년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선에 있는 작전요원이다.
모든 삶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전투작전요원은 그 순간을 놓치면 다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자가 그 순간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수많은 실수 속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작전에 임하는 그 시간만은 실수가 없어야 한다.
한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아찔했던 경험도 간혹 있다.
지금이야 이야기 하면 그냥 웃지만 신혼 초에는 밤12시에 외딴집 단칸방에서 변변치 못한
잠금장치(가느다란 철사를 구부려 걸어 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를 믿고 홀로 밤을 새울 생각에 불안해하던 아내를 두고 출근하면서 못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기억도 있고,
교대근무 특성상 당연한 야간근무와 휴일근무로 아이들과 같이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
군인이 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명절이 있었는지도 별로 기억이 없다.
명절에도 대부분 근무 중이어서 가족들만 고향으로 보냈었다.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 이지만 아이들이 “우리만 왜 아빠가 안 오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들딸 셋이나 두었고 가족 모두 건강하니 내가 한 일에 비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금년이 방공관제사령부 창설 50주년, 31중앙방공통제전대 창설
30주년이다.
다시 한번 자축하며 앞으로 30년 아니 더 먼 훗날까지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 하늘을 지키는 잠들지 않는 눈”으로 영원할 것을 믿는다.
무르익은 원숙한 장년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피어오르는 열정으로 조국 영공방위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는 각오아래 오늘도 힘차게 역동하는 31전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후배들이여, 자랑스러워하라! 그대가 31전대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