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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0년만에 돌아온 곤여만국전도

윤여설 2012. 5. 27. 22:23

 

 

 

 

 

봉선사로 돌아온 곤여만국전도

 

지난 3월 27일 화재로 소실된 지 62년 만에 사라졌던 곤여만국전도가 복원 작업을 마치고 제25교구 본사 봉선사로 돌아왔습니다.

곤여만국전도는 1602년의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는 조선에서도 베껴 그려지거나, 목판인쇄 된 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숙종 34년(1708) 관상감에서 제작한 곤여만국전도입니다. 관상감에서는 이때 천문도와 함께 그려 건상도라 하여 짝을 이루었는데 경기도 봉선사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 한국전쟁 때 없어진 것이 바로 곤여만국전도입니다.

 봉선사 청풍루에서 조실 월운스님, 회주 밀운스님, 주지 정수스님, 김문수 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곤여만국전도 기증식'을 갖고 8폭 병풍으로 제작된 곤여만국도를 봉선사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곤여만국도를 기증받은 봉선사 주지 정수스님이 불자들과 일반인들을 위해 지도를 개방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아갔을 때에는 매일 개방하는 것이 아닌 봉선사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만 개방한다고 하여 아쉬움의 발걸음을 재촉했어야 합니다. 지도의 복원과 기증은 중국 중심적 세계관의 틀을 깬 역사적 유물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뜻깊은 곤여만국전도는 봉선사의 잃어버린 왕실유물의 회복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되돌아온 곤여만국전도와 조선 시대 고지도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원된 곤여만국전도를 바라보고 있는 월 운 큰 스님 (출처: 경기일보)

 

 

 

조선 시대 고지도의 발달

 

우리나라 현전하는 고지도는 대부분 국가 차원에서 통치·군사적인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조선 후기는 국가 차원 이외에도 일반 행정관료나 지식인의 필요에서 지도가 제작되었고 조상숭배와 풍수지리 사상이 결합한 묘도(墓圖)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도가 제작되었고 지도의 기능 외에 회화의 한 장르를 형성하기도 하였습니다.

 

 

1.조선 시대 이전의 지도

 

고구려 영류왕 11년(628)에 지도를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벽화에 그려진 요동성 내외 성시(城市)의 구조와 시설, 도로, 하천 등을 통해서 그 시대의 지도표현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우리나라 지도는 현물로 전해지는 것은 없으나 명대에 출판된 나홍선(羅洪先)의 광여도(廣輿圖) 2면에 걸쳐서 단독으로 들어 있는 조선도(朝鮮圖)를 통해서 그 발달의 정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광여도(廣輿圖) 는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좌도·경상우도·평안도·황해도·강원도·함경도 등의 도 지도와 군현 지도, 주요 군사 요충지의 지도가 실려 있는 것입니다.

 

 고려 시대에 윤보(尹譜)가 제작한 것으로 전하는 인도와 서역제국을 중심으로 한 불교계 세계지도인 오천축국도(五天竺國圖)는 윤보의 묘지에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에 따라 오천축국도(五天竺國圖)를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있지만, 현존하지 않으므로 그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천축국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서역 및 인도의 여러 나라가 중심이 되어 있고 이 밖에 중국(晨旦國 : 大唐國)이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륙 주변의 바닷 속에 스리랑카(執師子國)와 몇몇 도서가 있습니다. 또한, 지도의 오른편 상단부에 일본을 나타내는 부분(九國 : 四國)의 기록이 있습니다.

천축국도에는 일본이 빠져 있는 대신 고려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색입니다. 이 지도는 중국을 비롯하여 서역과 인도에 걸쳐 그때까지 알려진 세계를 총망라한 세계지도로서, 종래의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조선시대의 세계지도

 

조선 전기의 세계지도는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1550년대에 작성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混一歷代國都疆理地圖), 화동고지도(華東古地圖) 등이 있습니다.

 

▲ 혼일강일역대국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혼일강일역대국지도는 1402년(태종 2)에 좌정승 김사형(金士衡), 우정승 이무(李茂)와 이회(李薈)가 만든 세계지도로 채색, 필사본이 된 세로 171cm, 가로 164cm의 대형지도입니다.

중국의 옛 세계지도는 대부분 지도가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세하게 그리지 않거나 빠뜨리고 있는 것이 상례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부분을 이회가 보완하여 새로 편집한 것입니다.

현전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이고 당시로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는 이회의 팔도지도도 이 지도의 우리나라 부분을 통해서 그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의 원본은 전하여지는 것이 없고, 사본이 일본 경도에 있는 류코쿠대학(龍谷大學) 도서관에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混一歷代國都疆理地圖)는 조선 시대 태종 때 명나라에서 가져온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청준의 역대 제왕 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疆理圖)를 합성하고, 여기에 박돈지에 의하여 유입된 일본 자료를 보완한 후, 이회가 그린 조선 팔도 지도(朝鮮八道地圖)를 첨가하여 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과 그리고 한국이 그다음이라는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의 의미가 엿보이며, 멀리 아프리카와 유럽도 표현된 것으로 보아 당시의 세계관의 범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화동고지도(華東古地圖)

 

 

