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다시 읽고 싶은 시詩

윤여설 2008. 7. 18. 08:04
   

가을의 기도

 

 


                                                        

 

 
 - 김현승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 시초>(1957) -

 

 

 

 

해             설

 

◆ 개관정리

성격 : 종교적, 기구적, 명상적

시적자아 : 경건하고 겸허한 자세로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자아 

표현 : 기도조의 어조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냄.

              동일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함.

              시행의 점층적 증가 

중요시구

      * 낙엽들이 지는 때 → 생명체의 숙명을 자각하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운명에 대한 긍정과 사랑을

                         다짐하게 하는 시간.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겸허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  

      * 겸허한 모국어 → 삶의 본질에 대한 영혼의 소리('훌륭한 작품')

      * 사랑 → 생명체로서 죽음이라는 한계성을 극복하고 절대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소망.

      * 가장 아름다운 열매 → 원숙한 생의 가치와 절대자로부터 축복받을 큰 깨달음, 열매

      *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사랑은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 가야 하는 당위성을

                                                                    지닌 것이라는 깨달음이 담긴 표현.
          * 굽이치는 바다 → 인생의 시련과 역경, 젊은 날의 고뇌와 열정
          * 백합의 골짜기 → 행복한 인생 여정

      * 마른 나뭇가지 → 여름 내내 화려하게 가꾸었던 잎을 스스로 떨군 나뭇가지의 모습은, 삶의 모든

                                     욕망을 떨쳐 버리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모습을 의미함.
          * 까마귀 → 절대고독의 경지에 이른 원숙한 존재를 비유한 말.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인생의 고뇌와 환희를 모두 감내한 자) 

주제 : 삶의 경건한 가치 추구

 

◆ 시상의 전개방식(구성)

    square01_gray.gif1연 : 기도에 대한 염원(영적 충실함과 겸허함)

    square01_gray.gif2연 : 사랑에 대한 소망(신에 대한 사랑)

    square01_gray.gif3연 : 고독에 대한 염원(처절한 고독 속에서 인생의 완숙함을 추구)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가을날의 쓸쓸함과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연결시킨 작품이다. 기독교적 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시인의 삶과 창작을 생각해 볼 때, 종교적 영적 충실함을 갈망하는 시로 이해할 수 있겠다. 자신을 철저하게 고독한 존재(까마귀)로 만들어 달라는 자아의 갈망 속에는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인생을 영위하려는 비장함이 담겨 있기도 하다.

 

◆ 참고사항

시인의 말  → "까마귀는 '모든 빛깔을 억누르는 검은 빛깔로 저 자신을 두르고 기쁨과 슬픔을 초월한 거친 소리로 울고 가는 광야의 시인이다.' '주검의 빛깔을 두르고 주검을 노래하는 새'이기도 하고, '인간의 고독과 천형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새'이기도 하다."

 

 
 
 
 
 

광    야

                                                           

 

 

 

 -  이육사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서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육사시집>(1946) -

 

해        설

 

◆ 개관정리

성격 : 남성적, 의지적, 상징적, 저항적, 미래지향적, 지사적

표현 : 선택이나 결단을 나타내는 부사어(어데, 차마, 비로소)의 적절한 사용

              시간의 추이에 따른 구성(과거-현재-미래)

              한시적 구성 방식

              언어의 상징적 기능 중시

중요 시구

   * 닭 우는 소리 - 인간의 생활, 시간의 시작

   *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시간의 개념인 '계절'을 '꽃'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

   * 강물 - 역사, 문명눈 - 가혹한 현실 상황

   * 매화향기 -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고고한 정신

   * 노래의 씨 - 미래에 대한 준비이자 자기 희생(속죄양 의식)

   * 초인 - 조국의 광복을 실현하고 조국의 역사를 찬란히 꽃피울 존재

주제 : 가혹한 상황에서 펼치는 밝은 미래에 대한 비장하고도 의연한 결의

           새 역사 창조의 의지

 

◆ 시상의 전개(짜임)

1연 : 천지의 개벽(원시성, 유구성) - 과거(기)

2연 : 광야의 형성(광활함, 신비함) - 과거(승)

3연 : 문명(역사)의 태동                - 과거(승)

4연 : 가혹한 현실과 극복의지        - 현재(전)

5연 : 미래 지향 의지                     - 미래(결)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배경의 웅대함으로 처음부터 독자를 압도한다.  광막한 공간과 아득한 시간을 배경으로 강인한 지사적 의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웅장한 상상력과 남성적 어조 그리고 의연한 기품이 잘 나타나 있다.


