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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러브스토리를 찾아서

윤여설 2012. 3. 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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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러브스토리를 찾아서

 

  • 테마분류 ㅣ 문화/예술
  • 등 록 일  ㅣ 2011-05-02
  • 관련자료 ㅣ 5개

여기저기 만발하는 꽃과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알맞은 기온, 계절의 여왕 ‘봄’은 사랑에 빠지기 좋은 시기입니다.
연인과 함께 봄의 경치를 즐기는 건 누구나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분 좋은 설렘일 겁니다.

사랑하고 싶은 봄, 오늘은 지식정보자원사업으로 구축된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http://yoksa.aks.ac.kr)의 도움을 받아 오래도록 전해오는 한국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  

> 줄거리
백제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입니다. 하지만 무왕은 어릴 때 이름 대신 ‘서동(薯童 : 마를 캐는 아이)’ 또는 ‘맛동’으로 불렸습니다. 무왕의 어머니는 백제의 수도인 익산 남쪽 못가에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를 맺어 서동을 낳았습니다. 서동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마를 캐다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어느 날 서동은 신라의 선화공주가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타국에까지 이름이 나는 것일까? 결국, 서동은 선화공주에 대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신라의 도성에 도착한 서동은 도성의 아이들에게 노래하나를 알려줍니다.


서동요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맛둥방(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입에서 입으로 퍼진 노래는 결국 선화공주가 사는 궁궐에까지 들어갑니다. 신라의 신하들은 정숙하고 조신해야 할 한 나라의 공주가 음란을 일삼는다는 노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을 두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선화공주는 이 일로 문책을 당합니다.  억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된 딸을 안타깝게 여긴 왕후는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챙겨줍니다.

한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인 서동은 귀양 가는 선화공주를 기다려 일행을 호위하게 됩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선화공주는 나중에 그가 ‘서동’이란 사실을 알고 노래가 현실이 됐다고 여깁니다.

서동은 선화공주와 함께 백제로 돌아옵니다. 선화공주가 어머니에게 받은 금을 꺼냅니다. 서동은 예전에 자신이 마를 캐던 곳에 금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 얘기를 들은 선화공주는 금을 부모가 있는 신라로 보내면 어떻겠냐고 합니다. 서동은 주저 없이 그러자고 합니다. 서동은 지명법사에게 일을 맡겼고,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많은 금덩어리를 하룻밤 만에 신라로 보냅니다. 선화공주가 떠난 신라의 궁에서 진평왕은 서동이 보낸 금과 공주가 보낸 편지를 받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진평왕은 서동을 존경하게 됐고, 편지를 띄우며 안부를 묻게 됐습니다. 이후 백성들로부터 마음을 얻은 서동은 백제의 왕위에 오릅니다. 이제는 왕이 된 서동이 선화공주와 함께 길을 떠나던 중 용화산 아래의 큰못 가에 이르러 걸음을 멈춥니다. 여기서 선화공주는 이곳에 절을 세우는 게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서동은 공주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이 절이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사입니다.

 

> 관련 유적지


* 미륵사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인 서기 600년대에 건립된 사찰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미륵사를 건립할 때 신라 진평왕이 기술자를 보내 도왔다고 합니다. 미륵사지터 동편에는 93년 복원된 9층 미륵사동탑이 있습니다. 미륵사서탑이 있던 곳은 현재 가건물이 서 있고 내부에서는 서탑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립 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국보 제11호인 서석탑의 복원공사는 2014년 말 끝날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륵사지 사적 제 150호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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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공원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서동공원은 선화공주와 서동의 조각상과 '서동요' 조각을 비롯한 68점을 조각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중앙광장에는 무왕 동상이 놓여있고, 십이지신상 조각도 있습니다. 또한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마한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한관이 2008년 4월 건립돼 있습니다. 전망대 등 수면과 휴식 공간이 조성되어 있으며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장소와 산책 코스가 있습니다.
 

>> 분노나 증오보다 더 큰 사랑, 처용

> 줄거리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길 위에서는 피리 소리와 노랫소리가 울렸고, 사시사철 바람은 부드럽고 비는 고운 태평성대였습니다. 하루는 헌강왕이 바닷가로 놀이를 나갔습니다. 행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바다로부터 구름과 안개가 자욱히 피어오르며 길을 덮더니 환한 대낮이 어두워졌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왕이 일관(日官 : 삼국시대에 천문관측과 점성을 담당한 관원)에게 물어보니 “이것은 동해 용의 짓이 분명하니 좋은 일을 베푸어 풀어주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헌강왕은 동해의 용을 위해 그 근처에 절을 지으라고 명합니다.

그러자 곧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사라집니다. 훗날 사람들은 이곳을 ‘개운포(울산)’라 불렀다고 합니다. 자신을 위해 절을 세우기로 한 결정에 기뻐한 동해의 용은 그의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찬양하며 춤추고 노래했습니다. 헌강왕이 수도로 돌아갈 때 용의 일곱아들 중 하나가 왕을 따라갔는데 그가 바로 ‘처용’입니다.

