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물

싸리꽃

윤여설 2009. 9. 12. 17:13

 

 가을에 초입에 싸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저 싸리꽃이 피기시작하면 열병앓던 시절이 있었다.

무더위가 지쳐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면 또 재발하는 병!

아직도 나는 그 병에서 깨어나지 못했나 보다.

이렇게 싸리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

싸리꽃 속엔 내 유년의 꿈이 아직 숨겨져 있어.

아직도....!

 

 

 

 

 

 

                                  싸리꽃에 꽃등애들이 꿀을 따고 있다.

                                  저 곤충은 벌이 아니고 파리목에 속하는 꽃등애이다.

 

 

 

 

싸리꽃

 

          - 조병화 시인

 

 

 

   지다 남은 꽃은
    들판에 피어난
    요염한 첫 꽃보다 더 사랑스러워라
    그것은 더욱더 애절한 그리움을
    우리 가슴에 안겨 주는 거
    아, 그와도 같이 헤어질 땐
    만날 때보다 더욱더
    몸에 저려드는 것을.

  이 시는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Pushkin)의 <지다 남은
꽃>이다.
  가을이 되면 머리에 떠오르는 싯귀절이다. 하늘에선 나
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고, 파릇파릇 풀잎이 남아
있는 바람이 부는 늦가을 들 풍경, 그곳에 지다 남은 작은
꽃송이 하나를 연상해 본다. 바람에 떨고 있는 그 애절,
그 애련, 그 청초, 그 가냘픔, 그 사랑, 그 몸에 저려드는
생명의 절감,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느끼며.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나의 장조카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에 다니고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쯤 나이가 많았던가 한
다. 그 장조카의 책상머리에 이 시가 걸려 있었다. 일본말
번역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 액자엔 수로가 있는 넓고 넓
은 벌판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수로엔 나룻배
가 한 척, 그리고 아름다운 소녀가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리고 들꽃들이 노랗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그
꽂을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하늘이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데까지 퍼져 있었다.
  이 시는 늦가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사진의 풍경
은 봄이었다. 가끔 방에 들러 이 시와 풍경에 마음을 적시
곤 했다. 그리고 이 시를 마음속으로 외곤 했다.
  장조카는 40대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깊은
낭만을 잊을 수가 없다. 재주가 많은 사람 ㅡ 천재는 요절
한다고 하더니, 나의 장조카 국형이도 그러한 선택된 사람
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나는 시에 의지하여 이 좁은 길을 맑게 걷고 있지
만, 그 힘은 이러한 「지다 남은 꽃」들이 주는 거 같다. 강한
것에보다 약한 것에, 풍부한 것에보다 청빈한 것에, 요염
한 것에보다 가련한 것에, 기름진 것에보다 애절한 것에,
가진 것에보다 없는 것에서 영혼의 고향을 찾는 나의 영혼
은 아직도 구름이다.
  큰 꽃보다는 작은 꽃을, 이름난 꽃보다는 이름없는 꽃을,
황홀한 꽃보다는 빈약한 꽃을, 다채로운 꽃보다는 조촐한
꽃을, 으쓱대는 꽃보다는 가려진 꽃을 좋아하는 나의 심정
은 뭘까. 장미보다도, 국화보다도, 백합보다도, 모란보다
도, 글라디올러스보다도, 다알리아보다도, 해바라기보다도
카라보다도, 카네이션보다도 작은 들꽃에 마음이 끌리는
까닭은 뭘까?
  약하기 때문이겠지. 사는 데 자신이 없는 까닭이겠지.
생존경쟁에 늘 처지기 때문이겠지.
  이러한 처지는 마음에 기쁨을 주는 꽃이 있다. 싸리꽃
이다. 푸쉬킨이 사랑하던 「지다 남은 꽃」들은 넓고 넓은 평
원, 그 들판이 어울리지만, 내가 좋아하는 싸리꽃은 인적
이 드문 산기슭이 어울린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외떨어져
서 피어나는 싸리꽃, 그 영롱한 눈알들 속에서 나는 숨어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내가 찾고 있는 내가 그 속에
들어 있는 듯한 착각, 착각인 줄 알면서도 나를 찾는 나의
마음은 길을 가다 길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느끼곤 한다.
온 하늘이 모두 그 꽃송이들 속에 들어박혀 있는 듯한 그
즐거움, 생명이 주는 그 희열을 나는 이 꽃에서 발견한다.
오물오물하고, 아기자기하고, 맑고, 깨끗하고, 항상 웃고
있는 그 꽃의 모습. 그 속에 무한한 세계가 들어 있는 것
같은 연상을 갖는다. 그 작은 꽃 한 송이, 한 송이 속에
거대한 우주가 돌고 있는 모습을 본다. 하늘이 돌고, 구름
이 돌고, 바람이 돌고, 세월이 돌고, 생명이 돌고, 삶과
죽음이 같이 돌고 있는 무한한 시공이 그 속에 있는 것 같
은 생존의 기쁨을 발견한다. 기쁨은 영혼의 약이다. 피곤
한 영혼에 힘과 생기를 주는 약이다. 이 영혼의 약을 발견
하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 동안 나는 이 빛 속에서 머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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