   제1연에서 3연까지의 내용은 광야의 원시적 순수성에서부터 무수한 세월이 흘러 강물이 길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제3연까지가 이 시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자기 존재의 역사적, 사회적 규정성을 인식함으로써,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나아가 실천적 행위로써 연속될 윤리적 결단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제4연에서는 현재적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 광야, 더욱이 눈 덮인 겨울의 광야에 서서 무한한 과거의 시간과 먼 미래의 시간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고독한 것이면서 강인한 의지를 더욱 곧게 세우도록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고독감과 긴장된 의지의 경지가 '매화향기'라는 사물을 통해 암시된다. 여기에는 매화를 추위 속에 피어나는 매서운 기개의 상징으로 여긴 전통적 연상이 관계되어 있다. 그러면서 '노래의 씨'를 뿌린다. 일체의 생명이 용납되지 않는 냉혹한 시련의 상황에서 생명의 씨앗을 뿌린다는 다소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확고한 신념이 바탕이 되어 있다고 보이며 비장감이 느껴지게 한다. 이렇게 뿌린 노래의 씨를 거둘 사람이 바로 5연에 나오는 '초인'이 아니겠는가? '초인'은 단순히 '조국광복'의 의미로 해석되기보다는 조국의 밝고 무한한 미래를 짊어지고 갈 투사들, 지사들의 모습이 아닐까?

 

 

 

 

 

 

 

국화 옆에서

 

 

 

 

 


                                                                                                               

 

   - 서정주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경향신문>(1947) -

 

해        설

 

◆ 개관정리

표현

   ① 기승전결의 한시적 구성

   ② 7·5조, 4음보의 운율 -- 고유의 정서 환기

   ③ 1,2,4연은 국화꽃이 피기까지의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의 시적 표현에 해당

   ④ 불교적 세계관(인연설) -- 가을에 피는 국화가 소쩍새울음과 천둥소리와 관련이 있다는 표현 

중요시구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

         → 번거러운 현실의 역정에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의 번뇌와 불안, 초조

             하나의 인격체가 형성되기까지의 비통과 불안과 방황과 온갖 시련을 의미

             오랜 방황과 방탕 끝에 비로소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 한 여인이 자성(自省) 의 '거울'에 비춰 본                                       자신의 과거 

   * 거울 → 자아성찰의 매개체, 인생에 대한 관조

   * 누님 → 번뇌의 역정으로부터 중년기로 돌아온 안정된 한국 여성의 모습

소재 선택

         * 국화 → 일상적이면서도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가능케 하는 소재

         * 소쩍새, 천둥, 무서리 → 자연 속에 동화된 인간적 삶의 원형을 탐구할 수 있는 소재

 ⑷ 주제 : 생명탄생의 신비성과 존엄성

            인고(忍苦)를 통해 결정(結晶)된 중년 여성의 원숙미

 

◆ 시상의 전개 (짜임)

○ 1연 : 생명탄생의 준비(起-봄)

○ 2연 : 생명탄생의 예고(承-여름)

○ 3연 : 내적 성찰(傳-가을)

○ 4연 : 생명탄생의 어려움과 경이로움(結-겨울)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거쳐야 했던 아픔과 어려움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하면서,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꽃의 모습에서 삶의 깊이와 생명의 본질적 모습을 읽어내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담은 시다.

