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백석에 와서12

윤여설 2009. 9. 15. 07:33

 

 

 

                                                백석에 와서12

 

 

 

    잠자리에 들면 아파트 창을 두드리는 개구리 울음! 잠시 일어나 문을 열면 뜰에 가득 찰랑대는 달빛. 아, 내가 지금 시골에 살지? 스스로 자문하면서 다시 자리에 든다. 이곳에 와서 가장 행복한 것은 자연과의 대면이다. 풀 한포기 없던 도심의 공간은 얼마나 삭막했던가! 거리에 나서면 졸졸거리는 개천의 물고기와 잉잉대는 벌, 그리고 개미와 나비, 이제 이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마음을 차지한다. 그래! 이 자연을 거부치 말자. 이들은 나와 동일한 생명체다. 어쩌면 조물주의 시각에선 나와 동등할지도 모른다.

 

    이곳에 와서 가장 중요하고 즐거운 것은 자연과의 교감이다. 우선, 이 지역의 자연과 생명체를 디카에 담고 기록하는 일이었다. 개구리 우는 모습도 담고, 개미가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도 담았다. 그들은 절대로 나태치 않았고 책임을 다했다. 그들의 부지런한 모습은 경이스러움을 넘어 존경스럽다면, 자칫 과한 표현일까? 계곡에 들면 천진하게 유영하는 올챙이들과 숲에 들면 사슴벌레가 가슴을 펴고 두 집게를 자랑하는 모습을 디카 동영상에 담았다. 밤에 논에 가면 반딧불이가 손짓하고 개천을 후레쉬로 비춰보면서 버들치들이 평안하게 노는 모습을 담는다.

 

    이 마을에선 창작보다는 디카질을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또한 방금 본 풍경이나 금방 찍은 곤충들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시를 쓰고 퇴고할 때와 동일한 즐거움을 느낄 수 가 있다. 사진은 사실을 담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는 시각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본 이상은 절대로 예술이다. 보는 시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찍을 수가 있고 또한 빛의 밝기와 셔터의 속도에 따라서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연출할 수가 있다.

 

    나는 당분간 창작보다는 디카질에 열중할 것이다. 어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지역의 경이로운 자연을 어느 정도 디카에 담은 후에 이를 자료로 해서 글을 쓰고 싶다. 이 지역은 한북정맥(광주산맥)에 속하고 도봉산을 주봉으로 하는 동으론 호명산(423m) 남으론 한강봉(489m) 북으론 불곡산(449m)이 평풍처럼 둘러 싸여있는 분지지역이다. 따라서 안개가 심하고 습도가 높아 자연의 사계가 어느 지역보다 더욱 뚜렷하게 구분된다.

 

    아직은 고라니가 사람을 보고 달아나고 꽃뱀이 그 특유의 붉은 댕기목을 뽐내며 길을 가로지른다. 산길에선 무리지어 이동하는 멧돼지가 사람을 별로 경계치 않고 비단 앞길잡이가 산길을 안내하는 곳이다. 다만, 서글퍼지는 것은 이 청정지역이 이미 아파트가 상당히 점령했고 저 아름다운 들판도 멀지 않아서 대단위 아파트 군락이 들어선다는 소식이다. 또한 올해엔 제비 한 마리 구경치 못했다. 처마가 있는 초가나 한옥이 없어서 제비가 둥지를 틀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디카를 들고 들로 나간다. 얼마 전 올챙이 티를 벗은 참개구리들은 얼마나 자랐을까? 그들이 나를 보고 놀라 논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 싶다. 또한 불록한 배를 숨긴 벼들의 자란 모습을 살펴보고 싶다. 곧 목이 패고 머리를 숙이며 으젓해져 금빛으로 일렁일 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논둑길을 걷고 싶다.

 

    직장까지의 통근거리가 서울에서보다 1시간 이상 더 길어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얻는 기쁨은 더 길어진 시간의 몇 십 배로도 환산할 수 없는 보상을 받는다. 이 자연의 즐거움에 다시 한 번 기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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