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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우리의 문화유산

윤여설 2008. 3. 23. 13:41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우리의 문화유산
· 테마분류 ㅣ 문화/예술
· 등 록 일 ㅣ 2008-02-29
· 관련자료 ㅣ 5개

얼마 전 우리나라의 국보이자 서울의 한복판에 우뚝 자리해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상징하던 건축물 숭례문이 사회적 불만을 참지 못한 한 개인의 화풀이 방화 때문에 전량 소실되어 재만 남아버린 경악할 사건이 있었습니다. 숭례문의 겉모습은 복원되겠지만, 잃어버린 문화적 가치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민족의 얼과 조상의 손길이 담겼던 소중한 문화유산은 이제 국민의 가슴 속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유산의 깊은 가치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인다 해도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역사와 시간으로 만들어진 희귀성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뒤로 하고, 국가 구성원이 국보를 개인적인 화풀이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점과 일반인에게 국보를 개방하면서도 위험관리에 틈을 보인 관리 당국 및 관련업체 구성원들이 가진 소명감의 빈약함을 거슬러 올라가면 ‘과연 문화유산의 보존과 보호가 관리당국의 책임의식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실생활 곳곳에 산재된 문화유산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야할 의무가 우리들 모두의 의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면 이 같은 사건은 언제든 또다시 또 지금도 계속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타버린 숭례문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현저한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문화유산마저 인식 부족으로 인한 훼손이 계속되어 이러다가는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 현황과 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 정보통신부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국가문화유산종합정보서비스 (www.heritage.go.kr), 한민족문화유산e-클러스터(www.emuseum.go.kr), 고려대장경 지식베이스구축사업(kb.sutra.re.kr), 불교문화종합DB구축사업(buddha.dongguk.edu),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oksa.aks.ac.kr), 세계문화유산한반도단오문화종합정보(www.danoculture.com),  한국전통소리문화(www.koreamusic.org)를 통해서 보다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세계유산 8건

세계유산이란 1972년 11월 1일 제17차 유네스코 정기총회에 참가한 각국의 대표자와 전문가들이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인간의 부주의로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계유산협약을 제정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유산은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선정하는 세계무형유산(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이나 세계기록유산과는 개념상 구별되며 별도로 관리됩니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흔히 듣는 ‘세계문화유산’은 이 세 분류 중 하나입니다. 독특한 미적인 업적, 창조적 재능의 걸작품을 대표하거나, 가장 특징적이거나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서 문화적, 인류학적인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 매우 희귀하거나 오래된 것, 인간 주거의 양식으로서 자연이나 사회문화적 혹은 경제적 변혁의 영향으로 상처받기 쉬운 것 등이 문화유산으로 구분되어 특별히 관리 되고 있습니다.

유명한 세계유산으로는 파르테논신전 등 고대 그리스 예술의 최대걸작품이 산재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영국의 ‘스톤헨지’, 이탈리아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성 프란체스코의 바실리카 유적, 중국의 ‘만리장성’ 등이 있습니다.

세계유산은 2007년 7월 기준으로 137개국 851건(문화유산 660건, 자연유산 166건, 복합유산 25건)이 등록되어 있고 우리나라는 총 8개(문화유산 7건, 자연유산 1건)의 세계유산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 종묘(宗廟) (문화유산, 1995년 12월 등록, 사적 제125호, 서울 종로구 훈정동)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의 표본으로써, 태조 3년(1394)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했으며 56,503평의 경내에는 종묘정전과 별묘인 영녕전, 전사청, 재실, 향대청, 공신당, 칠사당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전통건물로서 일반건축이 아닌 신전건축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많은 현대 건축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으며 종묘의 뛰어난 건축적 가치는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칭하여지고 있을 만큼 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16세기 이래로 원형이 보존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닌 의례공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정전에서 매년 춘하추동과 섣달에 대향을 지냈고, 영녕전에는 매년 춘추와 섣달에 제례를 지냈습니다. 현재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종묘제례 의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종묘제례악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 석굴암・불국사 (문화유산, 1995년 12월 등록, 사적·명승 제1호, 경북 경주시 진현동)
석굴암과 불국사는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착공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혜공왕 때 완공했습니다. 경주 토함산 높은 곳에 동해를 향해 있는 석굴암은 완벽하고 빼어난 조각,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건축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전실, 통로, 주실로 이루어진 인공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공간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습니다. 신라시대 전성기의 최고 걸작으로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입니다.
토함산 서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불국사는 불교교리가 사찰 건축물을 통해 잘 형상화된 대표적인 사례로 아시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미를 지니고 있으며, 심오한 불교사상과 천재 예술가의 혼이 독특하게 표현되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불국사내의 주요 문화재로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비로자나불(국보 제26호)등이 있습니다.