 

국화꽃이라는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속에 봄의 소쩍새 울음과 여름의 천둥 번개, 그리고 가을의 무서리 등 여러 가지 체험이 융합되어 있다. 생명이 탄생하는 그 순간은 결코 고립되거나 정태적인 순간이 아니다. 여러 체험들이 퇴적됨으로서 그 순간은 시간의 지속 가운데 많은 과거들이 내포되어 집중적으로 압축되어 있는 한 통일체를 형성하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체험의 순간적 표현이라는 본래의 서정 양식 속에서 체험의 연속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이 시에서 제시된 누님의 모습은 확실히 어떤 성숙하고 은은한 동양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곧 삶의 욕망을 격정적으로 노래했던 시인이 조화로운 삶의 원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적 경지를 확보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작품은 흔하디 흔한 사물인 국화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살펴본 결과이며, 국화에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의 우주적 질서를 포착한 시다.

 

◆ 자작시 해설

 "젊은 날의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인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 호수와 같이 형(型)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미의 영상….  내가 어느 해 시로 이해한 정일(靜逸 : 조용하고 심신이 편안함)한 40대 여인의 미의 영상"

 

 

 

 

 

 

 

 

 

 

낙    화
                                      

 

 


 

 

 

-이형기 시인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아롱아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적막강산> (1963) -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서정적, 전통적, 달관적

표현 : 적지 않은 한자어가 구사되고 있으나, 전혀 낯설거나 관념적인 느낌을 주지 않음.

             격정, 낙화, 결별, 성숙 등의 시어는 이 시의 분위기와 완전히 조화를 이룸.

             시상 전개의 변증법적 논리 : 개화(만남, 사랑) ↔ 낙화(이별, 떠남)

                                                                                ↓

                                                                             결실(성숙)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 →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별을 생각하면서, 그 이별을 아름답게 수용함.

    * 격정을 인내한 → 봄에 꽃이 만발하듯 격렬하게 치솟는 사랑의 감정을 참아 냄.

    * 분분한 낙화

          → 향기를 풍기며 풀풀 날리는 꽃잎들. (축복의 이미지)

              이 낙화는 4연의 '열매'에 이어지면서 '새로운 생명체로의 생성을 위한 소멸 및 자기 희생'을 의미.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 꽃이 져야만 열매가 맺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사랑이 지는 것도 영혼의

              성숙을 위한 축복이 된다는 이치를 담고 있다. 더 큰 만남을 예비한 이별을 의미함.(역설법)

    * 열매 → 더 큰 만남

    *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한때 왕성했던 나의 청춘의 사랑도 지는 꽃처럼 이별을 맞이하는 상황.

                                                   '꽃답게'라는 말에서 깨끗한 이별의 아름다움이 암시되어 있다.

                                                   '결실을 위한 희생'

    *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 순정한 아름다움

    * 샘터에 물 고이듯 → 조금씩 끊임없이

    *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

             → 고통을 견디면서 성숙해지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

                 아픔을 견디면서 성숙하는 것이지만, 슬픔의 정조는 지울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인간이기에 슬픔 자체를 부정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제재 : 낙화(이별) → 성숙을 위한 아픔, 더 큰 만남을 위한 이별

주제낙화와 이별의 아름다움(이별의 수용과 정신적 성숙)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낙화의 아름다움('이별=떠남'의 아름다움) : 운명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 연상됨.

◆ 2연 : 꽃이 떨어짐(젊은 날의 사랑이 끝남)

◆ 3연 : 낙화의 시간(이별의시간) = 축복의 시간으로 형상화됨.

◆ 4연 : 꽃이 떨어지는 의미(성숙한 결실을 위한 이별)

◆ 5연 : 꽃이 지는 아름다운 정경(아름다운 이별)

◆ 6연 : 이별을 통해 성숙해져 가는 영혼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양승국의 <한국 현대시 400선>에서

