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그리움이 남아 있는 자리, 간이역

윤여설 2007. 11. 11. 22:08
                                                    

 

  

도회지로 무작정 떠나는 젊은 자식의 달음질치는 마음과 고향에 남아 자식을 기다리는 늙은 노모의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는 곳. 떠남과 돌아옴이라는 시간의 여백을 잇고, 농촌과 도시라는 공간을 잇고,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시대를 역행하듯 굽이굽이 철로를 잇는 간이역. 간이역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630여개의 기차역과 열혈청년)

 

지난2005년11월, 근대에 지어진 간이역사 두 곳이 문화재로 등재되었다. 1930년대 당시 농촌 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방식을 보여 주는 군산 임피역사와 1914년에 건립된 익산의 춘포역사가 바로 그곳. 특히 춘포역사는 박공지붕(합각머리나  맞배지붕의 양쪽 끝머리에‘∧’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 또는 벽)의 구조로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驛舍로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임피역사와 춘포역사가 문화재로 등재되기까지 그 자리에는 30대 열혈청년, 임병국씨가 있었다.

 

‘어, 기차가들어오네’라고 생각하는 찰나, 그는 벌써 저 멀리 뛰어가고 있다. 저러다 다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차만 보고 뛰어간다. 기차의 모습을 찍기 위해 철로를 향해 달음질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땅은 보지 않고 먹잇감을 노리며 뛰어가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야수를 연상시킨다.  

 

 

익산역에서 임병국 씨를 만나 임피역을 향해 가는 길, 도로를 달리는 시간보다 도로 위에 차를 세워 두는 시간이 더 길었다. 임병국씨는 내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데,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데, 귀신같이 기차 오는 것을 알아챈다. 뭐 그렇게 찍을 게 많은 걸까? 이곳에 처음 오는 걸까?

 

“자주 와요. 적어도 1주일에 이틀은 기차역을 보러 다니는걸요. 그래도 올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래서 되도록 사진을 많이 찍어 놔요. 디지털카메라로 찍으니 필름값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학창시절부터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뒤, 지금은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지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차 안에 있는 지도책이 그야말로 너덜너덜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책도 1995년에 발행한 것으로 최신판이 아니다. 이유를 물으니 간이역을 찾아가려면 대부분 새로 생긴 도로가 아닌 옛날 도로로 찾아가야 하는데, 최신판에는 옛길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겠지, 어떻게든 원하는 목적지에 빨리 가는 길만을 선호하다보니 최신 지도책에 구닥다리 길들이 나와있을리 만무하다.

 

학생들에게 지리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전국 곳곳을 직접 다녀 봐야 한다는, 아주 바람직한 생각을 지닌 예비선생님. 그런데 임용고시에서 매번 미역국을 먹는 걸 보면 정작 학교에서는 자신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35살의 나이로 준비하는 임용고시 그런데 그 와중에 전국 순례를 다니는 그의 모습이 가족들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싫어했죠. 주말만 되면 공부는 안 하고 혼자 놀러 다니는 것 같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어요. 아, 저 결혼 했거든요. 대학 졸업하고 서울에서 잠깐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때 아내를 만났어요. 함께 다녀보니까 아내도 이젠 이해해요. 지금은 방송국에서 간이역 촬영할때 도움도 청하고 잡지사에서 취재도 오고 그래요.”

 

실제로 KBS HD 영상포엠‘간이역’이라는 작품을 제작할 당시 제작진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우리나라 간이역에 대해서 그만큼 해박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학창시절처럼 자주 다니지는 못하지만 그는 지금도 틈만 나면 전국 간이역 답사에 나선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전국에 있는 간이역을 모두 도는데 2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부지런히 다니는 사람도2년이나 걸린다니 우리나라에 도대체 기차역이 몇 개나 되는 것일까? 무려 630여 개나 된단다. 전철역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많은 기차역이 있다니…….

 

임병국 씨가 우리나라 기차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부선 추풍령역사가 사라지면서 부터였다. 지금은 유리 궁전처럼 번쩍거리는 외장과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초현대식 역사로 거듭나 과거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아담하고 예쁜 구추풍령 역사를 보면서 왜 사라져야 했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구추풍령역사는1941년 10월 25일에 준공된 일제강점기 때의 건축물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건물이 낡고 노후해서 보수하는 것보다는 신축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지만, 실은 일제강점기때의 잔재를 청산함과 동시에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급한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구추풍령역사가 사라진 2003년부터 보전할 가치가 있는 기차역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철도역 답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때 찾은 오래된 역사가 임피역사와 춘포역사이다.

