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및 유적답사

최제. 최혁 효자정문 (향토유적 제7호)

윤여설 2009. 11. 3. 14:41

 

 최제. 최혁 효자정문 (향토유적 제7호)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232번지

 

 효자비의 형식으로 생각하고 답사했는데 뜻밖에도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독특한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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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처럼 효자정문은 행랑체 앞에 세워져 있다.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인 유교는 충(忠)과 효(孝)를 동일시 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국가에 충성하는 것으로 여겼다.

  지금도 부모님께 정성을 다하는 효자,효부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발굴해서 효자비나 효자정문을 세우는 경우는 없다. 그저 표창에 그칠 뿐이다.

  왤까?

 

  효자,효부는 계속해서 발굴해야 한다.

 

 지금 보이는 건물이 행랑체(사랑체)이고 저 건물 뒤로 안체가 있다.

 

한강 이북은 생거장단(生居長湍) 사거파주(死居坡州)요,

한강 이남은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는

풍수(風水)의 속설이 이중환(1690~1752 조선의 실학자)의 저서<택리지>에 나와 있다.

이 곳은 파주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그래서인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시대의 분묘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09년 11월 3일 오전 답사했음)

 

 

 

 

(아래 사진과 해설은 이해를 돕기 위해 양주문화해설사회 카페에서 복사해 왔음)

 

최제. 최혁 효자정문 (향토유적 제7호)

 

소재지  :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241-4

               최제선생님의 9대손인  최면춘 (향토문화연구소 조사위원)

               그리고 최혁선생님의 7대손인  최면춘.

구   전  :   최혁선생님이 모친이 병환이라서 약을구해 집으로 가려하니 비가많이 와서 내를 건널수가 없게되자

               간곡한마음으로 내를 바라보고 있자니   최혁선생의 효심을 하늘에서 알았는지 물이 줄어들어 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약을 모친께올려  건강을되찾았고, 최혁선생이 내를 건너온다음부터 그곳을 수유리라고

               했답니다.         

               (이야기 출처 : 한가락모임 대표 최권홍 <선비의 바른길찾기. 우리역사 바로알기>)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효자정문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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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 맞배지붕에 방풍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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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증  조봉대부동몽교관  최제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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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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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증 조봉대부동몽교관후 추은증 가선대부호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 최혁지문.   효자정문에 마루시설이 되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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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이 건물안에 있어요.( 홍살문과 글씨가 그대로 보존된것은 보호각이 있기 때문이겠죠) 홍살문을  걸쇠를 만들어 들보에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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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기둥아래쪽을 건물 기둥에 걸쇠로 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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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윗쪽에 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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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 쪽으로 최제선생의 합장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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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선생이  40년동안 봉양한 계모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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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혁선생의 합장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