► 해인사의 장경판전 (문화유산, 1995년 12월 등록, 국보 제52호,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장경판전은 불경이나 그것을 인쇄하기 위한 목판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가야산 중턱에 위치한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은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고려 대장경판(13세기 제작ㆍ국보 제32호)의 보관을 위해 조선 초기(1488년경)에 지어진 전각으로 당시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는데 특히, 나무로 제작된 대장경판의 보존을 위해 건물 안의 습도와 통풍ㆍ기온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건물의 창을 독특하게 설계한 점은 건축사적으로 세계적인 가치를 높이 인정받는고 있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의 건물은 모두 4 개로 ‘ㅁ’ 자 형태를 이룬다. 15 칸(약 27 m)에 이르는 큰 규모의 건물인 수다라장과 법보전이 남북으로 마주 보고 있고, 그 양 옆으로는 두 개의 작은 건물인 동ㆍ서사간전이 위치합니다. 이 가운데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보관 중인 8만 1258 장의 고려 대장경판 또한 현존 하는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으로 세계적인 유물로 꼽힙니다.

► 창덕궁 (문화유산, 1997년 12월 등록, 사적 제122호, 서울 종로구 와룡동)
조선왕조 태종 5년(1405)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로 창덕궁 안에는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정을 논하는 선정전 등이 있으며, 희정당, 대조전 등의 거처 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넓은 후원이 있습니다.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건물이 수림 속에 자리를 잡도록 한 배치와 거목, 연못, 정자 등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후원의 조경 등은 건축사적으로 또 조경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 수원 화성(華城) (문화유산, 1997년 12월 등록, 사적 제3호, 경기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당쟁에 휘말려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면서 1794년~1796년에 축성되었습니다. 18세기에 완공된 짧은 역사의 유산이지만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 6km에 달하는 성벽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조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쪽은 평지,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 일본의 성과 비교할 때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 고인돌 유적 (문화유산, 2000년 12월 등록, 인천 강화군 부근,삼거,오상리)
선사시대 돌무덤의 일종인 고인돌은 피라미드, 스톤헨지와 같은 거석기념물의 하나로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인 고인돌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 우리나라가 그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고창·화순·강화고인돌유적(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은 밀집분포도, 형식의 다양성으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유럽,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고인돌은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입니다.

► 경주역사유적지구 (문화유산, 2000년 12월 등록, 경북 경주시 남산,월성,대능원,황룡사,산성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는 한반도를 천년이상 지배한 신라왕조(B.C57 -A.D935)의 수도로 남산을 포함한 경주 주변에 한국의 건축물과 불교 발달에 있어 중요한 많은 유적과 기념물들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유적의 성격에 따라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를 보여주는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천년(B.C 57 - 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불교유적, 왕경(王京)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일본의 교토, 나라의 역사유적과 비교하여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더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자연유산, 2007년 등록)
세계 자연유산지구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한라산 천연보호 구역, 성산일출봉 응회환,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등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과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기생화산(오름) 1개와 용암동굴 5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순상화산체입니다.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에 분포하는 360개의 단성화산체 중 하나이며, 수성화산체로서 해안선 근처에 뛰어난 경관을 제공하는 분석구입니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10~30 만 년 전에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인해 여러 개의 용암동굴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전문가도 놀랄 만큼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심미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화산활동에 관한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고” 등재 이유를 밝혔습니다.  전 세계 165곳의 세계자연유산이 등재 이후 평균적으로 약 40% 정도의 방문객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6건

기록유산은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훼손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사업의 하나로 인류의 소중한 기록유산을 가장 적절한 기술을 통해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기록유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1992년부터 추진해온 사업입니다. 세계적으로 158점(2007, 6월 현재)의 기록유산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 훈민정음 해례본 (기록유산, 1997년 10월 등록, 국보 70호, 서울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으로,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은 그때까지 사용되던 한자가 우리말과 구조가 다른 중국어의 표기를 위한 문자체계이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배워 사용할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여 세종 25년(1443)에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였습니다.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합니다. 현존본은 1940년경 경북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국내에서 유일한 귀중본입니다.
훈민정음은 전체 분량이 본문 4장, 주석과 정인지의 서문 29장으로 된 33장에 지나지 않으나, 이론 전체가 정연하고 서술이 과학적인 내용의 책입니다.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에 나타나는 이론은 현대의 세계 언어학자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 조선왕조실록 (기록유산, 1997년 10월 등록, 국보 151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로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책으로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 있는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양의 역사서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군사,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사회, 풍속, 미술, 공예,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귀중한 역사 기록물입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은 그 역사기술에 있어 매우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역사기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며 일본, 중국, 몽고 등 동아시아 제국의 역사연구, 관계사 연구에도 귀중한 기본자료이기도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 총 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 지정되었습니다.

