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축담]
산담과 밭담은 바로 제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는 바람과 돌이 많은 화산섬으로 제주사람들의 삶은 바람과 돌의 싸움 그 자체였다. 제주의 바람은 한번 불기 시작하면 매우 지독하여 바람이 할퀴어 간다고나 할 정도로 모질다. 게다가 제주의 토양은 화산회토가 쌓여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매우 가볍고 따라서 바람이 불면 기름진 흙가루와 뿌린 씨앗이 모두 날아가 버리고 만다. 이런 시련과 고통을 숙명으로 삭히면서 열악한 환경을 개척하고 땅을 다스리는 슬기를 돌과 바람으로 체득했다. 그래서 돌담은 옛 제주인들이 만든 생활문화유산인 것이다.
제주섬은 전체가 하나의 고리처럼 이어 나가는 밭돌담을 비롯하여 초가로 들어가는 올래의 긴 울담, 해안선을 따라 쌓아올려진 환해장성·각 읍성, 방호소, 산담 등은 현재 돌로 만들어진 제주도에 남아있는 유형의 문화재이다.
제주에서 돌담을 쌓기 시작한 것은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탐라판관을 지낸 김구(金丘)에 의해서이다. 고려 고종 21년부터 27년까지 제주에 부임하여 서기 1234년 밭담쌓기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태풍이 한 번 지나고 나면 밭의 경계를 둘러싼 분쟁이 자주 생기는가하면 힘센 자들에 의해 남의 밭을 자기들의 밭으로 넓혀나가는 횡포와 폐단을 없애기 위해 경계석인 밭담을 쌓도록 했다. 탐라의 중심고을이던 지금의 제주시를 중심으로 시작하였을 밭담쌓기 작업은 백성들에게 밭의 소유권을 분명하게 했고 경작 면적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 후부터 토지의 침탈, 분쟁 등이 사라졌고 우마의 침입, 풍해까지 방지하게 되었다.
- ▲ [올렛담]
제주의 전통초가들은 바람받이 땅에 걸맞게 집체의 외벽을 자연석인 돌담이나 징으로 쪼아 다듬은 가끈돌로 쌓았는데 이를 축담이라고 한다. 축담 위에 서까래를 얹고 초가지붕은 논이 거의 없는 제주에서는 들판에서 자라는 새라는 풀로 덮었고 집줄로 바둑판처럼 얽어매었다. 지붕의 각도는 비행기 날개의 각도와 같다고 하니 공기저항을 이겨내는 과학적인 방법을 저절로 깨친 것이라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올렛담은 집에서 큰 길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에 쌓은 담을 말한다. 골목에서 큰 길 사이에는 작은 밭이 보통 있는데 이를 우영(팟)이라고 하여 채소 등을 심는데 소나 말을 방목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어른 키를 넘기는 돌담으로 에워쌌는데 이를 올렛담이라고 한다.
- ▲ [산담]
또한 밭의 자갈들은 거친 땅에서 바람 등에 의해 흙이 날아가는 것을 막고 태양열을 흡수하여 습기의 증발을 막아 농장물의 성장을 돕는 기름진 역할을 한다고 해서 지름(기름)자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주의 밭은 어디를 가더라도 농사짓기에 앞서 밭에 흩어져 있는 돌부터 정리해야 할 만큼 돌멩이들이 많다. 이 돌멩이를 이용하여 밭담을 쌓는다. 밭과 밭 사이 경계에 있는 잣박(밭담)인 경우 방풍을 목적으로 쌓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밭에 돌출되거나 흙 속에 감춰진 돌멩이들을 수시로 주워서 쌓았는데 대부분은 양쪽밭과 밭 사이는 약간 굵은 돌로 쌓고 그 가운데 부분은 작은 돌을 메꾸는 식으로 했다. 그리고 밭 귀퉁이에는 하나의 방사탑 넓이만큼 크고 넓게 잣박을 쌓아올렸다.
제주 돌담은 구멍이 숭숭 나도록 쌓아 만들었는데 바람에 강하여 돌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소리는 제주에서 아니면 듣기 어려운 소리이다. 이는 제주사람들이 돌담으로 바람도 막고 많은 돌들을 처리하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돌담은 자연스럽게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제주 특유의 좁은 골목을 형성하고 있어서 더욱 아름답다고 이채롭다.
제주의 옛돌담 맛보기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일상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정원 일기 (0) | 2008.07.02 |
---|---|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문 (0) | 2008.06.11 |
매장문화재의 정의 (0) | 2008.06.07 |
고종이 승하하니 덕수궁이 찢어지도다 (2) (0) | 2008.06.07 |
고종이 승하하니 덕수궁이 찢어지도다 (1) (0) | 2008.06.07 |