17세에 등단하여 일찍이 그 조숙성을 세상에 드러낸 바 있는 시인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대 중반의 청년이 썼다고는 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시는 차분한 어조로써 삶의 보편적 측면에 대한 깨달음과 체념, 생의 예지 같은 것을 펼쳐내고 있다. 물론 시인의 내부에 서려 있는 젊음으로 해서 감상적 색채가 완전히 탈색한 것은 아니더라도 전후의 절망과 허무가 완전히 가셔지지 않은 당시의 문단 상황에서 이같이 정제된 서정시를 보여 주었다는 점은 이 작품의 가치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 시의 첫 연은 낙화의 아름다움을 서술하는 부분으로, 작품 전체의 주제와 인상을 집약하고 있는 경구이자 압권이다. 시인은 떨어지는 꽃을 보며 그 꽃의 사라짐을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환치해 놓는다. 사랑과 이별이 젊은이의 몫임에는 틀림없지만, 시인은 그것을 다만 젊은이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 범사의 보편적 국면으로 확대시킨다. 그러므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낙화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랑하면서도 떠나야 할 것을 알고 떠나가는 연인일 수도 있고, 부와 명예를 보장해 주는 탐나는 자리라 하더라도 그에 연연하지 않고 떠나가는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꽃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별이나 죽음도 그 참된 의미를 알고 이루어질 때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고귀한 깨달음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3연은 1연의 내용을 구체화하여 사랑의 사라짐과 나의 떠남을 꽃이 떨어져 분분히 흩날리는 모습으로 보여 준다. 4·5연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사랑과 이별의 아픈 체험을 거쳐 나의 청춘도 사라짐을 노래한다. 4연의 결구행이나 다름없는 시행을 5연으로 굳이 독립시킨 시인의 의도는 이 시가 사랑의 별리나 젊음의 아픔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는 영혼에의 축복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1행으로 이루어진 5연을 중심축으로 전후가 상호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전반부의 '젊음 ― 고뇌'와 후반부의 '성숙 ― 인내'의 대립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소 퇴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 5연은, '낙화'가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과 가을날의 '열매'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 즉 통과 제의(通過祭儀) 같은 것임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네 삶도 그같이 무성한 녹음과 풍성한 결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청춘기의 고통을 슬기롭게 감내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 준다.

  6·7연은 이러한 깨달음이 심미적 의장(衣裝)을 통해 표현된 부분이다.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과 같은 표현은 내면의 추상적 사고를 가시적(可視的) 정경으로 나타낸 것으로, 고통의 인내가 내면적 아름다움과 관련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의도적 장면이다. 또한 지금 겪는 아픔이 성숙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슬픔 자체는 부정할 수 없기에 마지막 시행에서 물의 이미지를 이용, 눈물의 형상을 암시하고 비애의 정서를 형상화하였다.

 

 이 시는 대상인 자연을 인간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정조와 복합적인 효용을 드러내는 시적 정취를 보여주기도 하는 <落花>는, 꽃이 지는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하는 모습처럼 노래한다. '개화 → 낙화 →결실'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논리로 자연의 법칙(꽃이 피고 짐)을 파악해서, '만남 → 헤어짐 → 더 큰 만남'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논리로 인생의 법칙(만나고 헤어짐)을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폭       포

 


                                                                              -  이형기  -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2억 년 묵

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 <적막강산>(1963) -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서정적, 관념적, 심리적, 비극적

표현 : 정교한 언어구사를 통한 존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줌.

              수미상관의 구조로 안정감을 획득함

              자연적 소재를 관념화하여 표현함

              사람이 아닌 자연이 주체가 되어 시상이 전개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그대 → 청자, 인간

    * 나 → 주체인 산.  의인화된 표현

    *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칼자욱

                → 산의 한부분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

                    날카롭고 섬뜩한 느낌의 표현(폭포는 산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

                    존재의 고통을 감각화시켜 표현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비극성을 느끼게 해주고자 한 것.

    * 질주하는 전율 →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추락(속도감)

    * 단말마 →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 석탄기 → 고생대 중엽으로 이 시기 후반에 조산운동이 일어나 파충류가 출현하였음.