► 직지심체요절 (기록유산, 2001년 9월 등록, 파리국립미술관 보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로 선의 요체를 깨닫는데 필요한 역대 불조사들의 어록중 중요한 대목을 초록한 책입니다.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인 주자로 찍어낸 것으로 상하 2권중 하권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인쇄술을 보다 편리하고 경제적이며 교정을 쉽게 하여 주었고 이 모든 것은 책의 신속한 생산에 공헌하였습니다. 또한 활자 인쇄술에 적합한 먹, 즉 기름먹을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이 혁신한 실용적인 활판 인쇄술은 동양 인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유럽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 승정원일기
(기록유산, 2001년 9월 등록, 국보 303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에서 매일 작성한 일기로 국왕의 하루 일과와 지시, 명령, 각 부처의 보고, 국정회의 상소자료들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화재로 소실된 부분을 제외하고 1623-1910년까지 3천2백43책, 2억4천2백50만자의 방대한 기록물임입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인 동시에 사료적 가치에 있어서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비변사등재과 같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료이며, 또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기본 자료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실록보다 오히려 가치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음은 물론, 원본 1부밖에 없는 귀중한 자료로 국보 제303호(1999.4.9)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계 최대 및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 조선왕조의 의궤(儀軌)
(기록유산, 2007년 등록)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입니다.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쳐 (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 등 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져 있어 600여 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 이해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줍니다. 정조의 능행도(陵幸圖)는 전 여정을 15.4m에 걸쳐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형태(시각중심 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諸經板) (기록유산, 2007년 등록, 국보 제32호,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소장)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8만7천여 장은 불교경전 일체를 한자로 새긴 현존 세계유일의 목판본으로 그 내용이 광범위하고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고유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한자권에서 불교가 지속적으로 포교될 수 있도록 기여한 것이 인정돼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정됐습니다.
제경판은 대장경판을 제외한 해인사 소장 다른 불교경판과 조선시대 문집 경판들로 그 수량이 5천장 이상 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한국의 세계무형유산 3건

2001년부터 유네스코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문화유산의 보존과 재생을 위하여 구전(口傳) 및 무형유산을 확인·보호·증진할 목적으로 선정한 가치 있고 독창적인 구전 및 무형유산으로 정식명칭은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입니다.
선정 대상은 인간의 창조적 재능의 걸작으로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문화사회의 전통에 근거한 구전 및 무형유산으로, 언어·문학·음악·춤·놀이·신화·의식·습관·공예·건축 및 기타 예술 형태를 포함하는데, 2007년 7월 기준 전세계 68개국 90건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무형유산, 2001년 5월 등록,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서울 종로구 관훈동)
종묘제례란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의 나라제사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합니다.
종묘제례는 최고의 품격을 갖추고 유교절차에 따라 거행되는 왕실의례이며, 이를 통해 동양의 기본이념인 '효'를 국가차원에서 실천함으로써 민족공동체의 유대감과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종묘라는 조형적인 건축공간에서 진행되는 종묘제례의 장엄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은 자연과 어우러진 동양적 종합예술의 정수이며, 5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입니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의식을 장엄하게 치르기 위하여 연주하는 기악(樂)과 노래(歌)·춤(舞)을 말합니다. 이는 조선 세종때 궁중희례연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세조10년(1464) 제례에 필요한 악곡이 첨가되면서 종묘제례악으로 정식 채택되었습니다. 종묘제례악은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시적으로 약화되었으나 광해군때 점차 복구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습니다.