처용은 왕의 곁에 머물며 정사를 도왔습니다. 왕은 처용에게 미인을 주어 계속 자신의 곁에 머무르게 하고 급간 벼슬을 내렸습니다. 처용의 아내는 무척 아름다워 모든 남성들이 흠모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처용의 아내를 사랑하던 역신(疫神 : 역병 따위의 재앙을 끼치는 귀신)이 사람으로 변해 처용의 집으로 몰래 들어갑니다. 역신은 남몰래 처용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외출한 처용이 집에 돌아오니 아내만 있어야 할 잠자리에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용은 그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증오하거나 하지 않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춤을 추며 그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만익 화백의 '처용가'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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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용가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 와 자리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었다마는
빼앗아 간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의 행동을 보고 역신은 무릎을 꿇고 죄를 빕니다. 역신은 “앞으로 처용의 그림만 봐도 그 집에는 들어서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문 앞에 처용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붙여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가 나게 했다고 합니다. 이때 처용이 춘 춤이 '처용무'라 전해집니다.

  ▶  처용무 동영상
     출처 : 한국전통소리문화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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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유적지
 

  처용암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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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용암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앞바다 가운데에 놓여 있는 바위로 ‘처용암’은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습니다. 신라 헌강왕이 동해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령하자 기뻐하며 바다에서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춤을 추었는데 이때 처용이 바위 밑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가 나온 바위를 가리켜 ‘처용암’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 처용문화제
처용문화제는 울산의 대표적인 시민축제로 처용설화를 테마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예술이 어우러지는 종합축제입니다. 처용이 나타난 개운포 성지에 제단을 마련하고 처용신을 모시는 의식을 시작으로 처용무, 처용가면페스티벌 등 향토색 짙은 다양한 문화행사가 처용문화제추진위원회 주최로 매년 10월에 3일간 열립니다. 행사에는 처용제의, 처용가면페스티벌, 처용무시연, 처용관련 연극공연 등이 있습니다. 

>> 언제나 새롭게 읽을 수 있는 풍성한 사랑이야기, 춘향이와 이몽룡

> 줄거리
조선조 숙종 시대,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글공부 하다 지쳐 하인 방자를 앞세워 광한루 구경을 나갑니다. 마침 이날은 씨름판이 벌어지고 그네놀이가 펼쳐지는 단오날. 몽룡은 그네 타는 춘향이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몽룡은 춘향을 찾아가고, 춘향의 어머니인 월매에게 춘향과의 백년가약을 원한다는 뜻을 밝힙니다. 16살의 뜨거운 사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몽룡은 아버지의 부임지가 한양으로 바뀌자 어쩔 수 없이 남원을 떠나게 됩니다.

몽룡의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는 변학도가 부임합니다. 변학도는 남원골 춘향이 절색이라는 소문을 듣고 밀양, 서흥 좋은 자리 마다하고 굳이 남원부사 임명받아 서둘러 부임합니다. 그리고는 춘향이를 불러 수청 들기를 강요합니다. 하지만 춘향이는 이몽룡과의 약속으로 수청을 들 수 없다고 버팁니다. 화난 변학도는 춘향이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지만 춘향은 절개를 굽히지 않습니다.

한편, 몽룡은 춘향과 떨어져 있을 때 부지런히 공부해 장원급제 벼슬길에 오르고 암행어사로 임명받아 전라도로 내려옵니다. 몽룡은 남원 근방에 이르러 변학도의 폭정과 춘향의 높은 절개에 칭찬이 자자함을 알게 됩니다. 걸인 차림으로 몽룡은 옥에 갇힌 춘향을 만나고 춘향은 몽룡을 향해 변함없이 뜨거운 사랑을 보냅니다. 몽룡과 춘향의 재회가 있은 다음날 광한루에서 각 고을 읍수령들이 참석해 변학도의 생일잔치가 장대히 벌어집니다.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암행어사가 출두하고 몽룡은 변학도를 응징합니다.

> 판소리, 소설, 영화, 뮤지컬 등 각양각색 ‘춘향전’
춘향전은 판소리 12마당 중의 하나로 조선 영조, 정도 전후의 작품으로 추측될 뿐 정확한 작자나 연대는 미상입니다. 춘향전은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인 동시에 오늘날에도 새롭게 읽히고, 다시 해석되는 고전입니다. 희곡, 영화, 시나리오, 뮤지컬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춘향전’은 매번 새롭게 쓰이고 다양한 장르로 동시대인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춘향전의 조연이라 여겨졌던 방자를 주인공으로 새롭게 해석한 영화 ‘방자전’이 개봉해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
     출처 : 한국전통소리문화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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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유적지
 

  광한루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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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한루 (전북 남원시 천거동)
광한루는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입니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됐습니다.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됐습니다.

* 오작교 (전북 남원시 천거동)

연인들의 다리인 오작교는 밟으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과 처녀가 아닌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작교에 얽힌 사랑이야기는 춘향과 몽룡 커플 외에도 견우와 직녀 커플도 있습니다. 옥황상제의 딸 직녀와 소몰이꾼 견우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으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게으름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죠,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격리되어 1년에 한 번 칠월칠석날 다리도 없는 은하수에서 만나도록 합니다.

둘의 만남이 너무 애닯아 이날에는 지상의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은하수로 올라가 다리를 만들어 둘을 만나게 했는데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를 밟고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비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칠월칠석날이 되면 비가 오고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며 까치의 머리가 흰 것은 오작교가 된 까치의 머리를 견우와 직녀가 밟아 벗겨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견우와 직녀 그리고 춘향과 몽룡의 사랑의 무대가 바로 광한루와 오작교입니다.

 

- 참고자료
『삼국유사』일연 지음, 설중환 편집, 소담출판사 (2003)
『서동과 처용이 삼국유사를 박차고 나오다』전경원, 꿈이있는세상 (2006)
네이버 테마 백과사전(
http://100.naver.com/travelworld)
광한루원 홈페이지(
http://www.gwanghallu.or.kr)

 

- 국가지식포털 객원기자 조은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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