    * 장수잠자리의 추락

          → 폭포의 낙하에서 연상된 이미지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

    * 나의 자랑은 자멸이다 → 산 스스로가 품고 있는 폭포의 떨어짐을 자멸이라는 비극적 이미지로 표현

    * 복안 → 곤충같은 절지 동물의 눈처럼 작은 눈이 여러 개 모여서 된 눈

    * 맹목의 눈보라 → 바위에 부딪쳐 떨어지는 폭포의 무수한 물보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절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

    * 2억 년 묵은 칼자욱 → 삶의 역정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고통의 멍에

                                       폭포는 산에게 있어 오래된 상처이자 고통이다.(존재에 대한 시인의 비극적 인식)

주제 : 삶의 일상에서 느끼는 존재의 고통과 비극성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칼자욱(폭포)이 난 산(삶의 치열성)

◆ 2연 : 벼랑(절벽)이 있는 산

◆ 3연 : 폭포의 낙하

◆ 4연 : 폭포의 부딪힘

◆ 5연 : 폭포에 대한 인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대상으로 채택된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대상은 단지 자연적인 소재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시킨 형상물이다.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이 아닌 '산'이며, 오히려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 청자인 '그대'가 되고 있다. 벼랑을 가로 질러 내리친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의 멍에가 되며, 여기서 시인은 삶의 일상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이라는 관념을 떠올리게 된다.

 

이 시는 정교한 언어 구사를 통해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의 대상인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또한,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 자신이 아닌 '산'이며,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의 청자인 '그대'가 되어 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 시퍼런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멍에이며, 연속된 '벼랑의 직립'에서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를 피우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이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이 미약한 '장수잠자리'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인간적 삶이 거세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진실된 양심의 소리를 세차게 토해 내는 '깨어 있는 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김수영의 <폭포>와는 전혀 다른 '폭포'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개벽>(1926)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낭만적, 상징적, 저항적, 의지적

 ◆ 표현 : ㉠ 한국적 정서와 친근감을 나타내는 자연적 소재의 사용

              ㉡ 시각적 심상.  직유법,  의인법

              ㉢ 형태상의 균형미, 수미쌍관의 구성(질문과 대답의 형식)

              ㉣ 감상적, 낭만적 어조, 절망적, 자조적, 의지적 어조의 교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빼앗긴 조국의 현실을 인식하고, 국권회복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

                                                    역설적 의구심을 드러낸 강조어법

                                     〔 들→국토(대유법),  봄→계절적인 봄과 조국광복과 희망을 상징(중의법) 〕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 → 현실적 속박과 갈등을 벗어난 푸른 생명이 넘치는 자유로운 세계

    *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 의사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답답한 민족적 현실

    * 바람은 내 귀에 ∼ 옷자락을 흔들고 → 조국 상실의 현실에서 좌절하지 말고 신념을 가지고 이상을  향해야

                                                                          한다는 자아의 충동을 표현

    *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 비로 인해 식민지의 고뇌가 일시적이나마 곱게 씻겼구나.

    *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 민족 전체가 봄을 느낄 수 없다면 나만이라도 가겠다.

    * 나비, 제비 → 변절자

    *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 → 전통적 한국의 여인네

    * 아주까리 ∼ 다 보고 싶다 → 민중들의 삶의 터전인 들판에 대한 강한 애정

    *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 삶에 대한 적극적 의욕이 솟아오름에 대한 의지적

                                                                                                    표현.

    *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 → 풍성한 생산과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 땅

    *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 식민지 현실에 대한 허탈감을 자조적으로 표현. 낙망과 비애, 퇴폐와 허무감이 가득찬 자조의식

    *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 봄이 찾아온 국토에서 얻은 자연과의 일체감으로 인한 기쁨과,

                               식민지적 상황에 대한 현실인식으로 인한 슬픔이 교차되는 미묘한 심리상태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 시적자아의 고통을 구체화)

    * 다리를 절며 → 정서적 불균형의 행동화

    * 아마도 봄신령이 지폈나보다 → 현실을 망각한 채 국토의 봄을 만끽한 것은 아마도 신이 내려 나도 모르게

                                                                    봄의 자연에 취했었나 보다.

