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생물

황금물결치는 보리밭

윤여설 2009. 6. 9. 12:59

 

 

 

  

보리가 누렇게 익어간다.

풍요롭다.

어릴적 추억이 떠오른다.

그 때 동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너무 태양빛이 따가워서 모자와 햇빛가리개를 했다

 

 

 

 

<보리피리>

【시 전문】- 한하운 시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리리.』

                  - [서울신문](1953) -

* 인환 : 사람들이 살고 북적대는 곳.

* 기산하(幾山河) : 많은 산과 들

이런 뜻입니다.

 

필요하시다면 해설도 첨부해드립니다.

【해설】

  1955년 간행된 한하운의 시집 <보리피리>의 표제시. 발표는 1953년 [서울신문]. 서울 신문사 사회부장으로 있던 오소백에게 신문사 안에서 즉석으로 써 준 즉흥시로 알려져 있다.

  자서(自序)에 적힌 “천형(天刑)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오히려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 산천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껴진다”라는 말을 되새기면 이 시가 한층 더 애절하게 와 닿는다.

  이 시를 가리켜 평론가 김윤식(金允植)은,

  “성한 사람이 되려는 희원이 성한 사람에의 적의를 동반하지 않고, 그 단계를 넘어서서 멀리 거리를 두고 바라다 보는 상태에 이 시는 도달되어 있다. 또한 이 시는 한국적 서정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담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한하운의 서정적 가락은 한국시사에 길이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      (‘한하운의 문학과 생애’-새빛 75년 3월호)


  한하운의 시 중에서도 <보리피리>는 일반에 가장 널리 알려진 시편이다. 다른 뛰어난 시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노래 때문이었다. 1957년 작곡가 조념(趙念)씨(74)가 당시 중앙방송라디오(현재 KBS)의 청탁으로 <금주의 노래>라는 프로그램에 이 곡을 발표, 대단한 호응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서정적인 토속 정서가 깃들인 시편을 가곡으로 만든 예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곡 자체도 <보리피리>의 정서를 잘 반영하며 신명 속에서 서러움을 불러내는 명곡이었던 것이다.

  이 시가 [서울신문]에 발표됨으로써 한하운에게 '보리피리의 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으며 그의 제2시집 <보리피리>의 표제(表題)가 되었다.

  이 시는 나병(癩病)에 걸려 걸시과 명시 속에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던 시인이 보리피리를 불며 인간적 고독, 향수, 천형(天刑)과도 같은 괴로움을 달래는 눈물겨운 모습을 떠올려 준다.

【개관】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제재 : 보리피리

▶성격 : 서정적, 회고적, 민요적

▶표현 : 압축된 표현과 의성어의 반복

▶형식 : 짧은 행 구분, 음악적인 효과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 각 연 첫 행에 ‘보리피리 불며’와 끝 행에 ‘필- ㄹ닐니리’를 규칙적으로 삽입함으로써 반복에 대한 효과를 보고 있다.

▶주제

- 방랑하는 인생살이의 정한(情恨)과 향수(鄕愁)

-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삶의 인고

▶기교

  이 시는 언뜻 보기에 외형이 대단히 중시되어 있다. 하지만, 시의 호흡이 이 외형에만 얽매어 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내재율이 대단히 자유롭다. 또 자유로우면서도 민요조의 가락을 지니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이처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의 묘미다. 외형과 호흡이 일치되어 잇고, 우리 전래의 가락인 민요조이므로 독자와 쉽게 친할 수 있는 장점도 아울러 지닌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최대한으로 압축된 시 형식에다 반복과 두ㆍ각운(ㅂ, ㅍ, ㅕ, ㅓ)의 효과를 동시에 노리면서 대중적인 호흡에 시를 접근시키며 성공하고 있다 하겠다.

【구성】

▶제1연 : 보리피리 불며 고향을 그리워함.

▶제2연 : 어린 시적 꽃 청산을 그리워함.

▶제3연 : 거리와 인간사를 그리워함.

