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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석의 발견으로 무령왕릉은 수많은 삼국시대 유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가 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무덤에 묻힌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왕릉이라는 사실이 이 고분의 고고학적, 역사적 가치를 말해주게 된 것이다. 백제 고분이 대부분 도굴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령왕릉은 완전하게 발견된 처녀분이었다는 점도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출토된 유물들은 절대연대가 확인된 것들이어서 이후 삼국시대 문화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기준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무덤 안에서는 금으로 만든 관장식, 용과 봉황이 장식된 큰칼, 글씨가 새겨진 팔찌 등 모두 108종 2906점이라는 많은 수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 유물들은 그 가운데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유물들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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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盞)은 굽이 달린 완형(碗形)이며 잔의 굽은 작아서 잔 받침대(盞臺) 받침 속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문양은 구연에서 3.3㎝ 아래에 음각선 한 줄을 돌리고 그 밑에 8엽의 단판연화 (單瓣蓮花)를, 위에는 운용(雲龍)을 돋웠다. 연화(蓮花)는 꽃잎 끝이 뾰족하고 잔대(盞臺)의 것과 동일하게 둥근 꽃잎의 안쪽에 음각선을 긋고서 그 사이에 종선(縱線)을 그었으며 밑에는 5~6줄의 고사리 모양 꽃술을 돋웠는데 굽은 씨방으로 한 앙연(仰連)을 나타낸 듯하다. 구연 가까이에는 C자형 곡선을 반전, 연속시킨 운문(雲文)이 있고 그 밑에는 가늘고 긴 몸체에 지느러미 같은 발과 꼬리가 달린 용 3마리를 잇대어서 음각하였다. 뚜껑(蓋)은 표면 중앙에 꼭지까지 삼중의 연화(蓮花)와 연뢰(連雷)를 음각하였고 둘레에는 山(산)·水禽(수금) 등을 배치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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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동진 중반기에 이르면 파수의 상단에 용두와 용미가 장식되는 기형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가 남조시기에는 기신이 길어지고 구경이 더욱 높아지면서 조형이 더욱 실생활에 적합하도록 변화된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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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서 옮겨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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