이 지도는 조선과 중국을 중심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16세기에 등장하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다는 파도 무늬이며 지도의 윤곽은 1402년의 “역대 제왕 혼일 강리도”와 유사하지만 조선 부분은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함경도 지역이 박락이 심하여 군현명을 알아보거나 백두산 지역을 잘 살펴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며, 조선팔도와 중국 각성은 군현명의 바탕색을 달리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지도로서 현전하는 지도가 매우 적으므로, 이 지도는 조선전기 지도의 모습을 보여 주고, 16세기 세계관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서양인의 눈으로 새롭게 해석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서양 예수회 소속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동방 전도를 목적으로 중국에 1582년 도착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서양의 과학지식과 천주교의 교리를 담고 있는 한역 서학서의 간행에 심혈을 기울임과 동시에 세계지도의 제작에도 남다른 노력을 쏟았습니다. (1602년에는 베이징에서 마테오 리치와 가장 친한 중국인 중 한 사람인 이지조(李之藻)가 마테오 리치의 지도를 6폭의 곤여만국전도를 간행하였습니다. 이 지도는 이후 제작되는 곤여만국전도 사본들의 저본으로 활용되기도 하여 곤여만국전도 판본 중에서는 가장 영향력이 컸다고 합니다. 현재는 바티칸 도서관, 일본 쿄오또대학도서관(京都大學圖書館)과 미야기현립도서관 등지에 전하고 있어서 가장 널리 알려졌습니다.

 

▲ 1602년 제작된 마테오 리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조선에서는 1648년 (인조26) 조선력(朝鮮曆)과 서양 역법의 원리를 수용하여 만든 청의 시헌력 사이에 윤달의 설정 등에서 차이가 생기게 되면서부터 서양 역법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1644년 관상감 제조로 있던 김육은 시헌력 채용을 주장하였는데, 김상범(金尙范)과 함께 10년간의 연구를 거듭하여 1653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후인 1705년에는 동지사와 동행한 일관 허원(許遠)이 중국의 흠천관 역관 하군석(何君錫)의 지도를 받아 시헌력 오성법(五星法)을 습득해 돌아왔고, 1708년부터는 조선에서도 시헌력 오성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조정에서도 천문학을 비롯한 서양학문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비록 전통적인 세계인식과 맞지 않지만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를 다시 제작하여 진상하였던 것입니다.

이미 시헌력 채택으로 서양 역법의 우수성이 공인된 상태에서 서양 선교사가 제작한 세계지도가 완전히 무시될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최석정도 지도가 보여주는 세계가 전통적인 세계관과 매우 달라 우활(迂闊)하고 황탄(荒誕)하다고 하면서도 그 자체로서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보고 마땅히 이로써 견문을 넓혀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 조선 시대에 유입된 곤여만국전도 (坤輿萬國全圖)

 

▲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왼쪽 확대부분

 

▲ 곤여만국전도 (坤輿萬國全圖) 오른쪽 확대부분

 

 

조선에 있던 세계지도는 1402년 중국 중심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곤여만국전도는 그 당시의 서양 지리학과 지도학의 축적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는데요, 지도의 주요 내용은 유럽, 아프리카 등의 5대 주를 나타내고 있고, 그림 중에는 850개를 넘는 지명이 있으며, 각지의 민족과 산물에 대해 지리적으로 서술한 것이 보입니다.

또 타원형의 세계지도 바깥에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모습, 아리스토천체구조론에 의한 구중천설, 일월식도, 천지의도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1708년에 관상감에서 바친 곤여만국전도는 숙종임금의 명으로 이국췌와 유우창이 당대 화가 김진여와 함께 그린 것으로 제8폭에는 이 지도의 성립과 제작경위를 말하는 최석정의 명문이 쓰여 있습니다. 현재 이 지도는 조선시대에 제작한 가장 아름다운 세계지도로 휼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문화권의 대표적인 천지관은 천원지방으로, 하늘은 둥근 데 비해 땅은 네모지면서 평평한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서양문명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하게 되는 19세기 말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세계를 인식하는 중화적 세계인식이 유학의 확립과 더불어 지배적인 사고로 이어지면서 세계지도의 제작에도 반영되었습니다.

그러자 17세기 이후 조선에 전래한 다양한 서구식 세계지도들이 모사, 제작되면서 지식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곤여만국전도 역시 당시 조선의 지식인 사회에 세계지리를 인식하는데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직방세계를 천하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서구식 세계지도를 통해 더 넓은 세계를 천하로 인정하게 되었고, 중국 이외에 더 넓은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도 상당한 수준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계지도를 통해 과거 지역 간 문화교류의 일단을 파악하고, 교류를 실행하며, 꿈을 실행할 수 있게 하여준 지도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의 표현으로 주변 문화권과의 상호작용을 형성하고 세계인식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매일이다시피 시골 외할머니댁 주변 넘실대는 파도와 멀리 보이는 수평선, 가끔 지나가는 트럭 소리에 놀라 들키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 속에서 수평선 속에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또 다른 공간과 세계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복원된 곤여만국전도를 통해 역사의 기록을 다시 한번 되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출처

1. 『조선 시대 세계지도와 세계인식』, 오상학 지음, 창비, 2011

2.  『한국 고지도의 발달』, 이찬  http://www.jirilim.com

3. 곤여만국전도 이미지 = http://commons.wikimedi.org/wik/File:Kunyu_Wanguo_Quantu

4. 혼일강일역대국지도, 화동고지도 이미지 = http://terms.naver.com

 

 

 

 

출처 : 문화재청 공식 블로그
글쓴이 : 문화재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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