 



기차는 떠나고 드라마로 기억된다, 임피역)

 

익산역에서 자동차로 한 30분 정도 달렸을까? 군산선 간이역인 임피역에 도착했다. 마치 흑백 필름 안에 담겨 있는 사진을 보듯 임피역 주변의 경관은 아주 오래된 낯선 풍경이었다. 작고 낡은 목조 건물 한 채가 기차역의 전부. 그 옆에는 일제강점기 때 공출미를 저장했음직한 창고와‘의용소방대’건물이 있다. 그리고 역 앞마당에 뜬금없이 세워져있는‘방첩반공’탑! 알고보니 모 드라마의 촬영용 소품으로 쓰던 것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라고 한다. 불과 몇 년 전 세워진 소품 세트가 시치미 뚝 떼고 80여 년 전 세워진 임피역과 세월을 맞먹으려 든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둘은 제법 잘 어울린다.

 

그 옆에는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해서 차마 들어가 보지 못했다. 상상만으로도 그 속이 어떨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대합실은 예상대로 텅 비어 있고, 대합실 한쪽엔 최근 수리를 해서 만든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데 왠지 생뚱맞다. 이러다간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허무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없애지는 않는다고 한다.


익산과 군산을 잇는 이 작은 목조 간이역에는 그 동안 어떤 사람들이 타고 내렸을까? 간이역에는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을터…….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넋을 잃고 철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등 뒤로 소리 소문 없이 한 대의 CDC(통근열차)가 임피역을 향해 진입한다. 저 멀리 철로를 수선하고 계신 아저씨 한 분도 뒤늦게 눈치채셨는지 급히 자리를 피한다. 놀라울 정도로 조용한 움직임, 그 순간을 이번에도 그는 놓치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는 승객이 꽤 있는 편이에요. 근처에 호원대학교가 있거든요. 승객이 꽤 있다고 해도 버스가 운송하는 승객 수에 비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승객이 없다고 해서 그대로 뒀다면 아마 자연스럽게 철거되었을 거예요. 그것을 막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문화재로 등록하려고 노력했던 거죠.”

  
 

임피역이 언제 건축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지 역무원의 말에 의하면 1912년이라 하고, 1986년 철도청에서 발간한 <<한국철도요람집>>을 보면 1924년에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1936년 12월 1일에 현재의 역사를 신축했다는 말도 있다. 이렇게 자료도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을 뿐더러 이런 자료들을 발굴하여 문화재로 등록시킨 것도 해당 관청이 아니라 철도를 사랑하는 한 개인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만큼 우리나라 철도역사와 근대 건축물들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역사는 어디일까?

 

“분명한 것은 서울역 구역사도 아니고, 신촌역사도 아니라는 겁니다. 군산선 임피역과 전라선 춘포역, 둘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일 겁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두 역사는 근대문화재로서, 또 지켜야할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 보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문화유산들은 흔히 청산해야 할‘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외면받거나 철저히 파괴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오래된 기차역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전에 사라진 것은 해당기관의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건축물이라고 해서 그 안에 우리 민족의 혼이 없겠는가?

 

주권을 빼앗겼다고 해서 정신마저 빼앗긴 것이 아니듯, 단지 그 시기에 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져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임피역을 지키는 유일한 역무원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와 본다. 농촌인구가 줄어든 데다 버스노선이 생기고 자가용이 많아지면서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다는 역무원.

 

모처럼 만난 말상대에게 이런저런 임피역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동안 방송국에서 촬영하기를 수차례. 오늘 오후에도 드라마 촬영을 오기로 했다며, 좀 더 기다렸다가 보고 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열차사랑’동호회에서 오신 분들이냐는 것이다.‘열차사랑’동호회? 그건또뭐지?

 

“우리나라 철도사와 철도역사에 관한 관심이 커져 가면서 어느 순간 단순한 취미를 넘어 조금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철도역사 답사도 하고, 도서관에서 한국 철도역사의 건축 양식을 조사하면서 어느덧 생활 속에 철도가 자리 잡게 된 거죠. 그러면서‘열차사랑’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동호회원들과 함께 하게 되었어요. 오프라인 생활뿐 아니라 인터넷 속에서도 내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거죠.”

