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흥수아이

윤여설 2008. 3. 25. 16:43
서드(storyjin) 05-05-07 18:51:42 :: :: 3116


한반도인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추정되는 흥수아이

중원지방의 청원 두루봉동굴 에서 발견된 흥수아이, 1983년 발견자인 김흥수
씨의 이름을 따서 붙였는데 흥수아이는 약 4만 년 전의 후기구석기시대에 살
았던 신인이라고 추정한다. 흥수아이에 대한 체질인류학분석결과 5살 때 이 동
굴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아이의 머리 크기는 1200~1300㏄,키는
110~120센티미터 정도이다. 특히 뒤통수가 튀어나와 요즘의 말로 표현하면 짱
구형이며 아래턱도 둔탁하게 보인다. 머리뼈를 잰 결과는 현대인과 선사인의
특징을 함께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흥수아이가 특별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흥수아이가 장례 풍습에 의해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1983년 발굴 당시 흥수아이는 편편한 석회암 낙반석 위
에 누워 있었는데 일부러 시신을 바로 펴놓은 후 고운 흙을 뿌렸다는 사실이 관
찰되었다. 주검을 아무렇게나 마구 버리지 않고 고이 장례를 치러 주었다는 뜻
으로 더욱 놀라운 것은 흥수아이의 주검 곁에서는 여러 종류의 식물꽃가루가 
채집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꽃가루 분석에서 국화꽃가루가 가장 많았는데 학자들은 흥수아이가 죽었
을 당시 국화꽃이 주검 주변을 치장한 장의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
다. 상당히 높은 지대인 석회암동굴에 국화꽃이 자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국
화꽃은 장례를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곳에서 꺾어왔다는 추정이다.

또한 동굴 입구 한쪽 모서리에서 많은 양의 진달래꽃가루가 채집되었다. 진달
래는 본래 호산성식물인데 두루봉 일대는 알칼리성 토양으로 되어 있다. 학자
들은 두루봉동굴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이당시 이미 아름다움을 식별하는 심
미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장례용으로 꽃을 사용했다고 인식한다. 물론 국화
꽃이 가을꽃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흥수아이가 사망한 시기도 가을로 추정했다. 


고인류학계에서 네안데르탈인들을 중요시하는 것은 정신적인 면모도 발달하
여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는 풍습도 가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무스티에 유적
지에는 10대 소년이 옆으로 누워서 머리를 팔위에 얹어 놓은 상태로 매장되어
있었다. 그의 손 옆에는 훌륭한 돌도끼 한 개가 놓여있고 소의 뼈가 둥그렇게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들은 소년의 사후에 있을 여로에 도움이 되도록 무
덤에 놓여진 것이었다. 

특히 이라크의 샤니달 동굴에서 발견된 인골은 40세 정도의 남자인데 다리가
접히고 구부러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인골 주위에서 접시꽃, 푸핀, 엉겅퀴, 무
스카리 등을 비롯한 많은 꽃가루 화석이 발견되었다. 죽은 자에게 꽃을 바치는 
마음을 간직했다는 사실은 시체를 정성스럽게 묻었다는 것으로 원시인의 이미
지를 근본부터 뒤덮는 일이었다. 


체코의 한 고분에서는 시체 위에 돌로 만든 보호층 아래 14개의 인골이 있었는
데 이들 시신은 내세에서도 계속 가깝게 지내겠다는 뜻에서인지 서로 붙어 있
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모라비아의 한 고분에서는 매머드의 거대한 견갑골
밑에서 여자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시신 위에 적색의 황토가 소량 뿌려져 있었
다. 생명을 주는 혈액으로 추정했을지도 모르는 적색 황토는 유럽 지역의 여러
고분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주로 웅크리거나 자궁 속의 태아 모습으로 수습된
시신 위에 뿌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북한의 고고학자들이 흥수아이를 그토록 열광한 이유는 고고 인류학 분야에
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네안데르탈인과 유사한 풍습이 한반도에서 발
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유적에서 출토된 뼈화석을 자료로 얼굴을 복원했는
데 이 얼굴을 보면 매우 귀여운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국저브리핑
                                                     (국가지식포털에서 옮겨 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