    *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빼앗길 것 같기에 빼앗기지 말아야겠다는 이미지

                                                                              현실인식에 기초한 저항정신

 ◆ 주제 국권 상실의 아픔과 국권 회복에의 염원과 의구심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망국적 현실 환기와 문제제기

 ◆ 2연 : 몽환적인 상태에서 국토를 거닒

 ◆ 3연 : 답답한 천지의 침묵에 대한 항변

 ◆ 4연∼6연 : 자연과의 친화감 회복과 교감

 ◆ 7연∼8연 : 국토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의욕

 ◆ 9연∼10연 : 천진한 혼과 절망적 현실에 대한 재인식

 ◆ 11연 : 현실의 위기감 확인 및 회복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서정적 자아는 봄이 찾아들기 직전의 들판을 거니는 한 사내라고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와 어조가 이런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봄의 들판에 서서 시적 자아가 가장 처음으로 제기하는 것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의구심이다. 이 때의 봄이 계절적인 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계절적인 봄을 말한다면 그 의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우리는 서정적 자아가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하려는 욕구 또는 의지를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시적 자아는 들판을 걸어간다. 시적 자아의 눈에 비치는 들판의 모습은 전통적인 삶의 터전이요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로 가득차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들에 대한 시적자아의 극진한 애정 또한 느낄 수가 있다. 이 땅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기에, 아름다운 들판을 걸어가면서 자기가 현재 '빼앗긴 들'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환기하게 된다. 그는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도 자기의 영혼을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이라고 자조섞인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이 고백은 실제가 시적 자아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시점을 모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질문으로 인한 혼돈의 표현일 것이다. 그 혼돈에 휩싸여 그는 계속 이 들판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봄신령이 지폈다 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들놀이' 끝에서 시적자아는 시의 첫부분에서 제기한 답을 스스로 구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가 그것이다. '빼앗기겠네'라고 하는 것은 '빼앗긴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각심을 동반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표현은 '지금은'이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앞으로는 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봄을 빼앗기지는 않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다. 즉 '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시적 자아는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  김춘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현대문학>(1955) -

 

해            설

 

   [ 개관 정리 ]

성격 : 인식론적(철학적), 관념적, 상징적, 주지적

표현 : 의미의 점층적 확대(나 → 너 → 우리)

중요시구   

   * 이름을 불러줌.( 명명(命名)행위 ) → 대상의 인식, 대상에 대한 의미 부여, 관계 형성

   * 이름 → 누군가가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하고자 해서 붙이는 것.

   * 하나의 몸짓

         → 단순히 움직이기만 할 뿐, 그 어떤 인격도 의미도 없는 존재

             사물이 본질적으로 존재하기 이전의, 즉 사물에 이름을 붙이기 전에 즉자적으로 놓여 있는 상태   

   * 꽃 → 의미있는 존재   

   * 빛깔과 향기 → 그에게 인식되기 전에 내가 지닌 나의 본질

   * 무엇이 되고 싶다

        → 존재론적 소망

            사물은 홀로 존재하므로 고독하다. 이 고독함이 존재의 허무를 부르고 연대의식을 낳고 초월이나 초인적 상황을 갈망하게 되는데, 시인은 인간의 고독이 이 같은 연대의식을 낳는다고 말한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은 이러한 연대의식의 확산이며, 존재의 보편적 삶의 질서에 대한 시적 자아의 의지다. 김춘수 시인은 이후 이 시를 개작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눈짓'으로 바꾸게 되는데, 시는 무의미의 순수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의미'라는 용어 자체도 배제한 셈이다.

 

주제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 김춘수 시인의 "꽃"에 대해서

     ㉠ 조남현 - '생명의 극치와 절정(존재론적 고뇌와 불안에 떨 게 만드는 지순지미한 세계)'      

     ㉡ 이형기 - '단순한 사물이 아닌 필경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본질      

     ㉢ 이승훈 - 시·공간적으로 한정되지 않는 개념  

   ⇒ 한국 시사에서 꽃을 제재로 한 시는 적지 않지만, 대부분이 이별의 한을 노래하거나 유미주의적인 관점에서 심미적인 대상으로 노래한 것이다. 이에 반해 김춘수의 꽃은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시각에서 보다 관념적인 실재의 표상'으로 처리되는 주지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 시상의 흐름(짜임) ]

▶ 1연 : 이름을 불러주기 전(무의미한 존재)