 

2000년 1월, 기차여행 안내사이트로 문을 연 뒤, 2005년 방문자수 100만 명을 돌파한‘열차사랑’동호회(www.ilovetrain.com )는 아름다운 간이역을 보존하고 가꾸려는 회원들의 성원이 담긴 홈페이지이다. 실제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놀랄 정도로 다양한 정보와 여행기가 올라와 있어 회원들의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알 수 있다.

 

이렇게‘열차사랑’동호회를 운영하던 중 문화재청에서 실시하는 문화재 지킴이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는 임병국 씨. 처음에는 경복궁이나 불국사처럼 잘 알려지고 아주 오래된 문화유산이 그 대상인 줄 알고 남의 일로만 여겼다. 그러다 문화재청에서 보낸 이메일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일제강점기 때의 철도역사에 관심이 많은 우리 동호회도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군산선 임피역과 전라선 춘포역을 가꾸고 보호하는 문화재지킴이를 신청하게 된 것이다.

 


역무원은 떠나고 철길만 남았다, 춘포역)

 

춘포역은 1990년대 들어 승객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2005년 이후 역무원이 없는 무인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하루 두 편 정도의 기차가 형식적으로 정차할 뿐, 여객 운송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직사각형 역사는 창문마다 판자로 막아 놓아 답답해 보였다. 역무원이 있을 때는 창문이 열려 있어 보기에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이제 더 이상 그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보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기는 하지만 기차 운행을 하지 않는 역사는 왠지 죽어 있는 시체처럼 느껴졌다.

 

역사 입구에는 이렇다 할 안내 표지판도 없고, 매표구는 꽉 막혀 있다. 춘포역사는 황량한 벌판 위에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를 많이 닮았다. 역사 뒤로는 눈이 시릴 정도로 드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로 쭉 뻗은 도로를 따라 무심한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임병국씨가 문화재지킴이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임피역사와 춘포역사를 등록문화재로 등록시킨 일이다. 원래 해당기관에서는 더 이상 여객운송도 하지 않고, 신호업무도 보지 않는 임피역과 춘포역을 절차에 따라 철거할 계획이었다. 이에 임병국 씨는 임피역과 춘포역의 가치에 대해 현지조사를 해 달라는 민원을 내고,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두 역의 가치를 꾸준히 알렸다. 그 덕분에 2005년 7월 7일 조선일보에 동호회 소식이 신문기사로 게재되었고 마침내 2005년 11월 11일, 군산선 임피역사와 전라선 춘포역사는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그 존재를 세상에 알림은 물론, 후세에 전달할 귀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아무 소용도 없는 낡은 건물일지 모르지만 한때는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애환과 삶이 스며든 곳이 역사이다. 그곳이 언젠가는 대단한 가치를 지닌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으로 거듭날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아직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한채 사라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일제강점기때 철도역사들이 많이 있다. 경전선 원창역(1930.12.25), 전라선 율촌역 (1930.12.25), 서도역 구역사(1934.10.1), 경의선 일산역(1933.10.21), 수인선 송도역(1937.8.6), 중앙선 팔당역(1939.4.1), 건천역(1939.6.1), 구둔역(1940.4.1), 대구선 금호역(1940.7.1), 1930년대에 지어진 동촌역과 반야월역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대구선 동촌역과 반야월역은 사라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반야월역사는 문화재로 등재 예고되고도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고, 동촌역사는 도시 개발이라는 이유로 대구광역시청의 관할에 포함되어 2006년 하반기 중 철거될 거라고 한다. 또한 현재의 중앙선 팔당역사도 역사 이전과 철로 개량을 이유로 65년의 세월을 마감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두갈래 길에서 바라본 기차없는 간이역)


임피역과 춘포역을 둘러본 뒤 헤어지는 길, 보령역에서 장항선 기차표를 끊는데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진중하게 꺼내는 임병국씨.

 

“옛날에는 젊은 혈기로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기차가 다녀야 역도 제 역할을 하는 건데, 과연 기차가 다니지 않는 빈역사가 무슨 의미를 지닐까 하는……. 예전에는 무조건 역사를 지켜야 한다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정답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사라져 가는 철도역사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철도 관련 문화유산을 찾겠다는 임병국 씨. 젊은이 다운 활발한 활동과 더불어 모쪼록 임용고시도 합격해서 훌륭한 지리선생님이 되기를 바란다.

 

문득 추억이 사무치게 그립다면, 그리움을 향해 무작정 달리고 싶다면, 시골 간이역마다 정차하는 느린 거북이를 타보자. 만약 운이 좋다면 철로 옆이나 간이역 어디에선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그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문화재청에서 옮겨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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