► 판소리 (무형유산, 2003년 등록)
판소리는 민속악의 하나로 광대의 소리와 그 대사의 총칭입니다. 판소리는 조선 중기 이후 남도지방 특유의 곡조를 토대로 발달한, 광대 한 명이 고수 한 명의 장단에 맞추어 일정한 내용을 육성과 몸짓을 곁들여 창극조로 두서너 시간에 걸쳐 부르는 민속예술형태의 한 갈래입니다.
판소리는 우리나라 시대적 정서를 나타내는 전통예술로 삶의 희노애락을 해학적으로 음악과 어울려서 표현하며 청중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며 판소리 다섯마당이 모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판소리는 우리 역사와 희노애락을 함께해온 우리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03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강릉단오제 (무형유산, 2005년 등록)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높은 날’ 또는 ‘신 날’이란 뜻의 수릿날이라고 부르는 날로,  본래 단오는 보리를 수확하고 모심기가 끝난 뒤에 한바탕 놀면서 쉬는 명절로서 농경사회 풍농 기원제의 성격을 지닙니다. 강릉단오제는 양기의 숫자 5가 두 번 겹치는 음력 5월 5일 수릿날의 전통을 계승한 축제입니다. 
                             
천 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강릉단오제는 민중의 역사와 삶이 녹아있는 전통축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강릉단오제는 한국의 대표적 전통신앙인 유교, 무속, 불교, 도교를 정신적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의례와 공연이 있는데 이를 형성하는 음악과 춤, 문학, 연극, 공예 등은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줍니다.
오랜 역사의 과정을 걸쳐 온 전통문화 전승의 장으로 제례, 단오굿, 가면극, 농악, 농요 등 예술성이 뛰어난 다양한 무형문화유산과 함께 그네띄기, 창포머리감기, 수리취떡먹기 등 한국의 역사와 독창적인 풍속이 전승되는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축제인 강릉단오제는 그 문화적 독창성과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2005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위험에 처한 우리의 세계유산과 지키기 위한 노력들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수원 화성은 수년간 연달아 고초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화성은 지지난 해 개방된 숭례문 보다 훨씬 전에 일반인에 개방되어 많은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화성의 명물 중 하나인 서장대는 이미 1996년 방화로 소실되어 재건된바 있으나 2006년 5월 어느 새벽에 또다시 20대 남자가 술김에 저지른 방화로 2층이 전소 되어 또다시 재건되었습니다. 1796년 화성 축성 후 1801년에 제작된 '화성성역의 궤' 는 재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까다로운 심사를 진행한다는 유네스코 심사관들도 놀랄 만큼 정교하고 계획적인 건축과정과 인력관리현황까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2007년에는 일용직 노동자가 홧김에 망치로 화성 화홍문을 부순 일도 있었고 급기야 얼마 전 1월, 13세 여중생들이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찾겠다며 화성 옆 억새풀밭에 불을 붙이는 사건마저 발생했습니다. 방화지점은 화성 성곽에서 3m, 숭례문과 같이 목조가 많이 사용된 서북각루에서는 불과 15미터 떨어진 거리였습니다. 다행히 불은 서북각루로 옮겨 붙지 않고 10분 만에 진압되었지만, 관계당사자들은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습니다.

도시가 들어서면서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슈는 늘 대립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자체가 문화유산의 보고인 경주역사지구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수많은 불상, 팔만대장경 등 주옥같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 일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의 부주의함으로 훼손되는 사례가 많으며 일각에서는 국립공원 지정으로 이 일대가 환경부 소관이 되면서 문화재 보존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세계유산인 교토유적지는 문화관련 정부부처가 관리한다고 합니다.

문화재의 가치가 훼손된다면 세계유산에서 제외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세계유산 가운데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유네스코의 경고를 받은 적은 없었으나, 엄격한 등재 심사기준이 있는 만큼 문화재의 가치가 훼손된다면 기준미달로 유산에서 제외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개개인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있습니다. 한 예는 2005년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1문화재 1지킴이 운동’입니다. 거주지 주변에 방치된 크고 작은 문화재들을 시민이 지킴이로 나서, 관리당국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유산을 보존하는 취지의 운동으로 관심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번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지킴이 운동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으며 연예인들도 문화재지킴이로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문화유산은 천재지변, 전쟁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훼손되기도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부주의, 무분별한 개발 등이 훼손의 큰 요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도로서 인정받는 가치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우리 실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모든 문화유산이 국가 구성원 개개인의 보물이기도 하며 우리 모두가 이를 아끼고 보존해야할 의무를 지녔다는 점을 확실히 의식하는 것은 문화유산 보존 참여의 가장 쉬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997년 제정된 ‘문화유산헌장’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보존 관리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보는 시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국가 지식 포털에서 옮겨 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