▶제4연 : 방황하던 산천에 얽힌 비애

【감상】

  이 시의 작자 한하운은 일찍이 ‘천형(天刑)’의 병이라고 일컬어진 나환자였다. 그가 젊음과 인생과 미래를 체념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방랑했던 시절을 알지 않고는 이 시는 실감되기 어렵다. 그는 이와 같은 숙명을 딛고 넘어 인간적으로 승리를 한 사람이지만, 초기의 그 처절했던 좌절감과 절망의 몸부림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눈으로 보듯 실감할 수 있다.

  3연의 <보리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필-ㄹ닐니리>에서 그의 뼈에 사무치는 고독을 엿볼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평범하게 행복한 그 인간들의 거리를 지나가면서, 그 조그만 행복에서도 외면당하는 한 인간의 슬픔, 가난해도 좋으니 얼마나 건강한 인간으로 살고 싶었으랴.

  이 시는 단순한 감상(感傷) 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재를 위한 절규다. 구성진 보리피리는 그저 아이들이 무심코 꺾어 부는 그런 소리가 아니고, 절박하게 살고 싶은 한 인간이, 모든 인간 조건을 박탈당한 한 인간이 오직 보리피리에 기대어 사는 집념과 위안인 것이다.

                                      -권웅: <한국의 명시 해설>(1990) 발췌-


  일생을 고독과 절망 속에서 시인은 어린 시절이 그리워 피리를 분다. 이 시는 시인을 멸시하는 인간사에 대한 저항과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을 보여 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낭만풍의 노래인 듯하지만, 나병으로 일생을 암담하게 살다간 한하운의 인간 존재에 대한 절규가 담긴 시이다. 고통을 감수하면서 청운의 꿈과 연인을 버리고 방랑하면서 애절하게 그린 시이다. 마치 보리피리의 애절한 가락과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언덕을 넘는 시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고, 외로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몸부림치는 시인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하다. 또한 잊혀진 과거를 생각하고 몸부림치는 시인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하다.

  이 작품의 미학적 의의는 주제의 형상화보다 <반복의 효과>에 있다. 각 연에 나타나는 반복과 변조(變調) 및 '피-ㄹ닐리리'라는 애잔함은 음성 상징이 주는 희한한 감정을 환기함으로써 시의 호소력을 높이고 있다.


  이 시의 작자는 나병 환자로서의 비통과 울분과 괴로움을 시적 여과 장치를 통하여 극복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제1연에는 새파란 보릿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던 옛날 고향의 봄 언덕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제2연에서는 보리피리를 불면서 떠오르는, 유년(幼年) 시절의 고향-꽃동산과 청산-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그렸다.

  제3연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거리와 뭇 인간들의 삶과 일을 그리워하고 있다.

제4연에서는 자신이 방랑하던 여러 산과 강, 그 눈물나던 언덕들에 얽힌 한 맺힌 비애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의 음악성은 '보리피리 불며', '피-ㄹ닐니리'를 반복함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이 보리피리 소리는 화자의 가슴 속에 추억, 그리움, 향수와 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를 진한 감동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병으로부터 오는 절망과 세상 사람들과 유리된 채 유랑 생활을 해야 하는 고독 속에서 고향과 어린 시절 그리고 세상사가 그리워 보리피리를 부는 시인의 다음 글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청운의 뜻이 어허, 천형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오히려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 산천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껴진다. 나를 사로잡는 것, 그것은 울음 속에서 터지는 모든 운율이 나의 노래가 되고 피리가 되어 조국 땅 흙 속에 가라앉을 것이다."


  이 시는 '보리피리'에서 환기되는 소박한 낭만적 정서가 아닌, 나병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극복한 명작이다. 일반인과 격리되어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 보리피리를 불며 어린 시절 꽃 청산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은 '인환의 거리(인간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와 '인간사'를 꿈꾸며 절망하지만, 마침내 방랑의 숱한 산하와 눈물의 높은 언덕을 건너는 더 큰 아픔을 통해 자신의 절망을 내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정형률을 살린 민요체의 정감 어린 가락으로 비유나 상징이 없는 간결하고 평이한 시어로 구송(口誦)하듯 노래하여 진정 아름다운 시로 격상시킨 이 작품은 자신의 한맺힌 삶을 '피 - ㄹ 닐니리'라는 애절한 피리 소리에 담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서 피리를 부는 것은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행위이자, 자신을 학대하는 인간 세상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실어 보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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