▶ 2연 : 이름을 불러준 후   (의미있는 존재)

▶ 3연 : 의미화(인식)되기를 갈망하는 화자

▶ 4연 :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우리의 소망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시인이 교사로 재직할 무렵, 밤늦게 교실에 남아 있다가 갑자기 화병에 꽃힌 꽃을 보고 시의 화두가 생각나서 쓴 것이라고 한다. 꽃의 색깔은 선명하지만, 그 색깔은 금세 지워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의 존재론적 위기를 충동질했는지 모른다. 이 시는 '꽃'을 소재로 '사물'과 '이름' 및 '의미' 사이의 관계를 노래한 작품으로, 다분히 철학적인 내용을 깔고 있어서 정서적 공감과 더불어 지적인 이해가 또한 필요한 작품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물들이 늘려 있다.  이것들이 이름으로 불리워지기 전에는 정체불명의 대상에 지나지 않다가, 이름이 불리워짐으로써 이름을 불러준 대상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구체적인 대상으로 인식이 되어진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워진다는 것은 최소한 그에게만큼은 내가 의미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기에, 시적 화자 역시 자신의 참모습에 어울리는 이름을 불러줄 그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다. 단순히 작위적이고 관습적인 이름이 아니라,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존재론적 소망이 되는 것이다.

 

이 시의 의미의 전개 과정은 아주 논리적이다.  이러한 의미 전개의 논리성은 우리 인식의 과정과 관련되는 것이라 하겠다. 1연에 제시된 그의 '몸짓'은 '명명'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2연에서 '꽃'으로 발전되고, 여기서 확인된 논리적 흐름을 근거로 하여 3연에서 '나'의 경우로 의미가 전이된다.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말한 후, 4연에서 우리 전부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는 보편적 맥락으로 시를 종결짓고 있는 것이다.

 

 

 

 

 

 

-서시-

 

 

 

윤동주  시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 소개*


1917 12월 30일,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부친 윤영석 모친
김용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남.
아명은 해환. 조부 윤하현은 부농으로서 기독교장로, 부친 윤영석
은 명동학교 교원이었음.
기독교 장로교 유아세례 받음.
1925 4월4일, 명동소학교 입학.
1928 서울에서 간행되던 어린이 잡지 <아이생활> 정기구독 시작.
1929 4월,명동소학교가 '교회학교' 형태에서 '인민학교' 로 넘어감.
1930 외삼촌 김약연 - 평양장로교 신학교 1년 수학 후 명동교회 목사 부임.
1931 3월 20일, 명동소학교 졸업.
명동에서 10리 남쪽에 있는 대랍자의 중국인 소학교 6학넌에 편입
하여 1년간 수학.
1932 4월, 용정 기독교 교육기관인 은진중학교 입학.
1934 12월 24일, 최초의 시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 씀.
1935 9월 1일,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전학.
10월, 숭실중학교 학우지인 <숭실활천> 제 15호에 시 <공상> 게재.
1936 3월, 숭실중학교에 대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항의 자퇴.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 편입.
동시,<오줌싸개지도>(<카톨릭 소년> 1937.1. 발표).
동시 <빗자루>(<카톨릭 소년> 12월 발표.)
1937 4월, 졸업반인 5학년으로 진급.
8월, 백석 시집 <사슴>을 베껴 필사본을 만듬.
동시 <거짓부리>(<카톨릭 소년> 10월 발표).
시<유언>(<조선일보> 학생란 1939. 1. 23자 발표).
1938 2월 17일,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4월 9일,연희전문 문과입학.
연전기숙사 3층 지붕밑 방에서 송몽규,강처중과 함께 3인이 한을
쓰면서 연전 생활 시작.
시 <새로운 길>(학우회지<문우> 1941. 6 발표),
<아우의 인상화>(<조선일보>학생란 발표 - 1939, 추정).
동시 <해바라기 얼굴>, <산울림>(<소년> 1939 발표).
1939 연희전문 문과 2학년으로 진급. 기숙사를 나와서 북아현동, 서소
문 등지에서 하숙생활.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 <달을 쏘다> 발표.
1940 다시 기숙사로 돌아옴. 1939년 9월 이후 절필하다가 이해 12에
가서 3편의 시 <팔복>, <위로>, <병원>을씀.
1941 5월,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를 나와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씨
집에서 하숙생활 시작,
9월, 북아현동으로 하숙집 옮김.
12월 27일, 연희전문 4년 졸업 (전시 학제 3개월 단축).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
의 시집을 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음.
시 <십자가>, <또 다른 고향>, <길>, <별 헤는 밤>,
<서시>.
산문<종시>
1942 연전 졸업 후 일본에 갈 때까지 한달 반 정도 고향집에 머무름.
부친 일본 유학 권함. 키에르케고르 탐독.
1월 19일 도일 수속을 위해 연전에 <평소동주>라고 창씨한 이름 제출.
4월 2일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
10월 1일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학과 전입학.
*시 <참회록>, <사랑스런 추억>, <쉽게 씌어진 시>.
1943 7월 14일, 송몽규에 이어 윤동주, 고희욱도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됨.
1944 2월 22일, 윤동주,송몽규 기소됨.
3월 31일. 경도지방재판소 윤동주에게 징역2년 선고.
1945 2월 16일,오전 3시 36분, 윤동주,복강형무소에서 운명.
2월 18일, 북간도의 고향집에 사망통지 전보 도착.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도일.
송몽규로부터 자신들이 이름모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있으며 동주
가 그래서 죽었다는 증언을 들음.
3월 6일, 북간도 용정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 안장.
봄이 되자 <시인윤동주지묘>란 비석을 세움.
8월 15일,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조국이 해방됨.
1947 2월 13일,광복 후에 처음으로 유작 <쉽게 씌어진 시>가 당시
편집국장이던 시인 정지용의 소개문을 붙여 <경향신문> 지상에 발표 됨.
1948 1월, 유고 30편을 모아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지용
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을 붙여서 정음사에서 출간.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아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나그네

     

              

 

  -  박  목  월  -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이 詩에서 '南道 三百里'는 시인의 상상의 길인데, 표랑 또는 방랑의 배경을 보여 준다.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는 주 모티브로서 자연 속의 멋과 애조를 띠고 있다.

그런데 나그네가 詩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삼백리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에 있는 것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동작은 강을 건녔으므로

계속될 수 있는 것인데, 계속 가는 길이 밀밭이라는 점에 관심이 쏠리기도 하는 것이다.

 

목월이 살던 건천 지역에는 밀밭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성은 나그네라는 전통적

과객과 구름이 지닌 친숙성으로 인해서 그 한계를 벗어나 우리의 생활 정서로 확산된다.

뿐만 아니라, '타는 저녁놀'이라는 놀에서 그 빛이 시간의 진행을 부각시키고 하루가 끝나가는

애틋함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밀의 움직임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보이는 달빛, 그 사이의 인간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봄눈 녹으면'과 '강나루 건너서'와 같은 구절은 물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삶의 의미가 물, 밀밭, 동작으로 해서 분명해진 것이다. 이 물빛은 청색이고 밀밭도 식물인 만큼

청색과 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해설 : 이 탄(한국외대 사범대학 한국어교육학과 교수)>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조지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그날이 오면

 

 

 
                                                     심 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뒤걸음처서 사라졌습니다.

나의 향기로운 님의 말 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러하고 경계 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대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줄 아는 까달에 걷잡을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 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때에 떠날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떠날때에 다시만날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에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1879년 충청남도 홍성 출생 호는  만해,

1896년 동학에 가담하였으나 운동에 실패하자 설악산 오세암 에 들어감

1910년 중국에서 독립군 군관학교 방문

1916년 서울계동에서 월간지[유심]발간

1919년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 에 서명.

1927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1931년 "조선 불교 청년회" 를 " 조선불교 청년동맹" 으로 개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 강화.

1937년 불교항일단체인 "민당사건" 의 배후자로 검거

1944년 서울 성북동에서 중풍으로 사망.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상.

 

시집

{님의 침묵}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